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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Sep 21. 2020

과잉은 과소를 부른다.

과잉과 과소로 빚어지는 부부관계의 비극

모든 인간관계의 출발인 부부관계에서 둘 사이의 역할 분담의 문제는 어쩌면 가장 기본적인 이슈일 것 같다.

둘 사이의 역할 분담이 사랑과 신뢰 가운데 잘 합의되고 조정이 되고 있다면 그 두 사람의 삶에는 평화로움과 즐거움이 친구가 되어있을 것이고 반대로 역할분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계속 왜곡과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면 그 둘의 삶은 어려움과 고통이 지배하는 끔찍한 모습으로 변해갈 것이다.




친척 중에 80대의 노부부가 계신다. 그분들 세대에서는 최고의 교육을 받으신 분들이고 그 시절에 연애결혼을 하신 분들이었다. 남편은 평생 교육자의 삶을 사셨고 부인은 교양 있고 세련된 분이셨다. 그분들에 비하면 우리 부모님은 많이 추레하게 보인다고나 할까.


그런 두 분은 멋져 보이는 겉보기와는 달리 둘 관계의 남모르는 어려움이 있었다.

문제의 시작은 아마도 전형적인 부부관계에 대한 남편의 기대로 인한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남편은 아내가 자기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집안일을 빈틈없이 반들반들하게 잘하기를 바랐을 것 같다. 하지만 공부를 많이 한, 게다가 집에서 거친 일이라고는 하지 않고 곱게만 자란 아내는 집안일이 많이 서툴렀을 것이다. 

게다가 둘 간의 젊을 적 열정은 남못지않게 뜨거워서 아이들은 줄줄이 태어났다.


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을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집안일에 서툰 아내는 연거푸 태어나는 아이들 치닥거리 하기에도 벅차서 더 집안일이 엉망이 되어갔다.

설거지가 안되어있는 싱크대, 여기저기 던져져있는 아이들 옷과 기저귀, 아침에 자신이 벗어놓고 나간 런닝에 어제 벗어놓은 양말까지...

남편은 처음에는 힘들어하는 아내를 도와주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고 그랬을것이다.

그러다 지친 어느날 그냥 자기가 다 해버리기로 마음을 먹어버렸다. 

자꾸 싸우느니 내가 직접 하는 게 속 편할 것 같았다. 

"그래, 내손이 내 딸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어쩌면 아내도 그래주길 원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처음에는 설거지 정도였겠지. 그러다 빨래가 넘쳐나는 것을 보고는 세탁도 자신이 하기로 마음먹었다.

퇴근 후 세탁기 돌리는 일은 일도 아닌 거니까. 게다가 아내가 고마워하는 것을 보면서 내심 흐뭇해하면서.

어느 날은  퇴근 후 세탁기를 돌리고 베란다에 빨래를 널고 잠자리에 누웠는데 아차차, 더러워진 이불이 눈에 띄었다. 조금 쌀쌀해진 탓에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올린 탓이었다. 이불 끝자락이 시커멓게 더러워져있는 것을 보고 말았다. 그순간 남편은 눈을 질끈 감으면서 생각했다. 이번 주말에는 이불을 모두 뜯어서 빨아야겠다고.

그리고 남편은 그 주말에 이불을 모두 빨았다.

지금이야 큰 세탁기에, 이불들도 통째로 빨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때만 해도 이불 홑청을 떼어내고 빨고 말려서 풀을 하고 다시 꿰매어야 하는 방식이었으니 그 남편이 어떻게 그 과정들을 다 해냈는지 모르겠다.

다만 올케였던 우리 어머니 말로는 그 이후로는 모든 이불빨래도 남편이 했다고 한다.


여기서 궁금한 것이 있다.

남편은 자신이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해 아내와 이야기하면서 서로 기꺼이 가사를 나눠 가진 것일까?

     "여보, 이불이 더러운데 빨아야 할 것 같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글쎄, 이불빨래는 엄두가 안 나네, 어떻게 하지?"

     "이번 주말 같이 뜯어서 빨아보지 뭐, 내가 해볼 테니 당신이 좀 도와줘."

     "힘들겠지만 그래 볼까?"라고 두 분이 대화하면서 해냈을까?

아닌 것 같다. 그러는 대신,

     "여보, 이불이 더러워서 빨아야겠어. 이번 주말에 빨 테니 그런 줄 알아."라고 했을 것 같다.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고 해내며 화를 내는 남편과 조금은 편하지만 뭔지모르게 주눅들은 아내의 모습.

난 그런 두 분의 모습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발견하지 못했다.

남편은 늘 "나는 몸 약한 아내랑 사느라 모든 것을 다 내가 하고 살았다."는 푸념을 달고 계셨고, 아내는 "내가 하는 것을 늘 못마땅해하고 자기가 다 해버려서 내가 이렇게 바보로 살았다."라고 울분을 토하신다.

두 분의 모습을 볼 때마다 일상에서의 부부간 역할분담이라는 어찌보면 사소한 문제가 어떻게 두 사람의 삶을 우울하게 만드는지 보게 된다.


남편의 친구 중에 재미있는 분이 있다.

그분은 살림에 관한 한, 아니 살림뿐만이 아니라 농사와 가축 기르기까지 모르는 게 없는 분이다.

올개닉 비누 만들기는 전문가 수준이고, 밭농사 꽃 농사에서는 남편의 멘토이다.

그분이 최근에 된장, 고추장을 담갔단다. 아, 물론 김치는 늘 그분이 담근다.

뭐, 이 정도면 살림의 고수라 할만하다. 

그러면 그분의 아내는?  위의 분처럼 '바보'로 살고 있을까?

아니다. 그분의 아내는 남편의 가사에 대한 과도한 역할 수행을 나름 즐긴다.

대신 자신은 비즈니스와 가족의 사교생활에서 자신의 역할을 더 많이 찾는다.

그녀가 즐길 수 있는 데에는 두 부부 사이의 암묵적 역할 조정과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맞벌이로 역할 분담하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을 테고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먼저 미국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남편의 전업주부 역할은 더 커졌을 것이다. 

그리고 몇 년 뒤 아내가 합류해서는 두 부부가 다시 적절히 역할을 나누기로 했을 것이다. 

그때 살림 맛을 알게 된 남편은 가사의 많은 부분을 자신이 하고 싶어 했고 대신 아내는 그런 남편 덕에 비즈니스에 더 많은 시간을 쓰기로 했을 것이다.

이 두 부부에게서는 최소한 서로를 원망하거나 질책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두 커플의 차이는 뭘까?

처음 언급한 부부의 문제에서는 굳이 잘잘못을 따지자면 남편의 잘못이 더 크지 않을까?

상대방이 잘 못한다고 해서, 그냥 내가 해버리는 것이 더 빠르고 쉽다고 해서, 나 혼자 해버린다면 결국 한쪽의 짐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힘들어지고, 또 한쪽은 스스로 해나갈 수 있는 자율성과 성장 가능성을 빼앗기게 된다.

마치 어린아이가 제대로 못한다고 엄마가 이것저것 해주다 보면 다 큰 녀석들이 기본적인 것도 못하는 것처럼.

전동기구는 내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남편에게 모두 떠 넘겼다가 이제는 뭔가를 만들고 고치는 데는 젬 뱅이 되어버린 나처럼.


과잉 역할수행은 반드시 과소 역할수행을 부르게 되어있다. 꼭 부부관계만이 아니다. 모든 관계에서 그렇다.

그리고 그런 관계에서는 둘다 패자가 되어버리고만다.

한쪽은 무거운 짐에 눌려 결국 쓰러지게 되고 또 한쪽은 스스로 인생을 헤쳐나갈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

위의 두 분처럼. 


두 분이 그렇게 되기 전에 적절한 수준에서 서로의 역할을 재조정하고 서로 납득할 만큼 나누어 가졌었다면, 그러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상호 배려와 신뢰, 그리고 배움의 기회를 가졌었다면 남편 친구 부부처럼 서로의 역할 수행이 서로에게 독이 아닌 성장의 힘과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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