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강 Oct 13. 2020

걸스카웃 쿠키, 우리 동네 아이들

이웃집 아이를 키우는데 조금의 보탬이 되기 위해서.

매년 이맘때쯤이면 우리 동네 걸스카웃대원인 아이들이 쿠키를 팔러 온다. 나는 몇 집 건너의 나탈리가 초등학생 때부터, 이제는 바통을 이어받은 옆집의 헤일리가 팔러 오는 쿠키까지 근 십여 년째 걸스카우트 쿠키를 사 먹고 있다. 아이들은 쿠키 팸플릿과 주문서를 들고 집집마다 돌면서 쿠키를 팔며 경제를 배우고, 쿠키를 설명하고 주문을 받는 의사소통기술을 배우고, 자기가 속한 모임을 위한 자원봉사 모금활동을 배운다.

이런 활동들은 집이나 학교가 아닌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 경험하고 배우는 일들이고, 나는 기꺼이 '이웃집 아이들'의 교육에 동참해준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아이들이 인종적 편견 없이 크는데 동참한다는 마음이 든다.




어느 날의 늦은 오후,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린다.

하던 일을 멈추고 문을 열어보니 우리 집에서 너댓 집 건너에 사는 나탈리와 그 애의 엄마가 웃으면서 서있다.

나탈리의 손에는 걸스카웃 본부에서 만들어진 쿠키 판매 팸플릿과 오더를 받는 종이가 들려있다.


나탈리는 비쩍 마른 백인 여자아이이다.

초등학교 3학년 정도부터 보아왔으니 몇 년째 보아온 아이이다.

매일 우리 집 앞을 지나 스쿨버스 스탑 지점까지 걸어가며 자주 마주친다.

내가 아침 일찍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과, 아이들이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겹치기 때문인데, 나탈리는 아침인사를 하는 나에게 수줍게 웃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할 뿐 먼저 인사하는 법이 없는  숫기가 없는 아이이다.


그런 아이가 엄마의 수퍼비전(?)하에 쿠키 영업에 나선 것이다.

내가 궁금한 듯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자 옆에서 나탈리 엄마가 아이에게 "왜 방문했는지를 설명하라"고 영업 제 1원칙을 일러준다.

그제야 나탈리는 걸스카우트 쿠키를 팔고 있노라고, 얼마씩이라고 떠듬떠듬 설명을 한다.

엄마가 또 옆에서 팸플릿을 보여주라고 훈수를 두자 나탈리는 수줍게 팸플릿을 펼쳐 보여준다.

나는 나탈리에게 어떤 쿠키가 맛이 있는지 추천해달라고 요청한다.

나탈리는 머뭇머뭇 이것은 박하맛, 저것은 초코맛, 이것은 땅콩버터맛 등등 나름 열심히 설명한다.

나는 웃으며 너댓 개를 고르며 20불어치를 산다.

20불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십 년이 넘도록 그대로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20불짜리를 나탈리에게 건넨다.

나탈리는 그제야 배시시 웃으며 오더 명부에 내 이름을 적고 20불이라고 적는다.

그렇게 구입한 쿠키는 추수감사절 즈음해서 배달이 되어 우리집 어르신들의 달콤한 간식이 된다.


그 쿠키 판매의 우리 동네 총책이(?) 나탈리에서 옆집 헤일리에게로 넘어갔다.

초등학교 1학년생인 헤일리는 아직 경험이 없어 헤일리 엄마의 역할이 더 많다.

그래도 몸을 비비 꼬으면서 귀여운 미소로 팸플릿을 보여주는 헤일리에게 나는 변함없이 쿠키를 주문한다.


올해 걸스카우트의 최고참이 된 나탈리는 쿠키 판매 대신 다른 행사 모금을 위한 샌드위치 판매에 나섰다.

이번엔 나탈리 엄마는 지켜보기만 할뿐 나탈리 혼자서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하고 주문을 받는다. 

키 뿐만이 아니라 모든것이 훌쩍 커버린 나탈리에게 나는 이번에도 흔쾌히 샌드위치를 주문한다.

그날 우리 집 어르신들은 점심 식사로 가정식 터키햄 샌드위치를 맛있게 드셨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속담처럼 나는 기꺼이 내 문을 두드리는 이웃의 아이들에게 웃음으로 문을 연다. 비록 미국의 문화와 언어에 미숙해 더 친절하게, 더 살갑게 다가가지는 못할지라도말이다.


나탈리가 어린아이에서 여드름이 빨갛게 피어난 십 대 소녀가 되도록 지켜보면서 아이와 마주칠 때마다 녀석은 매년 걸스카우트 쿠키를 사주는 한국 아줌마 아저씨를 어떻게 바라볼까라는 생뚱맞은 생각이 들곤했다.

외국인 억양의 낯선 이방인으로만 우리를 볼까?

그냥 웃으며 흔쾌히 쿠키를 사주는 이웃집 어른으로 볼까?

둘 다 일지 모르겠다. 

늘 기꺼이 쿠키를 사주는 동양인 이웃집 어른으로 말이다.

짐작컨대 지난 시간을 통해 나탈리에게도 헤일리에게도 우리가  더 이상 낯선 이방인으로만 남아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든다. 


아이들이 동네에서 모금활동을 배우고, 쿠키를 파는 경제행위를 배우듯이,  더 중요하게는 우리 동네 공동체가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있다는 사실을 배워나갔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이 인종적 편견 없이 자라는데 나도 일조했다고 생각하면 과장된걸까? 


                                         ( 어느 집앞 우편함 밑에 놓인 어느 아이의 자갈돌 그림작품 )



매거진의 이전글 검정 닭이 엄마가 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