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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Sep 29. 2020

이민 1.5세의 컴플렉스

그 집 딸도 사나워요?


아는 분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갔을 때이다.

거실에 놓인 가족사진을 보다가 그 집 딸의 얼굴을 보고는 "따님이 아주 야무져 보이네요"라고 칭찬을 했더니 돌아온 대답이 "야무지지요, 아주 야무져서 좀 사납지요."였다.

왠지 확 공감이 되면서도 짐짓 무심한 척 물어보았다. "왜 사납다고 그러세요?"

부모의 설명인즉, 영어가 부족한 부모를 도와 미국인 건물주들과 대화를 하거나 변호사들과 만나서 이야기할 때 보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공격적이라는 것이다. 

그 덕에 손해를 보거나 피해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생각해보니 아이가 미국사회에 서툰 부모로 인해 그런 공격적인 태도를 갖게 된 것이 아닌가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몇 년 전의 일이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있던 왼쪽 가슴의 섬유선종이 커졌었다.

매년 검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 날은 엑스레이 검사 뒤 곧바로 초음파 검사를 하란다.

새로 일정을 잡는것이 아니라 엑스레이 검사 뒤 곧바로 하라고 하는데서 조금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검사 결과도 젊은 백인 여의사가 기다리고있던 나에게 직접 와서 설명했다. 

이상 소견이 있으니 조직 검사를 하라고.


집에 돌아와 예약을 하고 며칠 뒤 큰아이와 함께 여성 전문 병원으로 갔다. 불안한 마음을 가득 안고서.

입구에서부터 여성병 전문 병원임을 알려주는 핑크색 포스터와 친절한 안내표시들이 있었지만 나는 점점 더 긴장되어갔다. 접수를 하고 몇 가지를 작성하고 나니 수술실로 본인만 들어오란다. 

같이 왔던 딸아이는 대기실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나는 간호사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마사지 침대처럼 생긴 수술대가 옆에 있고 뚱뚱한 흑인 아줌마 간호사가 친절하게 나를 맞았다. 

그녀는 나에게 이것저것을 물으며 확인한 뒤 친절함과 연민을 가득담은 시선으로 나를 지그시 쳐다봤다.

그리고는 잔뜩 긴장한 나를 안심시키려고 그랬는지 걱정하지 말라며 나를 가볍게 안아주었다. 

그러자 예기치 못하게 내 눈에서 눈물이 확 쏟아졌다. 아마도 겁에 질리고 잔뜩 긴장해 있다가 친절한 간호사의 위로와 허그로 애써 누르고있던 감정 유지선이 터져버린것같았다.


그런데 그때 우리 딸이 수술실 문을 열고 들어 왔다. 하필 바로 그 순간에 !! 

그리고는 딸아이가 울고 있는 나를 본 것이다. 뜨악하고 놀란 표정으로.

딸아이는 내가 설명하거나 말릴 사이도 없이 그 간호사에게 소리를 질렀다. 

"왜 우리 엄마 울리는 겁니까!!!!".

친절했던 간호사는 순간 황당했는지 어깨를 한번 으쓱했고 당황한 나는 그런 게 아니라고 눈물을 훔치며 딸을 진정시켜야 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그 친절했던 아줌마 간호사에게 많이 미안하다. 

유방암 일지 몰라 잔뜩 겁먹은 환자를 위로해준 것뿐인데 환자의 딸에게서 그런 공격을 받았으니 말이다.


딸은 겁먹은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야 했다. 유방암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나에게서 시작되어 고스란히 딸의 두려움이 되어있을터였다. 유방암으로부터, 낯선 환경으로부터 엄마를 지켜내야한다고 느꼈을터였다.

겨우 대학 신입생이었지만 자신이 미국 사회에서는 초등학생 수준이었던 이민 1세대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야한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저 자신도 이제 겨우 스무 살의 어린 나이로 어른들의 세상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영어야 부모보다는 잘한다지만 세상일은 잘 모르질 않나. 

그러니 아직 어린 딸아이가 긴장할 수밖에, 그러니 노련하고 유연하기보다는 공격적일 수밖에....


사랑하고 존경하던 부모가 낯선 미국 사회에 와서 언어로, 문화적 갭으로 자기 보호를 못하고있다고 느낄 때, 성장한 딸들은(혹은 첫번째 자녀들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과도한 역할 수행의 짐을 떠안는 것 같다. 

미처 자신도 어른으로서의 준비가 안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은 이민 1세대와 1.5세대 자녀들과의 사이에서 흔히 있는 일인듯하다.

아는 분의 '야무진' 큰딸도 '사나운' 딸로 거듭나야 했고 내 딸도 더 강하게 변해갔다.




세월이 흐른 이제는 그런 일들을 뒤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내가 미국 사회의 초년생이라는 사실도 받아들이고 내가 조금 어리버리한 것도 그리 개의치 않는다. 

무엇보다도 아이들 도움 없이 부족한 대로 우리의 일은 우리가 처리한다. 

아이들도 더 자라 어른이 되었다. 아이들은 더 이상 우리의 보호자가 되지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아정체감이 형성되는 청소년, 청년기 때, 일정부분 부모의 역할을 보조했던 과도한 역할수행은 아이들의 성격에 이민 1.5세대로서의 특징을 새겨 놓은 것 같다. 

가족에대한 강한 애착과 과도한 책임감이라는 이름의 컴플렉스로. 

그것은 아마도 청소년기의 자녀들을 데리고 타국살이를 결행한 이 세상 모든 이민 가족들의 특징이지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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