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강 Jul 25. 2020

인연을 타고 흘러가는 삶

미국에서 노인케어시설을 시작하게 만든 인연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의 작가 미치 앨봄의 소설 중에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이라는 소설이 있다. 놀이공원에서 일하는 에디가 놀이기구의 사고로 죽게 되면서 만나게 되는 다섯 명과의 인연에 관한 소설이다. 에디가 만나는 다섯 명의 인물들은 그가 놀이공원에서 절름발이 수리공으로 평생을 살게 만든, 에디가 평생을 '그렇게' 살게 이끈 인연들이다. 

내가 미국에서 노인케어시설을 운영하게 된 것도 우연한 인연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의 인연은 동네 공원에서부터였다.

2년간의 시골살이를 끝내고 직업 찾기가 훨씬 나은 도시로 이사를 왔다. 뉴욕 같은 대도시가 아니라 쇠락한 예전의 대도시 옆에 붙어있는 작은 도시이다. 그래도 이전에 살던 동네보다는 한인 커뮤니티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활기가 있었다. 

남편은 자신의 비즈니스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프리미엄을 주고 이미 셋업 된 비즈니스를 산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입은 변변찮았다. 우리에게는 무엇인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아침 일찍,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찾은 공원. 

그 공원은 인공호수를 가운데 두고 둘레길이 짧게 또는 길게 조성이 되어있어 그 근처의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공원이다. 위치도 아들의 학교 근처여서 이사하면서부터 찾아가 걷기 시작한 산책코스였다.


거기서 그분들을 만났다. 

그분들은 우리와 반대방향으로 호수 주변을 돌고 있었기 때문에 거의 같은 시간에, 거의 같은 장소에서 마주쳤다. 처음엔 눈만 마주치며 웃음을 교환했고 몇 번 더 마주쳤을 때는 걸음을 멈추고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다 어떤 날은 아예 걷던 방향을 바꾸어 넷이서 함께 걸었다. 

그러다가 알게 되었다. 

그분들의 어머니가 노인케어시설에 계시다는 것과 Assisted Living이라는 것에 대해서.

내가 사회복지를 했었다는 것을 전해 들은 그분들이 한국인이 운영하는 시설에 나를 소개해주었다. 

자원봉사라도 할 참인 나에게 시설 오너는 파트타임으로 일할 것을 제안했다.

그렇게 Assisted Living과 인연을 맺었다.

미국의 학위가 없으면 전공하고는 영영 상관없는 일을 하게 되리라 생각했던 나에게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미국의 Assisted Living은 한국으로 치면 노인그룹홈이나 노인생활시설쯤 될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탈시설화와 지역사회 기반 프로그램의 필요성 때문에 생긴 제도로, 한국에서는 비영리 조직에서 일을 했었다면 이제는 영리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는 있었다. 그래도 얼추 비슷한 범주의 일을 찾게 된 것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시설을 오픈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적당한 집을 사고, 그 집을 규정에 맞는 시설로 만들기 위해 창문들을 교체하고,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고, 집 확장 공사를 해서 5인 규모에서 8인 규모로 넓히고, 필요한 교육과 자격요건을 갖추어 주정부에 신청서를 접수시켰다. 그로부터 거의 일 년에 걸친 두 번의 현장 조사.

집을 사고 라이선스를 받기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 그리고 드디어 내가 운영하는 시설을 오픈했다.


내가 시설을 오픈했을 때는 이미 서너 개의 한국 시설이 있었다.

우리가 아무리 발품을 팔고 신문광고를 내고 오픈하우스 행사를 해도 사람들은 이미 운영되고 있는 곳을 우선적으로 찾았다. 사람들은 새로운 시설에 부모를 맡기는 모험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또 그렇게 일 년 가까이 지나갔다.


한인 대상자 찾기에 지친 우리들이 팸플릿을 만들어 미국인들을 찾아 나설 즈음의 어느 날.

한 분의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바로 나에게 Assisted Living을 소개해주었던 분들의 어머니였다. 

먼저 있던 시설에서 우리 집으로 옮기겠단다.

아마도 먼저 시설의 오너가 바뀌면서 케어에 불만을 갖게 된 분들이 옮길 새로운 시설을 찾게 된 것 같았다.

그렇게 할머니를 시작으로 우리 시설에 입소가 시작되었고 한분 두 분 빈방이 채워져 나갔다. 


십여 년이 지난 후,  몇 달 전. 

새로 직원을 채용해야 해서 구인광고를 냈다. 누군가가 전화로 근무조건을 묻는데 왠지 목소리가 낯설지 않다.

우선 만나서 이야기하기 위해 방문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그녀가 왔다. 

아하, 이런 인연이라니! 

그녀는 우리 집에 첫 번째로 입소한 할머니의 또 다른 며느리였다.

그녀는 십 년 전엔 할머니를 방문하던 며느리로, 지금은 우리와 함께 노인분들을 돌보는 사람으로 나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소설 속의 에디가 죽어서 다시 만난 '인연'들을 통해 자신의 지나온 삶을 이해했듯이 나도 어렴풋이 내 삶을 이끈 인연의 그물망들을 떠올리며 지나온 삶을 반추해본다. 어떤 이는 나에게 생명을 주었고, 어떤 이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 주었고, 또 어떤 이는 내 강점과 약점을 비춰주어 나를 '나로서' 살게 이끌었다. 

공원에서 만나 연결된 인연들은 나에게 '마지막을 준비하는 이들의 삶'을 돌보는 일을 선물했고 , 나는 돌봄을 받는 그들과의 인연을 통해 또다시 새로운 인연과 삶의 이해를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것도 없고, 동시에 무엇이든 가능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