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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Sep 02. 2020

또 수술을 하라구요?

이번엔 쓸개를 떼어냅시다.

통증 클리닉에 다니면서 일주일 간격으로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고, 진통제를 먹고, 그러고도 낫지를 않아 카이로프렉터를 찾아가 12번 치료를 받았다. 남들은 크리스마스 시즌이라고 들떠할 때 나는 얼굴을 있는 대로 찡그려가며 스트레칭으로 어깨 운동을 했다. 그 덕에  서서히 회복되어나갔다.

그렇게 이젠 통증으로부터 해방되나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내가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더 있었다.




언젠가부터 등 쪽이 아파왔다. 심한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 결리듯이 아픈 것이 신경이 쓰였다.

매년 정기 검사할 때 받았던 초음파에서 언젠가부터 담낭에서 담석이 보인다고 했었는데 이번에는 그것이 두배로 많아졌단다. 소화기 내과의사는 등쪽의 통증은 담석 때문 일 거라며 외과의사를 만나보라고 했다. 

외과의사? 

불과 몇 달 전에 수술을 했던 나는 난감했다.

또 수술을 받아야 하나?

자궁도 용도 폐기했는데 이번에는 쓸개 차례야?

이제 겨우 오십견도 좋아지고 있는데... 젠장!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던 나는 조금 더 건강을 회복한 뒤에 수술을 받기로 했다.


몇개월뒤, 잘 차려입은 젊은 흑인 외과의사를 찾아갔다.

그는 내 검사결과지를 살펴본뒤 문진을 조금 하고는 수술 일정을 잡아주었다.

이번에도 쓸개 제거 수술은 간단했다. 

지역종합병원이다 보니 응급환자로 인해 수술시간이 대여섯 시간 미루어졌을 뿐이다. 

( 링거까지 달고 침대에 누운채 수술을 몇시간씩 기다리며 한국도 이런가?하고 생각했었다.)


겨우 아문 배꼽 위에 또다시 구멍을 뚫고 저번과는 다른 위치에 몇 개의 구멍을 새로 뚫고 로봇수술을 받았다.

지난번 수술때는 그래도 하룻밤은 병원에서 묵게 해 주었지만 이번 수술에서는 하룻밤도 허락하지 않았다. 

수술 후 깨어나 와들와들 떨고 있는 나에게 담요 몇 장 갖다 준 게 친절한 그들이 해준 전부였다.

내가 조금 진정되고 의식이 완전히 돌아왔음을 확인한 간호사는 밤 10시쯤 "이젠 집에 갈수있겠지?"라고했다.

이미 한번 미국 병원의 드라이함을 경험한 나는 가능한 한 빨리 병원을 벗어나는 게 상책이라 생각하고 간호사가 가져다준 휠체어에 옮겨 앉았다. 그리고 늦은 밤의 드라이브로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수술 후의 통증 경험은 이번에도 동일했다. 지난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예후를 가늠할 수 있다는 정도.

하지만 덜 웅크리고 더 많이 움직이면서 예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오십견이 왔다. 반대쪽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예방을 했기에 통증 강도가 조금 약하다는 정도였다.


두 번의 수술과 양쪽 어깨의 오십견으로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나는 낙심천만하고 의기소침해졌다.

뭐 이런 저질 체력과 건강상태로 어떻게 살아나갈수있을까싶어 어떤 날은 우울의 나락으로 빠져들기도 했다. 

"누구 말대로 '삼재수'인가? 나가는 삼재수가 더 힘들다던데 그건가? 그러지 않고는 이럴 순 없잖아."


바닥을 치면 오히려 용기가 난다고 했던가? 

어느 날 나는 망가진 건강과 체력을 회복하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이렇게 망가지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달리기를 다시 시작해야지'라고 마음먹던 바로 그날 저녁,

나는 맥없이 맨발로 집안을 돌아다니다가 식탁 다리에 발이 차이고 말았다. 눈물이 찔끔나도록 아팠다.

그리고 그 바람에 왼쪽 새끼발가락이 부러져버렸다. 아픈것은 말할것도없고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발가락이 부러지다니! 어쩌면 이렇게 종류별로 다양하게 아프냐.."퉁퉁부은 발가락을 보며 낙심이 되었다..

달리기는 그렇게 물 건너갔다. 


이쯤 되니 그냥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바보 이반이 된 것 같았다.

바보 이반에게 독이든 침을 먹여 복통을 일으키고, 하는 일마다 방해를 하는 도깨비들처럼, 내가 건강하게 잘 사는 꼴을 못 보는 존재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바보 이반에게는 바보스러운 뚝심과 체력이라도 있었지만, 나는 몸도 마음도 완전 방전이 되어버렸다.

몸이 아프면 버텨내는 강한 정신이라도 있든가, 마음이 무너지면 지탱할 강한 체력이라도 있어야하는데 나는 그 둘다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그런 상태의 나에게 패닉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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