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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Jul 18. 2020

끝이 좋으면 모두 좋다?

이민 프로젝을 되돌아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처럼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것일까? 그동안 나는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세상 사는 일에 이러저러한 부침이 없을 리 없고 그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끝내 결말이 좋다면 그동안의 부침조차도 미화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인간의 뇌는 좋은 것들만 기억하고 싶어 한다고 하지 않나.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끝이 좋다고 다 좋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우리가 겪어온 과정을 곱씹어보고 애써 어려움과 극복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낼 때라야만 비로소 좋았노라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미국 15년 차 이민자이다. 15년이 지난 지금 이민자로서의 객관적 삶은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고 보인다. 45살의 나이에 남의 나라에 와서 나 자신의 노인케어시설을 운영하고 있고, 남들 평생 걸려 갚을 집 모기지를 십여 년 만에 다 갚았으며, 또 하나의 시설을 셋업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으니 이만하면 밥은 먹고살만하게 되었다고 여겨진다.

아이들도 잘 자라주었다. 하나는 고2 마치고, 또 하나는 중1 들어가서 이민을 왔으니 미국 학교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을 터인데 피눈물 나는 고생 끝에 큰아이는 소아과 의사로, 또 작은아이는 응급의학 레지던트로 성장했으니 남들 보기에 성공적이라 할만하다. 게다가 위기의 갱년기를 잘 넘기고 이혼하지 않았고, 아직까지는 암에 걸리지 않고 잘 지내고 있으니 15년 이민 프로젝의 결과는 성공이라고 해도 될만하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는 혹독한 어려움이 있었다. 호수 위 유유히 유영하는 백조들의 물에 잠긴 두발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겉으로는 멋지게 헤쳐나가는 것처럼, 누구보다도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내 안의 나는 쉼 없이 헤엄쳐나가는 가운데 상처투성이가 되어있었다.

45살 인생의 절정에서 가졌던 자존감과 자기 효능감은 어느 순간 연기처럼 사라지고 어찌할 바 몰라하는 어린아이의 무력함과 두려움에 휩싸였었다. 이민 초기에 겪었던 수많은 좌절과 눈물은 나의 멘털을 서서히 좀먹어갔다. 그 결과 어처구니없게도 나에게 패닉이 덮쳤다. 불안증의 일종인 패닉이 찾아온 것은 내 이민 프로젝의 어두운 그림자이다. 남들에게 감추고 싶은, 안 그런 척하고 싶은 나의 아픈 모습이다. 패닉이 처음 왔을 때부터 상당한 기간까지 나는 그것이 협심증이거나 그저 심장병일 것으로 생각하고 싶었다. 패닉이라니, 이것은 내가 그동안 씩씩하게 잘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모든 일에 양면이 있듯이 나의 이민 프로젝은 빛과 그림자로 뒤엉켜있다.
대부분의 이민자들이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를 외면하고 성과에만 주목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그러고 싶은 유혹을 갖는다. 페이스북에 내가 얼마나 평온하게 살고 있는지를 드러내고, 단톡 방에 "I'm OK" 메시지만 두드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게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가끔씩 찾아오는 패닉은 일깨워준다. 
게다가 함께 사는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나의 참모습을 받아들이지 않고 나이 들었을 때에는  어떤 결과가 오는지 적나라하게 보게 된다. 


그래서 용기를 내기로 했다. 도대체 무엇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들여다보기로 했다. 아니, 이미 알고 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그림자에 따뜻한 시선을 주기로 했다. 그것이 나에 대한 예의라는 철든 생각이 든다.

지금은 쇠약해진 멘털을 보듬으면서 스스로를 돌보는 삶을 살려고 노력 중이다. 그 보듬는 과정 중에 지금껏 가슴속 깊이 꾹꾹 눌러 왔던 것들을 드러내는 작업을 시작하려 한다. 모든 문제 해결에서 '문제 있음'을 인정하고 수용할 때 해결해나갈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곳에다 쏟아놓을 일들은 아직도 극복하는 과정 중에 있노라 고백하는 것일 게다. 나의 상처를 드러내는 것은 나를 다시 일으키는 첫걸음 이리라. 그런 과정 중에 끝내 쓰러지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걸어온 나 자신에게 애썼노라 격려하는 일일 것이다. 아니, 더 나아가 아직도 해결해나가야 할 패닉을 인정하고 극복하는 노력일 테다. 


끝이 좋을 수 있도록, 그동안의 좌절과 고통이  있었기에 끝이 좋을 수 있었노라고 담담히 이야기할 수 있도록.


                                                 ( Photo by Owen Lee-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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