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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Sep 24. 2020

별빛, 불빛, 눈빛

가을밤 모닥불곁에서...

일 년 만의 캠핑이었다.

몇 주 전 잡았던 이박삼일의 일정이 코로나 비상으로 무산되고 겨우 만든 하룻밤의 가을 캠핑.

일박이다 보니 멀리 가지 못하고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의 주립공원 캠핑장으로 향했다. 

가깝지만 그곳은 대통령 별장이 있다는 풍광 좋은 곳. 

그리고 이번 캠핑에는 평소 좋은 대화를 자주 나누던 동년배 친구 부부와 함께였다.

지난봄부터 시작해서 가을이 깊어가도록 유예되었던 일상에서의 '놓임'이 하룻밤 동안 허락되었다.

캠핑의 진수는 누가 뭐래도 모닥불가에서 불멍 때리기, 그러다가 진솔한 대화 나누기이다.

이번 캠핑 중 모닥불가의 대화 주제는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과 관련된 것이었다.




차가운 냉기가 어깨 위로 내려앉는 한밤중, 모닥불가의 우리들은 장작불이 춤을 추는 모습을 한참 동안 말없이 지켜보다가 그 불꽃의 유혹에 힘입어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사실 이야기의 시작은 나로부터 였다. 불꽃을 바라보는 그때까지도 영향을 받고 있던 며칠 전의 일.

내 마음속 불편한 한 자락은 독서모임에서 있었다. 나는 모닥불가에서 그 불편함을 꺼내 태워버리고 싶었다.


불편한 에피소드의 전말은 이랬다.

나의 지난 독서모임에서는 채사장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0편을 하고 있었다.

이 책의 1편은 현실세계를, 2편은 현실 너머의 세계를 다루었다면 0편은 우주와 인류의 탄생과 모든 종교의 기원을 다루고 있는데 우리는 이미 1편을 재미있게 나누었고 이어서 0편을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발제자는 나였다.

사실 그 책의 0권에서 다루는 우주의 탄생 편은 좀 어렵다.

'나와 우주'를 도출하기 위해 제시되고 있는 천체물리학의 세계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하는 수없이 읽고 다시 또 읽고, 그리고 나는 메모를 해나갔다.

그리고 내가 이해한 범위 내에서 열심히 설명했다. 다중우주론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 중심 원리'에 대해서.


여기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무한한 우주 속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필연적으로 발생한 우리 우주와 생명의 탄생을 설명한 '인간 중심 원리'에 한 사람이 불편해하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우주는 창조주 하느님의 "빛이 있으라"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두 시간 가까이 땀을 흘려가며 설명하던 나에게 그녀는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지 불편하다"라고 했다. 서두에서 지적 여행을 위해 '색안경'을 벗어달라는 저자의 요청을 반복해 들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녀는 그 책의 후반부를 다룰 다음 시간은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아, 그 순간, 나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깊이 안도했다.

내 입은 벌어진 채 다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가톨릭 신자이다.

내가 갖는 신앙의 신비는 내가 아는 지적 지식으로는 담아내기 어려울만큼 깊고 심오하다. 

하지만 최근 2-30년 동안 밝혀진 우주의 실체는 과학적 논리와 사실 아닌가? 

나의 종교적 신념을 불편하게 한다고 과학적 사실을 부인할 것인가? 

그녀는 저자의 논리 전개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불편해한 채 돌아갔다.

그리고 나 역시 그녀의 반응에 불편함을 느꼈고 그 불편함은 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날밤 모닥불가에서 나누었던  대화 주제의 이면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 아니라 그로 인한 그녀와 나의 불편함이었다. 

하룻밤의 캠핑 뒤 뒤돌아보니 우리 둘의 불편함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바람 없이, 소리 없이 타오르는 불꽃은 우리들의 불편함이 별거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불편함의 배경에 관심을 가지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가 왜 그렇게 강한 종교적 신념을 갖는지. 그리고 나는 그녀의 반응에 왜 불편했는지...

더불어 독서모임에 종교적 신념이 강한 구성원이 있을 경우엔  책 선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구체적 사실까지도.

그것이 아무리 넓고 얕은 지식, 얕고 넓은 지식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렇게 나의 불편한 마음은 한밤중 모닥불의 불쏘시개가 되었고 사그라들어가는 불위에 놓아둔 군고구마 냄새는 불편한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다.


문득, 시간을 가늠하기 어려운 한밤중,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가을 하늘의 별들이 총총하다.

반짝이는 별빛을 내 눈에 담으며 별들이 우리의 대화를 귀기울여주었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고개를 떨구어 모닥불의 노랗고 빨간 불빛을 바라본다. 불빛 역시 우리들 눈 속에 담겨있다.

우리들의 눈빛이 따뜻하고 고즈넉해진다.

나는 그 눈빛으로 불꽃 속 타고 남은 하얀 재를 유심히 바라본다.

다시 내 마음은 하얀 재처럼 희고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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