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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Sep 01. 2020

몸도 마음만큼 아프다.

쓸모를 다한 뒤 주렁주렁 혹을 달고 있는 장기를 용도 폐기하다.

마음에 검은 구름이 몰려오는 동안 몸에도 빨간등이 켜지고 있었다.

2년에 걸쳐해야 했던 두 번의 수술과 수술 후 양쪽 어깨에 교대로 찾아온 오십견, 거기에 새끼발가락 골절까지.

마치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에 나오는 도깨비들처럼, 내 건강을 망치기 위해 작정하고 달려드는 무엇이 있는지 내 몸은 연속적으로 시달리고 있었다. 피폐해지는 몸과 마음은 뭐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같이 약해져 갔다.




중년에 들어선 남들 대부분이 폐경이라는데 나는 무슨 청춘이라고 매달, 그것도 어떤 때는 30일도 아닌 25일 주기로 달거리를 하고 있었다. 주기도 짧은 데다가 꼬박 일주일씩을 하니 한번 달거리를 치르고 나면 어찔어찔하니 빈혈 증세가 뚜렷했다. 

매달 그런 고된 행사를 치르면서도 나는 '늦은 폐경'이 '빠른 폐경' 보다는 낫다는 소리에 혹해 내 안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6개월에 한 번씩 하는 혈액검사에서 갈수록 헤모글로빈 수치가 떨어지니 내시경 검사를 해보잔다.

입으로부터 시작해서 항문에 이르기까지의 소화기 중 어딘가에서 출혈이 있는지 의심이 되는가 보다. 

아마도 그 정도의 빈혈이었겠지. 하지만 위내시경과 장내시경 검사 소견은 정상.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사는 철분을 먹으라 처방해주었지만 나는 철분보다 부인과 진료를 받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빈혈의 원인은 과도한 달거리가 문제일 거라 직감했다.


불길한 직감은 늘 적중하는 법.

내 자궁 안에는 몇 개의 크고 작은 근종들이 있었다. 과도한 출혈은 그것들 때문이었다. 

게다가 근종들의 위치가 좋지 않았다. 자궁경부 쪽과 난소 가까이. 

지금 현재는 악성이 아닐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악성으로 바뀔 수 있는 위치라고 했다.

진료받던 부인과 의사로부터 의뢰서를 받아 큰 병원의 부인과에서 자궁적출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노련한 의사가 로봇수술로 시술을 해서 수술은 생각보다 쉽게 끝났다. 

그다음에 겪은 일들에 비하면.


한국의 경우 수술을 하려면 우선 입원을 하고 (최소한 전날), 수술 후엔 하루 이틀 경과를 보고 퇴원을 하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 너무나 신속, 드라이하다.

나는 당일 병원에 가서 몇 시간 뒤 수술을 하고, 전신마취에서 깨어나 하룻밤을 병실에서 지새운 뒤, 다음날 내쫒기듯이 병원에서 나왔다. 

정식 입원도 아니었다. 입원을 하면 보험사로부터 많은 돈이 청구되기 때문에 입원 없이 수술 뒤 하룻밤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병원에 머문다는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하룻밤 머문 것이었다.


병실에 올라와 통증과 씨름을 하던 중에도 소변을 보려고 일어나는 나에게 마침 들어온 간호사가 활짝 웃으며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래, 당신 참 잘하고 있군. 날 밝으면 집에 가야 하니까 열심히 움직이는 연습 하세요." 

그때가 새벽 5시쯤이었다. 

병원에 와서 수술을 받고, 병실로 옮겨져 채 7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각이었다.


그나마 개복이 아니라 그런지 어슬렁거리며 간신히 걸을 수는 있었고 나를 데리러 온 남편과 걸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 계단을 내려가 병원문을 나섰다.

하지만 잔뜩 웅크린 채 두 손으로 배를 부여잡고 가까스로 차에 올라탄 나는 도심을 벗어나기까지 계속 비명을 질러야 했다. 

도심 안 도로에는 왜 그렇게 튀어나온 맨홀 뚜껑들과 움푹 파인 아스팔트 구멍들이 많은 건지..

차가 조금씩 덜컹거릴 때마다 아픈 배를 부여잡고 비명과 함께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아, 미국은 정말 환자로 살기엔 너무 힘든 나라다.)


집에 돌아온 나는 거의 한 달 동안 제대로 움직이질 못했다. 침대에 눕거나 일어나기가 어찌나 힘들던지.

안 그래도 구부정한 평소의 자세가 복부 전반에 걸친 통증으로 더 구부정해져 버렸다.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배를 감싸 안은 구부정한 자세. 

하지만 그 자세로 인해 수술 자리의 통증은 시간과 함께 점점 줄어드는데 반해 새로운 통증이 생겨버렸다. 

바로 오른쪽 어깨의 통증, 흔히 말하는 오십견이었다. 

근 한 달을 웅크린 자세로 생활하면서 생긴 급성통증이었다.

오십견이 심한 날은 가만히 누워있어도 아파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내 입에서 저절로 한탄이 터져 나왔다. "아, 인생이 왜 이러냐, 정말 인생은 '고'(pain)로구나...."

이번에는 아픈 어깨를 부여잡고 통증 클리닉으로 향했다.

(다음 편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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