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강아지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 * 추수감사절을 맞아 축하 이메일을 보내주신 은사님께 슬픈 소식을 전했습니다. 사랑하는 반려견을 잃고 여전히 상실의 슬픔 속에 있는 제 마음을 여러분들에게도 전합니다.)
교수님,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에 교수님의 메일을 받고 용기를 내 답장을 씁니다.
걸핏하면 울음이 터지는 제가 어제 Thanksgiving dinner를 어떻게 준비하고 서빙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며칠 전 사랑하는 강아지를 사고로 잃었습니다.
지난 일요일이었습니다.
무려 8명의 스텝들이 교대해 일하는 저희 시설이지만 주말이 되면, 특히 교회를 가는 일요일이면 저희 부부가 한 명의 직원과 두 곳의 음식준비와 서빙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바쁜 날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서둘러 어르신들의 점심으로 만든 된장 시금치 죽을 들고 막 1호 집으로 간 순간이었습니다.
2호에 있던 남편으로부터 다급하고 떨리는 목소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저희 집 강아지 보리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큰 사고를 직감한 저는 옆집으로 뛰어갔습니다.
우리 강아지 보리는 포치의 테이블 위에 뉘어져 있었습니다.
차에 머리를 치인 듯 입에서 피가 흘러나와 있었습니다.
입 주변의 피 이외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지만 보리는 이미 숨을 쉬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런 보리를 품에 안고 저희 부부는 동물병원 응급실로 뛰어갔습니다.
미리 연락을 받은 수의사는 심폐소생술과 주사로 심장이 다시 뛰게는 했지만 이미 뇌사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 보리는 하느님 나라로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가버렸습니다.
포치의 테이블 위에 누워있는 보리를 처음 본 순간 저는 큰 충격에 빠졌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아침도 저희 부부와 함께 동네를 산책했던 아이였는데, 아니 그날은 유난히 폴짝거리며 즐거워하던 아이였는데... 며칠 전 그루밍한 산뜻한 모습으로 그날 아침 내내 제 곁에 있던 아이였는데...
가끔씩 방광염으로 병원 신세를 지긴 했지만 아직은 건강한 아이였는데 그렇게 갑자기 가버렸습니다.
처음엔 너무나 큰 충격과 슬픔에 일은 물론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밤에는 잊고 지냈던 panic 증세까지 찾아왔습니다.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오줌 누러 뒷마당으로 나간 아이가 지나가는 다른 강아지를 보고 찻길로 뛰어가던 모습을 지켜본 남편은,
뛰어서 쫓아가면 아이가 더 뛸까 봐 이름을 부르며 stop을 외치던 남편은, 건너편 찻길로 내달리는 승용차에 아이가 치이는 장면까지 봐야 했습니다.
차에 치인 아이는 땅에 누운 채 놀라서 뛰어간 남편을 바라보며 꼬리를 흔들었답니다.
하지만 몇 초 뒤 남편품에 안긴 보리는 동공도 열리고 목이 축 늘어졌습니다.
남편은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고 했습니다.
저희 가족에게 보리는 처음으로 마음을 나눈 강아지였습니다.
아미쉬 농장에서 아기 때 데려와서 9년이 넘게 저희와 함께 살았습니다.
큰아이가 대학원 다니며 보드 시험을 앞두고 한 달간 공부와 씨름을 할 때 아이의 책상밑에서 힘들어하는 큰아이에게 힘을 주던 보리였습니다.
집을 떠났던 아이들이 방학을 맞아 집에 오면 기뻐 어쩔 줄 몰라하며 아이들을 반기던 보리였습니다.
무엇보다 저희 부부에겐 셋째 자식 같던 아이였습니다.
저는 보리를 통해 생명에 대한 제 생각과 느낌이 확장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사람만이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의 존귀함을 깨닫게 해 준 존재였습니다.
저는 나름 의연해서 빈 둥지 증후군 따위는 없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사실은 보리라는 존재가 있어서 아이들이 집을 떠나도 의연할 수 있었던 것을 알았습니다.
저희 집 모든 곳에 아직도 보리가 있습니다.
소파 위에 올라가 바깥을 보던 보리, 앉거나 누우면 어김없이 다가와 엉덩이를 붙이고 함께 눕던 침대와 의자, 사방에 널려있는 보리 물건들.
밤근무를 하던 아들은 근무가 끝나면 알링턴에서 저희 집으로 와서 저희와 슬픔을 함께 했습니다.
멀리 있는 딸은 울컥할 때마다 전화로 함께 울며 슬픔을 나누었습니다.
남편은 엉성하게라도 뒷마당에 뒤늦은 울타리를 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렇게라도 해놨으면..."이라고 말하면서요.
저희 가족은 큰 상실의 슬픔을 함께 감당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다 우리 모두는 삶의 진실 하나를 깨달았습니다.
'죽음은, 이별은 이렇게 갑자기 찾아온다.'는 사실을요.
이번에는 보리였지만 다음번에는 제가 될 수도 있고, 남편이 될 수도 있고 아이들이 될 수도 있는 것이라는 진실을요.
그래서 저희 가족은 이 깨달음을 보리가 주고 간 선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여전히 너무 슬프고 미안하고 아프지만 보리가 준 선물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기로 마음먹습니다.
며칠뒤면 화장한 보리의 ashes가 옵니다.
그렇게 바뀐 보리를 저는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가늠이 안됩니다.
하지만 첫날보다 그다음 날이, 그다음 날보다 또 그다음 날이 조금씩 견딜만해지니 그것도 감당이 되겠지요.
이렇게 교수님께 말씀드릴 만큼 된 것도 바로 제가 극복해내고 있다는 증거인듯합니다.
어제도 하루종일 묵묵히 일을 하며 그 힘든 수고를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일이 있으니 일하는 동안은 슬픔을 잊을 수 있었으니까요. 앞으로도 이렇게 이겨내 보겠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제 삶의 하루하루를 감당하며 또 감사하며 살아보겠습니다.
사랑하는 교수님,
제 슬픔을 이렇게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일로 저는 마음을 나누는 가족과 친구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하느님이 허락하신다면 조금 더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살고 싶습니다.
교수님 말씀하신 대로 올 겨울은 온전히 건강을 돌보시는데 힘을 쏟아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여전히 건재하신 은사님이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큰 힘이 됩니다.
저도 곧 자리를 박차고 힘을 내 씩씩하게 살아보겠습니다.
올해를 상실의 슬픔 속에서 보내버리고 새해는 새롭게 맞으려 마음먹겠습니다.
사랑과 존경의 허그를 교수님께 보냅니다.
미국에서 제자 올림
(* 이 글을 쓰며 사고 이후 처음으로 보리의 사진을 바라볼수있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보리와 행복했던 기억만 떠올려보려합니다. 내가 보리를 기억하는한 보리는 나와 함께 있는것일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