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강 Mar 30. 2024

플로리다 여행기 (2)

맹그로브숲도 누비고 렌터카 열쇠도 잃어버리고..

전날밤의 피로조차 날려버릴 만큼 쾌적하고 포근한 숙소에서 깨어난 우리는 일찌감치 서둘러야 했다.

아침 일찍 카약 타기가 예약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어제가 여행의 시작이었다면 맹그로브숲에서 카약을 타는 액티비티는 이번 여행의 정점이었다.

우리는 카약 타기를 도와줄 가이드의 차를 타고 배를 띄울 강가로 갔다. 가이드 존이 이끌 인원은 우리 둘과 또 다른 젊은 커플 둘이었다. 젊은 친구들은 일인용 카약을 탔지만 난생처음 타는 카약에 어리버리한 나를 위해 우리는 이인용 카약을 타기로 했다.

드디어 스르르 미끄러지며 강물로 들어가는 카약.

40년전 타보았던 발로 페달을 밟아 움직이는 오리배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남편의 구령에 맞추어 노를 젓다보면 어느새 앞서 가고 있는 젊은이들의 카약 뒤꽁무니를 쿵하고 받기도 하고, 맹그로브 나무에 부딪히기 일쑤였다. 우리는 전략을 바꾸어 추진은 남편이 뒤쪽 노로 하고, 방향 바꾸기는 앞쪽의 내가 하기로 하면서 그럭저럭 일행을 따라갈 정도로 적응을 해나갔다. 

그러면서 보이는 풍경. 잔잔한 강물과 얕은 깊이에 강바닥이 다 보이는 깨끗한 물, 양옆의 맹그로브 나무들, 간간이 보이는 새들, 거북이들, 무엇보다도 점점 깊이 들어갈수록 많이 보이는 Aligator들.

그곳의 Aligator들은 작은 체구에 몸전체가 까맣고, 긴 주둥이를 가진 악어들로 따뜻한 햇볕을 쬐면서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녀석들의 움직임이 없는 눈동자는 개나 고양이와 같은 포유류의 눈동자와는 확연히 달랐다. 아무런 감정이 담겨있지 않은 것 같은 냉담함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무심함이라고나 할까, 악어다웠다.


( 카약을 타고 가까이에서 본 엘리게이더 )


두 시간 가까이 노를 저으며 카약에 충분히 익숙해질 만 하자 카약 투어는 끝났다.

언제 그렇게 시간이 흘렀지 싶게 우리는 카약 타기와 잘 보존된 강 생태계에 푹 빠져있었다. 다소 비싼 감이 있는 액티비티였지만 전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카약을 처음 타는 우리들을 잘 안내해 준 존에게 미리 준비했던 팁을 아까워하지않고 건넬 만큼 고마웠고 좋은 경험이었다.



이날의 처음 일정은 카약을 탄 뒤 3시간 거리의 Tampa로 가서 지인인 낸시를 만나 같이 저녁을 먹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카약을 타고나자 두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두 시간 정도면 근처에서 하는 에어보트를 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카약처럼 스스로 노를 젓지 않아도 되고 강의 더 깊숙한 곳까지 볼 수 있다는데 마음이 동해서 별 고민 없이 에어보트를 타기로 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가늠도 못하고 있었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20여분을 기다려 탄 에어보트. 6명이 함께 탄 평평한 배가 뒤편에 붙어있는 큰 선풍기의 추진력으로 움직였다. 무뚝뚝한 선장의 지시대로 선착장에서 폴짝 뛰어 배에 오르자 선풍기의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약 투어에서 만났던 강이 얕고 잔잔해서 평화 그 자체였다면 에어보트가 날아다니는( 떠다닌다는 표현은 맞지 않다. 마치 모터보트가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 같았다.) 강은 바다와 접한 넓고 깊은 강이었다. 그런 강의 양옆에 줄지어 자라고 있는 맹그로브 나무들과 숲의 모습은 놀라웠다. 게다가 도열하듯 양옆의 물속에 서있는 나무들 사이를 전속력으로 달리는 에어보트는 무섭기까지 했다.


( 전속력으로 달리는 에어버트에서 바라본 맹그로브숲 )
(  숲에서 나와 물을 먹고있는 엄마 멧돼지와 아기 멧돼지들 )


이쯤에서 여행이 마무리 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삼십여분 동안 긴장한 채 이어진 에어보트 투어를  끝내고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였다.

미국의 모든 서비스에는 '팁'이라는 것이 있지만 티켓을 구입했고 여러 명이 함께 탔던 에어보트조차 선장에게 팁을 주어야 할지 말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때 앞 좌석의 등판에 '선장에게 팁을 주세요'는 글이 써져 있는 것이 보였다.

지갑을 차에 두고 왔던 나는 남편에게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달라고 했다.

남편은 지갑을 늘 청바지 앞주머니에 넣고 다니는데 먼저 탔던 카약에서 청바지가 다 젓는 바람에 주머니가 얕은 얇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 바지 주머니엔 지갑뿐이 아니라 렌터카 열쇠와 공항에 주차해 놓은 우리 차의 열쇠가 함께 있었다.

남편이 지갑을 꺼내 팁을 꺼냈는데 그 바람에 열쇠들이 주머니에서 삐져나와 반쯤 걸쳐져 있었던가보다. 다시 주머니에 지갑을 넣으려고 하는 찰나, 열쇠가 주머니에서 떨어져 막 선착장에 닿은 배에서 강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악!!!"

내 입에서 터져나온 소리는 단말마의 비명이었다.

열쇠가 떨어졌다. 한치도 안 보이는 흙탕물속으로.

일이초간 무슨 상황인지 몰라하던 남편도 곧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우리의 갑작스러운 사고에 나머지 승객들은 흘끔흘끔 쳐다보며 우리를 지나쳐 배에서 내렸고 선장은 우리 옆에서 난감해하고 있었다.

남편은 정신을 수습하고 주머니 속 모든 소지품을 꺼내 내게 건넨 뒤 배 옆을 붙들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의 깊이는 남편의 가슴께까지였다. 배를 붙든채 열쇠가 떨어진 곳을 발로 더듬던 그는 안 되겠는지 운동화를 벗고 이어서 양말까지 벋고 강바닥을 더듬었다. 5분여를 그렇게 했는데도 열쇠는 찾아지지 않았다. 속으로 "주님, 도와주십시오."를 부르짖던 나도 신발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매표소의 백인 아줌마와 오너 가 뛰어와 당장 물속에서 나오라고 소리쳤다. 위험해서 안된단다. 하는 수없이 남편은 물속에서 배위로 올라와야 했다. 배위로 올라오기 전 남편은 앞이마를 배에 대고 몇 초간 가만히 있었다.


우리는 열쇠를, 그것도 Tampa에서 3시간이나 멀리 떨어진 국립공원 내 오지에서 렌터카 열쇠와 우리 차 열쇠를 잃어버렸다. 온몸이 젖은 채 올라온 남편의 발바닥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선착장 바닥이 굴껍데기로 깔려있었단다. 남편과 나는 참담한 마음으로 매표소 근처로 헬렌이(매표소 백인 아줌마)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헬렌이 준 페이퍼 타월과 밴디지로 굴껍데기에 베인 상처를 닦는 남편이나 나나 멘붕상태였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열쇠를 찾을 수 있을까?, 우선 렌터카 회사에 전화를 해야겠지?"

머릿속이 하얗게 된 상태였으나 렌터카 회사에 연락하는 게 급선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저녁에 만나기로 한 낸시는 항공사에 근무하며 이런 일에 노련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전문가라 우리를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낸시의 도움을 받아 렌터카 회사에 사고 내용을 접수시키고 토잉카와 새 렌터카를 받을 수 있게 조치했다. 

하지만 차속에 들어있는 짐들은 어떻게 되나? 토잉 되는 차를 따라가서 차문을 열고 짐을 꺼내어야 하나? 여전히 힘든 마음을 안고 우리는 토잉차가 오기까지 두 시간 반이나 기다려야 했다.

그러는 동안 헬렌은 우리가 안되어 보였는지 "걱정 마라, 내가 여기 토박이라 잘 알아, 조금 있다가 자석으로 열쇠를 찾아봐줄게."라며 우리를 위로하고 물과 음료수를 갖다주었다.

매표소 근처에 넋이 빠진 채 앉아있는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만이 맴돌았다.

"허리춤 가방을 챙기지 못한 탓이다. 게다가 어쩌자고 배에서 내리지도 않은채 돈을 꺼내게 했던가..."

마치 이 모든 일이 내 불찰인 것만 같았다.


드디어 토잉카가 오고 토잉카 운전수는 능숙하게 차문을 강제로 열고 우리의 짐을 꺼내 주었다. 짐을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했던 것은 기우였다. 그렇게 열쇠 없는 렌터카는 실려가고 우리는 새로 받은 렌터카를 타고 템파로 올라갔다. 차를 타고 가면서 점점 정상적 멘털이 되어가던 나는 그제야 내 양쪽 팔과 목 뒷덜미에 모기에게 수십 군데 물렸음을 알게 되었다. 물린 곳들은 시간이 갈수록 가려워졌다. 


이번 여행의 불운은 돌아오는 비행기가 4시간이나 지연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여행의 후유증은 오래갔다. 무엇보다 그 끔찍했던 경험을 꺼내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이야기하면 공감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렌터카 회사에 연락해 해결하면 될걸 뭘 그렇게 놀라고 힘들어해?"싶은가 보다. 우리를 도왔던 낸시도, 몇몇 지인들도 끔찍했던 경험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사실 나도 왜 그렇게 놀라고 힘들었는지 잘 모르겠다.

열쇠가 물속으로 떨어지는 것을 직접 봐서, 또는 내 손으로 받아내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평생 뭘 잃어버리는 일이 거의 없는 강박적 성격의 내가 렌터카 열쇠를 잃어버려서 그런 것일까?

렌터카 키를 잃어버리고 해결하는 유사한 경험이 전무해서, 잘 몰라서 그런 것일까?

문제 해결할만한 영어 실력이 안된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일까?

집에서 너무 먼 곳, 도시에서 너무 먼 오지에서의 사고라 그런 것이었을까?

허리춤 가방을 챙기지 못한것이나 팁을 꺼내라고 조급하게 군 내 불찰이 커서 그런것이었을까?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의 영향일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오늘 문득 그날 느꼈던 감정이 이민 초기 어려움에 처했을 때 느꼈던 감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미국살이에 익숙해지면서 잊혀져 가던 그 느낌, 낯선 세상과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 또는 모르는 것에 대한 공포감 같은 것...


내 불행은 토잉차를 기다리는 두 시간 반과 Tampa로 올라오는 세 시간, 다섯 시간여 만에 회복이 될 수 있는 작은 불행이었다. 긴 여행 같은 삶에서 다섯 시간 정도에 극복되는 불행이라면 아주 작은 불행일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다섯 시간 동안 나는 많이 힘들었다.


두어 주가 지나서,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본다. 

만약 내가 헬렌 아줌마의 말대로 생각을 곧바로 바꾸었으면 그 5시간만큼의 불행도 더 빨리 털어버릴 수가 있었을까?, 아마도 그랬을것같다.

그날 나를 허그하며 헬렌이 해준 말은 앞으로 있을지 모를 삶의 크고 작은 어려움 앞에서 내가 붙들고 가야 할 지혜의 말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봐,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을 거야. 네 남편이 열쇠를 떨어뜨려서 그 차를 타고 가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네 곁에 남편이 있는것인지도 모르잖아."


(  앞일을 모른채 카약을 타며 해맑게 웃고있는 우리 두사람 )


매거진의 이전글 플로리다 여행기(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