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엄마닭이 이긴다.
우리 집 어미닭 검순이가(최종적으로 어미닭 이름을 검순이로 정했다.) 병아리를 깐 뒤 40여 일이 지나가고 있다. 병아리들이 이젠 제법 솜털 대신 깃털이 자라고있고 무엇보다도 행동반경이 넓어졌다. 이전에는 어미닭을 중심으로 50-60센티미터를 넘지 않고 붙어있던 녀석들이 이젠 2-3미터씩 떨어져 있기도 한다. 그동안은 닭장에 넣지 않고 네모녀만 따로 그린하우스 안에서 지내도록 하다가 엊저녁부터는 닭장안에 합사를 했다. 지금 이 시간 현재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다. 검순이와 다른 닭들은 늘 앉아있는 횃대 위에, 병아리 세 마리는 옮겨준 박스 속 열 전구 아래 모여 서로에게 기댄 채 평온하게 자고 있다. 병아리들은 더 이상 엄마 검순이 품속이 아니어도 잠을 잘 수 있게 되었고 검순이도 이번 주부터 알을 낳기 시작했다. 병아리들이 크는 만큼 엄마 닭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있나 보다.
어느 날이었다.
선선한 가을 날씨에 햇볕이 따사로운 오후, 우연히 쳐다본 뒷마당에서 병아리들이 보이질 않는다.
흰색과 갈색 닭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가운데 병아리들만 보이질 않는다.
다시 쳐다보니 병아리들만이 아니라 어미닭 검순이도 안 보인다.
녀석들이 어디 있는 것일까?
그린하우스 뒤편으로 들어갔나? 아니면 퇴비 통 뒤에서 애벌레를 잡아먹고 있나?
보통은 일이 분 쳐다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나타나는데 그날은 쉽게 나타나지도 않는다.
안 되겠다 싶어 뒷문을 열고 나가본다.
아, 어미닭 검순이가 보인다. 마당의 오른쪽에 있는 텃밭들 사이에 검순이가 있다.
검순이는 울타리와 텃밭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다. 그것도 우리 집과 옆집을 가로막고 있는 울타리를 앞에 두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왜 저기에 저러고 있을까???
무슨 일인가 싶어 자세히 보니, 아하,,, 병아리들 때문이다.
병아리들이 그 작은 몸으로 울타리의 작은 철망 사이를 빠져 옆집으로 넘어간 것이다.
녀석들은 울타리 지지대 위에 셋이 나란히 앉아 햇볕을 쬐고있다.
검순이는 울타리 때문에 옆집으로 가지도 못하고, 다가갈수없는 병아리들 때문에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거였다.
병아리들을 앞에 두고 울타리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엄마 닭, 그런 엄마 닭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따사로운 햇살에 정신을 팔고 있는 어린 병아리들의 모습.
이 모습에서 내가 사춘기의 자녀들과 엄마들을 떠올렸다면 무리일까?
하지만 나는 그 모습에서 나와 내 아이들의 모습을, 나와 우리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점심을 막 끝내고 잠시 아래층에 내려가 쉬던 참이었다.
위에서 급하게 부르는 소리에 뛰어 올라가 보니 독수리가 와서 병아리들을 채갔단다.
뭐라고요??!!! 어떡해!!!
진짜 버선발로 뛰어나가 보니 뒷마당에는 닭들이 어수선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고 어미닭 검순이가 흥분한 채 푸드덕거리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독수리에게 채여갔는지 검순이만 있을 뿐 병아리들은 보이질 않는다.
가슴이 벌렁거리며 어찌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표고버섯 심어놓은 나무둥치들 밑에서 노란색 병아리 한 마리가 쏘옥 고개를 내밀고 나와 엄마 닭 검순이 곁으로 다가온다.
휴, 그래도 한 마리는 살아남았나 보다 싶어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나무둥치 밑에서 갈색 한 마리, 또 검은색 한 마리가 숨어있다가 나온다.
녀석들의 삐약거리는 소리가 "이제 나가도 돼요?"라고 어미에게 물어보는것같다.
아, 다행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세 마리 모두 독수리 먹이가 될뻔하다가 살아남았다.
병아리들이 모두 안전한 것을 확인하고 나서 주변에 있던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 검순이, 정말 용감하게 병아리들을 지켜냈단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vultures라고 통칭하는 검은색 작은 독수리가 산다. 그 녀석들의 먹이는 주로 작은 생쥐나 청설모 아니면 차에 치여 죽은 사슴들인데 눈이 좋은 그 녀석들의 시야에 우리 집 병아리들이 띄었나 보다.
하늘 높이 맴돌다 어느 순간 두어 마리가 내려앉아 공격을 했는데 용감한 우리의 검순이가 그 녀석 중 하나와 맞붙어 싸우다 모두 쫒아버렸단다. 내가 들은 꽥꽥 소리는 우리 검순이가 독수리들을 공격하며 흥분한 채 내지르던 소리였던거다.
사실, 지금 현재 우리 집 뒷마당의 서열 1위는 단연 검순이다.
같이 어울려 돌아다니다가 어쩌다 다른 닭들이 병아리들을 집적거리거나 공격을 하면 검순이가 어떻게 알고 나타난다. 그리고는 병아리를 괴롭힌 녀석 등위에 올라타서 뒤통수를 쪼아댄다. 검순이에게 공격당한 녀석은 정말 납작 엎드려 항복해버린다. 보기에 불쌍할 지경이다.
닭들뿐이 아니다. 우리 집 강아지 보리 녀석도 멋모르고 신나게 닭몰이를 하다가 검순이에게 한번 머리를 쪼이고는 검순이가 돌아다니는 뒷마당에선 두번다시 내달리지 않는다.
보통의 암탉 한 마리가 세 마리의 병아리를 품고 키우면서 용감무쌍한 엄마 닭으로 다시 태어났다.
강아지 정도는 말할것도 없고 새중의 새, 독수리까지도 쫒아버릴만큼 용감무쌍한 엄마말이다.
나는 용감한 검순이의 모습에서 '어머니, 엄마'의 이름으로 수많은 고난을 이겨내는 용감한 어머니들을 본다.
그 검순이가 다시 알을 낳기 시작했다.
검정 닭이라서 검순이가 낳는 알은 흰색도 갈색도 아닌 짙은 회색빛 알이다.
그동안 알을 품기 시작하면서부터 중단된 생식활동은 오로지 알을 품는 에너지로 사용되었었나 보다.
그 알이 병아리가 되고 그 병아리의 솜털만으로는 추위를 견딜 수 없어 품어야 했던 시간 동안은 오로지 병아리에 맞추어져 있던 생체리듬이 다시금 암탉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모양이다.
병아리들의 활동반경이 넓어져가는 만큼, 어미의 날개쭉지로 덮어주는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어미는 점점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 환원되어가는 모습이다.
우리네 엄마들이 성장한 자녀들을 자유롭게 놓아주고 다시금 자신의 삶에 집중하는 모습을 되찾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