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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Oct 25. 2020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영어교실에서  만난 이민자  친구들

미국 이민을 오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영어공부이다. 이것은 유학을 왔거나 주재원으로 왔어도 마찬가지이지만 살러온 사람들은 쉬운 일상생활영어부터 익혀나가야 한다. 당장 아파트 관리사무실과 대화해야 하고 아이들 학교 선생님을 만나야 하고, 일을 시작했다면 고객과 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시골의 작은 도시에서 미국 생활을 시작하며 그곳의 어덜트 스쿨에서 영어도 공부하고 여러 나라에서 막 이민을 온 이민 초보 동료들도 만났다.

내가 어리버리한 한국 이민자였듯이 그들은 멕시코 출신 이민자로, 동유럽 국가 출신 이민자로, 중국 출신 이민자로 이제 미국에서의  첫걸음을 시작한 나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처음 시작되는 클래스에서 진땀을 흘리며 자기소개를 해야 했던  나처럼 어색해했던 그들도 이제는 15년 차 이민자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가끔 그들이 궁금하다. 그들도 나처럼 꿋꿋이 버티며 이렇게 살고 있을까?




30대의 멕시코 출신 젊은 엄마가 있었다. 유난히 초롱초롱한 눈을 가진 그녀는 남편과 아이와 함께 미국으로 온 사람이었다. 수많은 남미 사람들이 서류 미비자로 또는 무작정 국경을 넘어오는 경우가 많지만 그녀는 합법적인 과정으로 입국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합법적이라고 해서 다 영주권자는 아니다. 영주권을 받기 위한 서류 절차를 진행해야 하고 그 과정엔 많은 비용과 지난한 마음고생이 펼쳐진다.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마치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 같은 자신들만의 고생스러운 영주권 취득사가 있다.


마리아는 그런 영주권 신청 과정을 막 시작한 사람이었다.

멕시코의 유수한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남편은 건설현장의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고 문학을 공부한 마리아 역시 이곳저곳에서 점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녀에겐 너무도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다. 자신의 오빠가 십몇 년 전 이민을 와서 합법적으로 정착해 마리아 가족을 돕고 있었는데, 나름 성공한 오빠는 마리아의 이민 멘토였다.

모든 이민자에게 이런 멘토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엄청난 자산이다.


마리아도 나도 레벨테스트를 거쳐 중간 정도의 클래스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교재나 신문 읽기에서는 나도 뒤지지 않았지만 그것으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에는 마리아가 클래스에서 단연 으뜸이었다. 그럼에도 마리아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를 했고 우리 모두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나는 마리아의 그런 노력보다도  자신의 언어를 생각하는 태도에 내심 깜짝 놀랐고 그녀의 성공적 이민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다. 


"우리는 밖에서는 열심히 영어를 배우고 말하려고 노력해요. 하지만 집에 들어가면 영어 대신 스페니쉬를 써요. 특히 오빠 집에 가면 우리는 모두 스패니쉬를 써야 한답니다. 오빠는 세 살짜리 내 아이에게도 이렇게 말해요. 이제 집에 왔으니 영어는 바지 호주머니에 넣고 스페니쉬를 셔츠 호주머니에서 다시 꺼내자 라고요." 




내 또래였던 그녀는 동유럽의 어느 사회주의 국가 출신이라고 했다. 나처럼 십 대의 자녀들이 있고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온 거였다. 겉으로 보기엔 보통의 미국 백인 같은 그녀도 뒤늦은 이민으로 힘겨운 이민자의 삶을 살고 있었는데 낮에는 어느 가전제품 조립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어느 날인가 일찍 클래스에 도착한 우리는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잡담이라고 해야 둘 다 서툰 영어에 얼마나 거창한 주제로 이야기했을까, 아마도 이민 와서 보게된 미국의 후진성을 이야기하고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갑자기 그녀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쉬잇"하며 손을 입에다 가져가더니 나보고 조심하란다.

놀란 내가 "왜?"그러자 그녀가 눈짓으로 천정 모서리를 가리킨다.

"그게 뭐, 왜?"이유를 알 수 없어 내가 다시 묻자 그녀가 이렇게 대답하는 거였다.

"저기 위에 감시카메라가 여러 군데 있잖아!" 

"뭐?? 감시카메라???"

그것은 감시카메라가 아닌 무인방범용 센서였다. 직원들이 퇴근하면서 세팅해놓고 나면 움직임을 감지해서 보안회사에 알려주는 센서 말이다.


내가 한국에서 군사정권과 유신체제를 겪었듯이 그녀는 동유럽 자신의 나라에서 통제되고 감시받았던 경험을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온 것이었다. 몸은 미국에 있지만 그녀의 의식은 아직 자기네 나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가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보고 놀라듯이 미국에 건너와 그녀가 오해했던 미국의 두려운 모습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녀 안의 사회주의적 안경을 통해 굴절된 미국의 자유주의, 자본주의적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집의 지붕과 벽면을 설치하는 일을 한다는 중국 아저씨는 얼마 전 다리를 다쳐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쉬느니 영어클래스에 나오고 있었다. 동글동글한 중국식 영어가 재미있었던 아저씨는 그래도 이삼 년 된, 이를테면 이민 왕초보는 아니었다.


어느 날, 그날은 메릴랜드의 자연환경에 관한 주제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초보 이민자들에게는 도로에 뛰어드는 사슴이나 끼룩끼룩 떼를 지어 날아가는 goose떼들이 낯설고 특이해서 그에 대한 이야기들을 와글와글 쏟아내고 있었다.

사슴을 차로 치었다는 둥, 공원에 goose떼가 똥을 많이 싸서 지저분하다는 둥 이야기를 하던 중에 중국 아저씨가 자신은 goose를 집 뒷마당에서 잡은 적이 있다는 거였다. 

"goose를 잡아요?" 모두들 놀라고 의아해서 물었다. "야생동물을 잡았다니, 그것도 goose를? 왜~???"...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궁금해하는 클래스를 향해 그 중국 아저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잡아먹었지요. 허허허"

모두들 놀래서 "what?"을 연발하는 가운데 우리 할머니 영어 선생님이 한 말씀하셨다.

"goose는 잡아먹는 게 아닙니다. 벌금 물어요."


한참 뒤에 알고 보니 그 아저씨는 우리 큰아이의 학교 친구 아버지였다.

내 또래였던 아저씨는 이민 온 뒤 아이의 엄마인 전 부인과 이혼하고 젊고 발랄한 중국 여자와 재혼해서 살고 있었다.

얼마 뒤 다리가 다 나은 아저씨는 더 이상 클래스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큰아이를 통해 친구가 젊은 새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민은 절반이상  완성되어가던 레고 블록을 다 무너뜨리고  다른 모양으로 다시 쌓는 것과 같다. 

무너뜨린 블록 하나하나를 가지고 다시 붙여나가기도 하고 어떤 것은 쓸모없어져 버리기도 하면서. 

그러다 보니 사회주의 안경을 아직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이고, 흔하게 잡아먹던 오리와 비슷한 goose를 잡아먹는 것이고, 자신의 모국어를 지키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쌓는 블록의 모양은 예전의 것과 같을 수가 없다. 

방범 센서는 더 이상 감시카메라가 아니라는 것으로 바꿔 끼워져야 하고, 야생 기러기를 잡아먹어도 된다는 중국식 생각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또 이중 언어가 권장된다는 사실은 스패니쉬 블록에 영어 블록이 덧이어지게 만들 것이다.

이처럼 이민자는 적응과정 중 어떤 블록은 버리고 어떤 블록은 다시 사용한다. 

미국에서의 삶이라는 새로운 모양의 블록을 쌓는데 적절하게 취사선택 해가면서말이다.




마리아는 지난한 영주권 신청 과정을 거쳐 이제는 시민권자가 되고도 남을 만큼 세월이 흘렀다.

남편은 자신의 직원을 거느린 건설업자가 되어있을 수도 있고 마리아도 자신의 능력에 맞는 새로운 직업을 찾았을 것으로 믿는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어린 딸은 능숙한 스패니쉬를 구사할 줄 아는 이중언어 고등학생이 되어있을 것이다.


동유럽 출신의 그녀는 다니던 공장의 슈퍼바이저가 되지 않았을까?

조립공장의 단순하고 기계적인 공정에 그녀의 사회주의 체제에서의 경험이 무엇보다 유용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는 그녀가 직업적 성공뿐이 아니라  어느 누구의 잘못된 통제 없이 오로지 자신의 의지에 의해 자유로운 일상을 꾸려나가는 미국적 삶을 살게 되었기를 소망한다.


같은 학부모였던 중국 아저씨는 딸과 새 아내와의 관계를 개선시키는 데 성공했을까?

많은 이민자들이 이민 초기의 어려움과 긴장을 이겨내지 못하고 선택하는 이혼이 더 이상 아저씨의 가족을 힘들게 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이상 goose나 야생동물을 안 잡아먹으며 살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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