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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Sep 26. 2020

내 불면증, 그저 느긋해지는수밖에.

마음앓이의 신호, 불면증


며칠 전 마음 상하는 일이 있었다.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내가 쏟은 시간과 정성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언짢아진다. 게다가 어르신 한분이 또 입원이다. 이런 걱정스럽고 언짢은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더니 잠에 균열이 생겼다. 겨우 되찾은 '충분한 잠'이 어느 순간 반토막이 나버렸다.


사실 나는 잠순이다. 갱년기에 들어서면서 평생을 걸쳐 나를 괴롭혔던 초저녁 잠과의 전쟁이 끝나는가 싶었는데 이제는 정반대 모습으로 잠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바로 불면이다.

초저녁 잠은 잠이 쏟아지는 그 시간만 넘기면 그런대로 견딜만한 어려움이었지만 불면은 한번 시작되면 그다음 날의 일상을 모두 엉클어뜨려버릴 뿐만 아니라 몇 날 며칠에 걸쳐 심신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불면증으로 며칠 힘들어하고 나면 그다음은 늘 불안해하던 패닉 증상들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내곤 했었다. 불면은 내가 많이 날카로워졌거나 스트레스 항아리가 다 차서 넘치기 일보직전이라는 신호였다.





얼리 버드답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나는 평생에 걸쳐 거의 밤 9시 전후가 졸음과의 전쟁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시각만 넘기면 그런대로 참으면서 공부도 하고 '주말의 명화'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평생을 살았다.

그 덕에 시집살이 중에는 모두가 올빼미들이었던 시댁 가족들에게 일찍 자러 들어간다고 구박도 많이 받았고 남편 역시 잠 패턴이 다르다고 투덜거리기 일쑤였다.

언젠가는 내 잠 패턴 때문에 "아이를 그 따위로 키운다"라고 시아버지에게 혼난 적도 있었다.

얘기인즉은, 자기 전 동화책을 읽어달라는 딸아이와 나란히 누워 동화책을 읽고 있자니 두어 페이지도 못 넘기고 졸음이 덮쳤다.

 "호랑이가 다가오자 토끼는,, 그래서 토끼가,,, 호랑이가,,, 거북이를,,...."

횡설수설 몇 가지 동화가 뒤섞여서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자 네살짜리 딸의 투정, "엄마, 이야기가 뭐 그래!?.. 잘 읽어줘, 잉~"

"그래그래, 다시 읽어줄게, 응 그러니까 호랑이가 토끼를...호랑이가 토끼를...zzzzzz..."

그런 우리 둘의 실랑이를 듣고 있던 시아버지가 버럭 소리를 지른거였다. 

"졸리면 들어가서 잘 것이지 애가 해달라는 대로 다해주냣!!!" 

나랑 육아방식이 다른 시아버지의 꾸중이었지만 어쨌든 이 일도 내 못말리는 초저녁 잠버릇 때문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던 내가 갱년기를 건너면서, 또 패닉을 경험하면서 한동안 잠을 잃어버렸었다.

불면은 어느 날 느닷없이 새벽 두세시에 잠이 깨면서 시작된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것도 아니면서 이유 없이 잠을 깬 나는 시간을 확인한다. 두세 시다. 

시간을 확인하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든다. 며칠 전부터 같은 시간대이기 때문이다.

일어난 김에 화장실도 다녀오고 떠다 놓은 물도 한 모금한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눕는다.

누우면서 보니 옆에 누운 사람은 코까지 골면서 잘 자고 있다. 

그 사람처럼 나도 다시 자야 한다. 아침이 되려면 몇 시간 남았으니 더 자야 한다.

그런데 잠이 달아났다. 달아난 정도가 아니라 점점 말똥말똥해진다. 

아놔,,,, 지금부터 잠들기는 틀린 것 같다. 

나는 그때부터 울타리에 있는 양이 몇마리인지 세기를 시작한다. "한마리, 두마리,  세마리..."하지만 소용없다.

다시 성모송을 암송한다. 그것도 소용없다.

왠지 누운 자세가 불편한 것 같아 다시 자세를 바로잡아본다. 그뿐이다. 아무 도움이 안 된다.

한참 별 궁리를 하다가 시계를 쳐다보니 겨우 한 시간 지나있다. 

안되겠다싶어 다시 일어나 주섬주섬 약통을 뒤져 멜라토닌을 꺼낸다. 

멜라토닌은 자기 서너 시간 전에 먹으라고 했는데 아무러면 어떠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기대해본다. 하지만 소용없다. 

그래서 이번엔 잠을 포기하고 생각에 몰두해 보기로 한다. 지나온 일, 어제 있었던 일, 오늘 있었던 일,..

그러다 5시 즈음해서 까무룩 잠이 든다. 

그렇게라도 다시 잠이 들면 그래도 괜찮다. 

한참 심할 땐 멜라토닌도 소용없다. 그럴 땐 하는 수없이 비장의 졸피뎀을 꺼내 삼킨다.

졸피뎀은 그래도 서너 시간의 잠을 허락한다. 하지만 그것을 매일 먹을 수는 없지 않나..

그다음 날은 다시 멜라토닌만으로 버텨본다. 

어떤 날은 아예 처음부터 잠들기가 불가능하다. 머리는 아프고 멍하고 무척 피곤하다. 그런 때는 마이클 잭슨이나 삼성의 그 누구나도 다 이해가 된다. 그냥 잠들 수 있다면... 푹 잠들 수만 있다면...

아, 졸음이 쏟아지는 그 달콤함을 되찾을수만있다면....

이렇게 며칠을 보내고 나면 몸무게가 2-3파운드 줄어있다. 

그리고 만성두통이 나의 일상을 잘근잘근 물어뜯는다.

이런 상황일 때 엎친데 덮친격으로 느닷없이 패닉이 덮친다. 또는 패닉 전조증상으로 불안감이 휘몰아친다. 

불면으로 쉼을 가지지못한 내 뇌가 지칠대로 지쳐 제대로 작동을 못하고 있다는 소리이다.


잠을 못 잘 때는 매일 밤이 되는 것이 두려웠다.

불면으로 지친 나의 뇌는 또다른 불면을 불러왔고 심신을 무너뜨렸다.

그때의 내 기도는 "제발 잠 좀 자게 해 주세요"였다.





지금도 나는  잠을 가장 우선으로 한다. 먹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삶의 요소이다.

평소 자는 시간 즈음해서 고맙게도 졸리면 '이때다'하고 곧바로 잠모드로 재빠르게 전환한다

중간에 깨도 절대 일어나지않늗다. 내 경험으로는 일어나서 무엇인가를 하면 완전히 못 잔다.

그리고 가능하면 수분 섭취 줄여 소변 회수 줄인다. 나름의 잠 확보전략이다.


요즈음은 나름 충분한 잠을 자고있었다.

그러다 요 며칠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또다시  잠에 영향이 오는 것 같다.

다시 잠자기 전략에 전력투구한다. 우선 내 잠을 방해하는 나의 불편한 마음에 집중해본다.

언짢아진 마음을 다시 한번 들여다본다. 내가 애썼던 것만 생각하니 상대방에게 화를 내는 것 같다.

상대방의 반응을 다시 한번 들여다본다. 그의 반응이 어떤 맥락에서 그런 것인지 다시 생각해본다.

그러고 났더니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그래, 그럴 수 있는 거다. 내가 마음 상한 것보다 상대방이 마음 상한 것이 더 클 수 있다"는 기특한 생각까지 든다. 그러면서 그 일이 내 마음에서 조금 내려놔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한번  '느긋해지기', '대충 살기', '우주 속의 나 생각하기'를 하면서 털어 내기로 한다.

일주일째 이어진 불면이 오늘은 괜찮을 거라는 자기 암시도 한다.

옆에서 남편은 내가 먹고 있는 한약이 도움을 줄 것이라고 하고, 나는 요며칠 정진한 기도와 묵상으로 '잠'을 되찾을 것이라 믿는다.


"제발, 오늘 밤은 잘 잘수있게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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