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ils GardenTrail에서 백인 아저씨들의 도움을 받았다.
헉헉거리며 오르막을 오르던 내 눈앞에 거대한 돌산 하나가 떡 버티고 있다.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길처럼 보이는 곳은 없다.
가까스로 디디고 서있는 좁은 바닥을 제외하고는 길이라고는 기어올라가야 할 돌산뿐이다.
아득해진다. 발밑의 낭떠러지와 돌산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시작은 경쾌했다.
사암이 부서진 붉은색 고운 모래길에는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제법 많은 여행객들이 붐비고 있었고 그들과 함께 주변 경관에 감탄하기도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평탄한 길을 올라갔다.
그렇게 얼마간 올라가서 만난 세상에서 제일 긴 Landscape Arch의 웅대하면서도 아슬아슬한 모습.
언젠가 "우르르릉"하며 무너지는듯한 소리를 냈다는 겁나는 이야기를 들으며 좁은 트레일에 들어서니 눈에 띄게 사람들이 보이질 않는다.
( 멀리서 본 Landscape Arch의 모습. 세상에서 가장 길고, 다른 아치보다 바위의 두께가 얇다.)
본격적인 트레일이 시작된 것이다.
그사이 해도 하늘 높이 솟아올라 겉옷을 벗게 만든다. 점점 숨이 차고 이마를 누른 모자가 땀에 젖는다.
그래도 아직은 견딜만하다. 메마른 날씨에 비틀린 채 죽어있는 나무와 그 옆에 가시를 가득 달고 옹기종기 솟아있는 선인장들에 시선을 빼앗기다 보면 어느 순간 붉은색의 기암괴석들이 눈앞에 우뚝 서있다.
그즈음이었다.
Arches National Park에서도 가장 길고 어려운 Devils Garden Trail의 가장 힘든 지점에 맞닥뜨린 것은.
눈앞을 막고 있는 거대한 돌산.
아래는 저 멀리 낭떠러지.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그대로 다시 되돌아 나오는 것, 또 하나는 어떻게 해서든 돌산에 올라가는 것.
하지만 그 돌산에는 아무런 인공 지지대가 없다. 앞사람이 가면서 만들어놓은 움푹 파인 곳에 손과 발을 디디고 올라가야 한다.
고소공포증으로 청룡열차도 인생에 딱 한번 타본 것이 전부인 나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겁에 질려 주저앉고 만다.
당황한 남편은 일단 나를 남겨놓고 얼마나 어려운 코스인지 확인하기 위해 혼자 올라가 본다.
그리고는 겁에 질린 나를 안심시키며 설득하기 시작한다. 마침 역으로 돌며 그곳에서 마주친 젊은이들에게 이곳만 지나면 이런 어려운 코스는 더 이상 없다는 거짓말 같은 대답도 얻어낸다.
하지만 이미 나는 과호흡으로 양손이 저려오기 시작한다.
( 저곳을 올라가야한다는 생각에 오금이 저리고 하반신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되돌아가기로 마음먹고, 남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쩔쩔맬 때였다.
돌산 위에서 중년의 백인 아저씨 세 사람이 나타났다.
그들 역시 우리와 역방향으로 트레일을 걷던 사람들이었다.
돌산 밑에 주저앉아 풀죽어 있는 나, 돌산 위에서 열심히 나를 설득하고 있는 남편.
중년 나이의 어느집 남편들임에 틀림없는 그들에게 우리 부부의 모습이 남일 같지 않아서였을까?
멋쩍게 상황을 설명하는 남편에게 그들 셋이 나를 도와주겠다고 나선다.
그들은 돌산 중간중간에 한 명씩 서서 내가 그들을 붙들고 그 난 코스를 지나갈 수 있게 지지대가 되어주었다.
이미 오금이 저려 한걸음 떼기도 힘들었던 나는 남편을 포함한 네 사람의 두툼한 손아귀를 붙잡고 가까스로 그곳을 지나갈 수 있었다.
( 가까스로 올라온뒤 아이처럼 주저앉은 나와 소박하게 웃고있던 천사 아저씨중 한명 )
만약 내가 그들을 만나지 못했으면?
그들의 도움을 받지 못했으면 ?
나는 Devils Garden Trail을 마치지 못했을 것 같다.
그 트레일에는 "Most difficult route"로 일컬어지는 Primitive trail이 포함되어있고, 그 구역은 트래킹 초보인 나에겐 너무 고난도 코스였다.
숯돌을 모로 세워 놓은 것 같이, 양옆이 절벽인 2m 너비의 돌길에서는( 아,,,이곳 역시 붙잡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막바지에 이르러 되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
더 힘든 곳을 몇 군데 지나온 나는 쥐어짜서라도 용기를 내어야만 했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남편의 손을 꽉 붙들고, 오로지 앞만 보며 걸어 나가야 하는 길.
그렇게 나는 팸플릿에 무려 "7.9 mile, Difficult.Longest of the trails."이라고 적혀있는 악마들의 정원 트래일을 걸어낼수있었다.
( 너무 무서웠던 저 길을 배낭까지 매고 여유롭게 걷던 사람들 )
그날 만난 그들은 내겐 Devils Garden Trail의 세 천사들이었다.
오금이 저려 주저앉아 되돌아가려고 하던 나를 일으켜 세우고 용기를 북돋우던 사람들.
얕게 파인 돌 틈을 붙잡고 그다음에는 어디를 붙들어야 할지 동공이 흔들릴 때 두툼한 손을 내어주던 사람들.
이 지점을 넘기고 저 지점으로 옮겨갈 때 기둥처럼 서서 절벽을 보지 않고 앞만 보게 방패가 되어주던 사람들.
겨우 건너와 감사한 마음에 주섬주섬 찾아 건넨 알사탕조차 사양하며 홀연히 가던 길을 가던 사람들.
트레일을 내려오며 그들의 도움에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나는 그런 천사들을 얼마나 많이 만났을까? 내게 천사가 되어준 그들은 누구였을까?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던 나를 작은 칭찬으로 일으켜 세워주셨던 초등학교 때 선생님.
책의 세상을 통해 나아가야 할 길이 앞에 있음을 보여주었던 큰 언니.
두려움에 빠져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주저앉을 때마다 그렇지 않다고 어깨를 두드려주던 김 선생님.
인생길 내내 "당신은 해낼 수 있다"라고 격려하며 손을 붙잡아주던 가족들.
낯선 나라와 언어에 좌절할때 "나라면 너같이 못했을거야, 너는 용감해."라며 용기를 주던 미국인들.
그들 모두가 내 인생 여정의 천사들이었다. 내가 만난 세 천사들처럼.
살면서 그들에게 받은것이 많다는 기특한 생각이 든다. 광대한 대자연앞에서 겸손해진탓인가?
이어서 "60평생을 살면서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천사가 되어주었나?"에까지 생각이 미친다.
내가 만난 천사들보다 많았을까? 아니면 훨씬 못 미치게 적었을까?
하늘만 아실 것 같다.
하지만 남은 삶동안은 내가 만난 세 천사들처럼 그 누군가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