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마당 Cosmos를 들여다보다.
뒷마당의 텃밭에서 어느 날 새 생명이 태어났다.
Cottontail rabbit. 꽁무니 흰색이 특징인 갈색 토끼다. 그동안 크고 작은 토끼들이 뒷마당을 제 집처럼 뛰어다니고는 했지만 그렇게 작은 둥지에 다섯 마리가 옹기종기 모였 있는 모습은 처음이다. 더군다나 뒷마당엔 또 다른 토끼 가족이 살고 있다. 어미와 서너 마리 정도의 작은 토끼들. 그 어미가 또 새끼를 낳았나?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어미는 제법 큰 몸집에 가끔 텃밭 주변에서 보였다 안보였다 한다. 낯선 녀석이다.
처음 다섯 마리의 아기 토끼들은 눈도 뜨지 않은 어린것들이었다. 텃밭 한가운데에 작은 둥지를 만들고 낳아놓은 아기 토끼들은, 살며시 다가가 입으로 어르는 소리를 내면, 새끼손톱만한 작은 귀를 쫑긋 세우고 그것이 어미의 소리인지 인간의 소리인지 구별도 못한 채 저희들도 귀를 떨어 소리를 내는듯하다. 너무나 사랑스럽다.
그렇게 하루 이틀. 어느 날은 구름이 시커멓게 몰려오더니 장대 같은 소나기가 쏟아져내린다. 매일매일 그 어린것들이 눈을 뜨고 커나가는 것을 경이롭게 지켜보던 우리들은 혹시 둥지가 물에 잠길라 큰 우산을 갖다 둥지 위에 씌워준다.
매일 아침 아기 토끼들의 폭풍성장을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경이롭던지....
어느 날은 둥지에 두 마리만 남아있는 것을 발견한다.
아하, 그중 덩치가 큰 녀석들은 엄마를 따라 다른 곳으로 옮겨갔나?
그러나 그다음 날은 모두들 둥지를 떠나고 둥지는 휑덩그러니 빈 채로 있다. 많이 아쉽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둥지 근처의 풀들을 막대기로 휘휘 저어 찾아보니,
아차차, 녀석들이 모두 거기에 있다. 두어 마리씩 납작 엎드린 채, 어떤 녀석들은 어린 깻잎 나무 밑에, 어떤 녀석들은 잡풀들 밑에 숨어있다. 눈도 모두 뜨고 제법 날쌔진 녀석들은 작은 텃밭 안이지만 스스로 숨을 곳을 찾아 웅크리고 있었던 거다.
어미가 인간들 눈에 띄지 않도록 그렇게 가르쳤는지도 모르겠다.
시이튼 동물기의 톱니 귀 토끼가 새끼들에게 "톡톡톡"하고 위험신호를 알려주었듯이.
그러던 어느 날, 울타리 옆에 우뚝 서있는 아름드리 나무 근처에서 새들이 아침부터 유난스레 울어댄다.
누군가는 짝짓기를 위한 것이 아니냐고 무심히 말하지만 그런 것 같지 않다.
새들의 우는 소리가 상당히 다급하고 날카롭고 크다.
예사롭지 않아 나무 근처로 가본다. 크게 달라져 보이는 것은 없다. 하지만 주홍색의 카디날 즈, 꽁지 부분이 파란 이스턴 블루버드, 그리고 박새 같은 작은 새들이 잎이 무성한 나무 근처를 맴돌며 울어댄다.
심란한 소리지만 내가 해줄 것은 딱히 없다.
다음날, 새들의 다급했던 소리의 근원이 정체를 드러냈다.
바로 길이가 1미터가 넘는 뱀.
이삼일 동안 그렇게 새들이 울어댔던 것은 그 까만 뱀의 공격 때문이었던것이다.
아마도 유난히 잎이 무성해 이런저런 새들이 둥지를 틀었던 나무에 검정 뱀이 기어올라 새봄에 태어난 어린 새들을 잡아먹은듯하다.
검정 뱀은 뒤 마당의 동물 가족들뿐만이 아니라 인간인 우리들에게도 소름이 돋게 하는 낯선 존재다. 작지 않은 크기와 새까만 몸 색깔은 그것이 독사가 아니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섬찟하다.
게다가 뒷마당엔 아직 어린 토끼들이 있지 않나!
아침에 살며시 한번 들여다보던 마음에 걱정스러움이 하나 더해져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본다.
아기 토끼들이 점점 커지고 날쌔지는 모습을 기특하게, 그리고 다행스럽게 지켜본다.
"그래, 얼른얼른 커라. 얼른 어미만큼 커서 검정 뱀쯤이야 거뜬히 따돌릴 수 있도록 얼른 날쌔져라."
어쩌면 토끼들은 새로 갖다 놓은 벌통들로 인해 이곳으로 찾아들었는지 모르겠다.
벌들의 군무를 볼 욕심에 벌통을 두 개 갖다 놓자 우리는 고민에 빠졌다. 늘어나는 잡풀과 토끼풀을 없애려면 제초제를 써야 하는데 벌들이 있으니 제초제 쓰기가 망설여진다. 우리가 망설이는 사이에 잡풀과 토끼풀은 잔디밭을 완전히 덮어 버리고 그 풀들은 토끼들의 풍성한 먹이가 되었다.
토끼들은 뒤 마당이야말로 낙원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벌들을 키우니 토끼풀이 무성해지는것도 내버려 두고, 농사에 별 관심을 두지 않으니 텃밭은 잡풀로 무성하고, 그 한가운데 둥지를 틀어도 손대는 이가 없었으니안심하고 새끼를 낳았으리라.
하지만 자연의 섭리는 어느 생명에게나 마찬가지여서 토끼들에게 검정 뱀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줄이야.
아무리 인간들이 잔디깎이로 토끼풀을 밀어 버리지 않아도, 소나기를 피할 수 있도록 우산을 씌워줘도, 나무 둥지 위의 어린 새들이 잡아 먹히듯이 언젠가는 검정 뱀의 먹이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 아침, 풀밭 사이에서 웅크리고 있던 녀석들이 두 마리였으니 나머지 세 마리는 어미와 함께 안전한 곳으로 옮겼을까?, 아니면 늦은 밤, 축축한 땅에서 귀를 떨며 어미를 찾던 녀석들을 검정 뱀이 집어삼켜버린 것인가?..
무수한 세월 동안 그래 왔듯이, 오늘도 뒷마당의 작은 Cosmos에는 그라운드호그와 청설모, 카디널즈와 이스턴 블루버드, 박새, 그리고 토끼들과 검정 뱀들이 그들의 삶의 터전에서 새끼를 낳고, 먹고 먹히며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인간들, 우리들의 삶이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