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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Mar 31. 2021

나는 Canyonlands를걸었다.

유타주가 자랑하는또 하나의National Park Trail 경험기

"여기는 어제보다 쉽다고 했잖아!!"

"당신 거짓말만 자꾸 할 거야???"

"젠장, 저기를 어떻게 올라가라고??"

"무슨 바람은 또 이렇게 불어대냐?, 올라가다가 바람에 떨어질 것 같네."

"... 나도 처음 와본 거라 사실은 잘 몰라. 히히히.. 내가 먼저 올라가서 잡아줄게. 걱정 마, 괜찮을 거야."

어제의 트레일보다는 조금 쉽다는 캐년 랜드에서 나는 죄 없는 남편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첫날 Devils Graden Trail과 Delicate Arch 11마일을 걸으며 어느 정도 단련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걷기도 어지간히 걸었고 오금이 저린 아찔한 곳들도 지나왔으니 오늘 걸을 트래일은 감당할만하리라 생각했다. 거기다 전날의 코스가 "difficult"코스였다면 오늘 걸을 트래일은 "moderate"란다. 야호!!!

다만 10마일 5시간 코스라는데 조금 힘겹지 않을까 싶어 점심과 물을 든든하게 준비했다.

하지만!!!,  앞만 보며 기어오르고, 벌벌 떨며 내려가기는 어제와 매한가지였다.


Canyonlands National Park의 Chesler Loop - Joint Trail. 이번 여행의 정점이다.


두 번 가본 그랜드 캐년은 뷰포인트에서 보는 것, 다시 말해 Scenic drive를 통해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방식이었다면 캐년 랜드의 Chesler loop-Joint Trail은 말 그대로 캐년 안에 만들어진 트래일을 따라 한 바퀴 걷는 방식이다.

캐년 랜드에서도 Needle district에 있는 조인트 트레일을 포함해서다.

바늘 모양의 돌기둥들이 몰려있고 그 사이의 틈새를 걷는 조인트 트레일은 그중에서도 특별하다.

송이버섯 모양의 돌기둥과 암벽들이 둘러쳐진 분지를 걷고 그 돌산들을 넘어 되돌아오는 체슬러 루프.

                            ( 우리를 앞서 가던 젊은이들. 젊은이들이기도하지만 트래킹에 익숙하다.)


오늘 트레일도 악마의 정원에서처럼 시작은 순조로웠다.

이미 일찍 출발한 사람들이 앞서서 가고 있으니 그들 뒤만 열심히 따라가면 길을 잃을 일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중간중간 우리는 젊은 그들을 놓친다. 그래도 걱정할 것 없다.

사막인 이곳엔 중요 분기점마다 있는 쇠막대와 작은 쇠 표지판 외에도 정말 유용한 표식이 있다.

바로 돌탑이다. 한국의 어느 산, 아니 뒷동산을 가도 볼 수 있는 바로 그 돌멩이로 만든 작은 탑 말이다.

나무가 많은 동부지역의 트래일은 나무에 표식을 해둔다. 흰색 코스, 파란색 코스, 주황색 코스 등

하지만 나무가 없는 이곳에선 돌탑으로 표식을 해두었다. 그것도 국립공원 측에서 해놨다기보다는 트래킹을 하는 사람들이 이쪽인지 저쪽인지 헷갈릴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곳마다 돌탑을 만들어 놓은 듯 보인다.

트래킹을 하는 사람들의 이심전심 한마음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우리도 걷는 동안 지친 몸을 굽혀 돌탑에 한 조각씩 올려놓는다.

                                        ( 저 너럭바위가 길이라는 표시이다.)


출발하면서부터 우리 앞에는 청년들 한 무리가 함께 걷고 있었다.

그들 무리 역시 이곳 트레일에서 만난 몇몇 사람들이 함께 동행을 하고 있는 듯했다.

모두 20대의 백인들인 그들 중에서 어느 젊은 커플이 유난히 우리에게 친절하다. 

그들 무리의 맨 끝에서 그들을 따라가고 있는 우리들의 길라잡이를 해준다. 

고맙다. 산에 오면, 특히 이런 특별한 곳에 오면 우리 모두는 경계심이 옅어지나 보다.


초반의 가파른 돌산들을 넘어 들어가니 둥그렇게 돌기둥과 암벽에 둘러싸인 분지가 나온다. 

길은 그 분지를 꼬불꼬불 가로지르며 저 멀리 바늘 모양 돌기둥들이 밀집해있는 곳을 향하고 있다.


우리는 한참을 걸어 평평한 분지를 가로질러 니들 디스트릭트에 도착한다.

먼저 도착한 겁 없는 젊은이들이 더 멋진 풍광을 내려다보기 위해 훨씬 높은 바위 언덕에 올라가 있다. 

마음이 젊은 남편 역시 그곳으로 향한다. 하지만 나는 도전하지 않기로 한다. 내 한계를 알기 때문이다. 

                               ( 좀더 멋진 풍광을 위해 좀더 높은 곳으로 올라간 친구들 )


조인트 트레일로 들어서기 전에  점심을 먹기로 한다. 준비해온 샌드위치와 사과맛에 잠시 힘겨움을 잊는다.

조인트 트레일로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암벽들의 틈새 길이 시작된다.

사암이 물에 의해 침수되고 휩쓸려서 만들어진 비경은 본 적이 있어도 이렇게 두 암벽이 만들어내는 틈새길은 처음이다. 내 몸 두께만큼의 공간을 비집고 걸어가다 보면 암벽 위의 푸른 하늘로 시선이 옮겨진다.

뚱뚱한 사람은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비좁은 곳도 있고 작은 방만한 공간도 보인다.

그렇게 가다 보면 어느 순간 넓은 광장 같은 곳에 도달하면서 암벽들이 만들어낸 틈새길은 끝난다.


니들 디스트릭 지역을 지나니 길은 모더레이트답게 평탄해진다. 이런 길이 죽 이어지면 좋겠다 싶다.

아니, 평탄하다 못해 어느 순간 지프차 길을 만나기도 한다.

오지에서의 지프차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캐년 내 일정 구역까지는 지프차로 진입할 수 있게 되어있나 보다. 사막 같은 길을 터덜터덜 걷고 있는 우리 옆으로 지프차 네댓 대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간다.

지프차마다 가족들이 타고 있다. 

아하, 그러고 보니 오늘은 주말이다. 가족들의 주말여행에 손을 흔들어준다.


지프차를 타고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차가 다닐 정도의 길이면 그리 힘들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었다.

모래먼지 자욱한 찻길을 벗어나 다시 트레일에 들어서자 가파른 돌산이 이어진다. 

이번엔 난코스이다. 게다가 그즈음부터 강풍이 분다. 이미 예보되었던 강풍이다.

주변에는 이젠 아무도 없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 우리가 뒤쳐지는 동안 멀리 앞서 가버렸나 보다.


조심스레 돌들을 밟으며 오르내리다 내 키의 서너 배는 족히 넘는 암벽을 만난다.

또다시 어제의 공포가 되살아난다.

하지만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지 않나!!. 용기를 내야지 굳게 마음먹는다.

우선 강풍에 펄럭거리는 옷과 모자를 벗어 가방에 넣는다. 조금이라도 안전에 위협이 되는 것은 집어넣고 두 손과 두발을 자유롭게 한다. 그리고 한 발씩 옮기며 기어오른다. 

절대로 옆을 보거나 밑을 보면 안 된다. 보는 즉시 나는 공포심의 포로가 되어버린다. 

다행히 암벽들이 까끌거리는 사암이어서 미끄러지지는 않는다. 그렇게 바로 앞의 한걸음에 집중하며 무사히 그곳을 올라간다. 그렇게 체슬러 루프 트레일의 어려운 코스를 하나하나 이겨나간다.

                    ( 저 바위산을 넘어가야했다. 어느 구간은 가파르게, 어느 구간은 지그재그로. )


그사이 바람은 더 심하게 분다. 

내리막의 어느 지점에서 배낭을 짊어지고 하산하는 커플을 만난다. 그들은 버지니아에서 왔단다.

트레킹 중간에 마련된 캠프 사이트에서 일박을 했고 바람이 심상치 않아 내려가는 길이라 한다. 

지난밤, 그들은 엄청난 별들을 보았노라고 했다.


휴, 이젠 거의 다 왔다. 저 밑의 주차된 차들이 보인다. 

도착 전 마지막 너럭바위 위에서 출발할 때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던 젊은이들을 만난다.

서로 완주를 축하하는 그들에게 우리도 한 마디씩 건넨다.

그때 그들 중 하나가 나에게 엄지 척을 하며 말한다.

"You are brave than you think!!."라고.

아마도 오르막에서 벌벌 떨면서 기어오르던 것을 본 모양이다. 

그래, 겁나면서도 하는 게 진짜 용기지. 아마도 또다시 도전한다면 멋지게 해낼지도 모르겠다.

                              ( 트레일을 끝내고 맥주로 축하하고있던 젊은 커플 )


이번 체슬러 루프- 조인트 트레일도 나는 해냈다.

10마일이 넘는 길, 남들 5시간 걸을 것을 6시간 반 걸려서 새끼발톱 하나가 까맣게 죽도록 걸었다.

분지를 둘러친 기암괴석들과 바늘처럼 날카로운 돌기둥들,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비현실적인 풍광들.

걷는내내 우리는 압도하는 장관에 넋을 잃었었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우리가 캐년을 본 것만이 아니라 바로 살아있는 캐년을 경험했다는 사실이다.

그랜드캐년에서처럼 멀리서 신비로운 협곡을 바라만 본 것이 아니라 우리는 캐년 랜드 그 속에 있었다.

바늘처럼 솟아있는 돌기둥 사이에, 그것들이 깎여 버섯모양으로 둥근 암석을 머리에 이고 있는 돌산에, 그 모든 것들이 깎이고 또 깎여 허허벌판이 된 모래벌판에 온전히 들어가 있었다.

캐년 랜드를 걸었던 그 찰나적 순간,  나는 몇억 년의 시간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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