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여성' 그 너머에 있다.
검정 닭이 알을 품은 지 정확히 21일째.
지난 수요일 오후 검정 닭은 하늘 아래 '어미'가 되는 소임을 멋지게 해냈다.
검정 닭 저 자신은 인공부화기에서 깨어나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우편 수화물로 우리곁에 왔지만, 자신은 21일간 꼬박 품어 새끼들이 엄마품에서 태어나게 해주는 큰 덕업을 쌓았다.
그리고 그 곁에서 나는 '암탉'이 '어미닭'이 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우리의 아침 일과는 닭장을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밤새 무슨 일은 없었는지, 검정 닭이 알을 잘 품고 있는지, 혹시 다른 녀석들이 방해하지는 않는지.
닭 장안에는 산란 통이 세 개 있다. 그 세 개의 방에 아침이면 녀석들이 순서대로 들어가 알을 낳고 있었다.
아침 햇살이 뒷마당에 넓게 펴지기 시작하면 닭들은 알을 낳기 위해 부지런히 산란 통을 드나든다.
밤새 알을 품느라 몸이 굳은 검정 닭도 아침이면 기지개를 켜고 날개를 손질하기 위해 잠시 둥지를 비운다.
그러면 개념 없는 다른 녀석들이 잽싸게 그 둥지 안으로 들어간다. 빈방이라 그런 건지, 이미 놓여있는 알들 속에 자신의 알을 낳으려는 속셈인지는 모르겠지만 지켜보던 우리는 혹여 품고 있던 알들이 상할까 봐 외간 녀석들을 끌어내고 잠시 입구를 봉해놓기도 했었다.
검정 닭이 기지개를 다 켜고 모래 목욕을 끝낸 뒤 다시 둥지로 들어갈 때까지.
딱 20여 분동안.
검정 닭은 하루 한두 번, 주로 아침 녘에 둥지에서 나와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졌다.
있는 대로 몸을 부풀리느라고 지친 날개와 털들을 펄럭이고 가다듬고 모래 목욕을 하고 먹이도 먹었다.
그러는 녀석을 지켜보다가, 또 한눈을 팔다가, 다시 보면 어느새 다시 둥지로 들어가 앉아있었다.
그렇게 꼬박 21일간이었다.
만 21일이 지나가자 어느 날 가느다랗게 삐약거리는 소리가 닭 장안에서 들렸다.
드디어!!! 병아리가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온 것이다.
하지만 검정 닭의 잔뜩 부풀려있는 몸통 주변에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나고, 다시 찾은 닭장 안, 검정 닭의 머리 쪽에 갈색의 뭔가가 움직인다.
병아리이다.!!!
처음 본 녀석의 모습은 제법 힘찼다. 삐약 소리도 힘이 있었지만 움직임도 활발했다.
너무 예뻐서 가까이 다가가자 녀석이 어미닭의 가슴털 밑으로 숨어버린다.
몇 시간 뒤 다시 가본 닭장에서는 샛노란 병아리가 한 마리 더 발견된다.
아마도 엇비슷하게 태어난 것 같다. 여섯 개의 알들 중 가장 건강한 녀석들이었겠지.
검정 닭은 병아리들의 엄마가 되면서 좀 더 사나워져 있었다.
병아리들을 만지려고 손을 가까이 가져가면 여지없이 쪼아댔다.
평소 알을 품고 있을 때 쓰다듬어주면 '구구'거릴 뿐 미동도 않던 녀석이었다.
우리들에 놀란 병아리들이 고개를 처박으며 어미 가슴털께로 파고들면 검정 닭은 윗몸을 살짝 들어 병아리들을 품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아,,, 그 모습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어미'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또 어떤 땐 병아리들이 검정 닭의 얼굴 부분에 그 작고 여린 부리를 부비면 검정 닭은 병아리에게 얼굴을 내어주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때 검정 닭의 모습에서는 모든 '어미'들의 '품격'이 느껴졌다.
두 마리가 태어난 뒤 연달아 깨어날 녀석들을 기다리던 금요일 아침, 다소 쌀쌀한 추석 다음날 아침이었다.
또다시 두 마리의 병아리들이 깨어났다.
새로 태어난 녀석들은 두 녀석 모두 갈색 병아리였다.
그런데 두 녀석은 방금 알을 깨고 나왔는지 몸이 젖어있는 데다 제대로 서지도 못한다.
이틀 전에 태어나 활발해진 두 녀석들과 비교하면 너무 약하고 위태롭게 보인다. 말 그대로 신생아들인 셈이다.
안쓰럽게 쳐다보며 불안하던 마음이 얼마뒤 현실이 되고 만다.
두 녀석 중 한 녀석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미닭과 다른 병아리들이 아기 병아리의 꽁무니를 쪼아댄다.
그것을 지켜보던 남편이 안 되겠다 싶어 녀석을 둥지에서 꺼내어 따로 놓아둔다.
하지만 녀석은 이미 꽁무니가 망가져있고 피가 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가슴과 배로 힘겹게 숨을 쉬고 있었다.
우리는 햇볕이 잘 들고 따뜻한 그린하우스 안에 작은 상자를 만들어 그곳에 아픈 아기 병아리를 놓아두었다.
그리고 미처 깨지 못한 알 두 개도 가지고 나왔다.
아침 녘 모래 목욕을 히스테릭컬하게 하던 어미닭은 더 이상 두 개의 알이 있는 둥지로 돌아가려고 하질 않는다.
검정 닭은 활발하게 움직이는 두 마리의 병아리를 보면서 더 이상의 알 품 기는 소용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또는, 병아리들의 삐약거리는 소리가 어미닭의 뇌에 신호를 보내 더 이상 품는 행동을 하지 않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우리들이 아기가 우는 소리를 듣고 저절로 돌던 젖을 경험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여하튼 어미가 포기해버린 알 두 개와 아직 제대로 서있지 못하는 신생아 병아리를 인큐베이터(밑에 짚을 깔고 등을 달아 따뜻하게 만들어놓은 종이상자)로 옮겨놓았다.
그러는 사이 종이상자 귀퉁이에서 힘겹게 숨을 쉬던 아픈 병아리는 끝내 하늘나라로 돌아가버렸다.
병약하게 태어난 병아리를 어미가 냉혹하게 자연도태시켜버린 것인지, 아니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애당초 살 가망성이 없는 병아리인지는 몰라도 숨이 멎기 전 몇 분 동안 그 가냘픈 부리와 가슴으로 큰 호흡을 몰아쉬는 모습은 인간들의 임종 호흡과 다를 바가 없었다.
검정 닭의 자식들이 셋이나 생기자, 우리는 새끼를 거느린 '가족의 집'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이 되었다.
닭 장안에 저 어린 병아리들을 같이 넣어줄 수도 없고, 게다가 가을밤은 병아리들에게는 힘든 추위일터였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우리는 닭장 옆 그린하우스를 검정 닭 가족의 임시 거주지로 결정했다.
그곳은 닭장보다 햇볕이 더 많이 들어오고 더 따뜻해서다.
아직 늦오이가 자라고 있는 그린하우스 한편에 짚을 깔고 알이 들어있는 인큐베이터도 놓고 검정 닭과 세 마리의 병아리들을 옮겨놓았다.
그러자 어미닭은 한편에 자리를 잡고 마치 둥지에서처럼 날개를 부풀려 앉는다. 마치 늘 그래 왔었던 것처럼.
어미닭 주변을 맴돌던 병아리들이 어느새 어미닭 날개 밑으로 숨어든다.
검정 닭은 알을 품는 동안 어미로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검정 닭은 예전의 검정 닭이 아니었다.
가을볕이 따사로운 정오 즈음, 그린하우스 문을 열어놓자 검정 닭이 병아리들을 몰고 밖으로 나온다.
어미가 쪼는 대로 병아리들도 따라서 풀을 쪼고, 어미가 가는 데로 종종거리며 쫓아다닌다.
그때 뒷마당에 흩어져 모이 활동을 하던 몇 마리의 닭이 병아리 근처로 모여든다.
"어, 이 낯선 쪼그만 녀석들은 어디서 왔지?" 하며 궁금한 듯 다가온다.
그러자 검정 닭은 가차 없는 몸짓으로 얼쩡거리던 다른 닭들을 쫒아버린다. 카리스마가 넘쳐난다.
하지만 그 몸짓은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 집 닭들에게 가장 성가시고 무서운 존재는 우리 집 강아지이다.
여기저기 흩어져 평화롭게 먹이활동을 하는 닭들은 멀리서부터 쏜살같이 뛰어와 닭 몰이를 하며 놀자고 달겨드는 강아지만 보면 날아지지 않는 날개를 퍼덕이며 도망가느라 바쁘다.
그런 강아지가 낯선 병아리를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가려다가 검정 닭에게 사정없이 쪼이고 말았다.
병아리들을 뒤에 두고 양쪽 날개를 들어 올린 채 강아지를 향해 매섭게 달려들던 어미닭의 모습이란!!!
놀라웠다!!!.
저보다도 몸집이 두배 이상이나 큰 강아지에게 단호히 맞서는 모습은 여장부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경이로운 삶의 한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끝나가고 있다.
우리들 자라던 예전 같으면 시골집 어디에서나 벌어지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과 함께 내 곁에서는 사라졌던, 대부분의 도시인들에게서는 사라졌던 생생한 삶의 모습이었다.
지난 몇 주 동안 나는 '암탉'은 어떻게 '어미'로 거듭나는지를 경이롭게 지켜보았다.
또한 검정 닭이 병아리들을 거두는 모습을 보면서 '어미로서의 삶'에 다시 한번 숙연해졌다.
그러면서 나를 포함한 '모든 어미'들의 모습과 검정 닭의 모습이 다르지 않음을 보게 된다.
동시에 드라마틱한 생명의 탄생 과정을 지켜보는 행운 속에서, 나는 모든 동물들의 삶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새롭게 깨닫는다.
생명의 역사는 결국 모든 '어미'들의 '어미 다움'으로 이어져왔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