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강 Nov 18. 2020

 유혹을 물리치는 '오디세우스 계약'

중단 없는 글쓰기와 책 읽기를 위해, 때론 유혹에 넘어가기도 하면서

 <The Brain>이라는 책에서 David Eagleman은, 우리의 삶은 우리의 자각 능력이나 통제 능력을 훨씬 벗어난 그 어떤 힘들에 의해 조종된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의 그 어떤 힘이란, 경험으로 만들어진(개통된) 내 뇌 속의 뉴런들로, 뇌 속의 도파민 시스템은 결정의 결과가 좋으면 도파민을 분출하고 나쁘면 도파민을 감소시켜 우리의 결정이 실재와 더 잘 일치하도록 예측 조정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뇌 속에 새겨진 '과거 경험'과, '현재 상황', 미래에 관한 예측'에 의해 모든 결정을 하게 됨에도 불구하고  '즉각적 만족의 유혹'이라는 '지금의 힘'이 우리의 결정에 오류를 발생시키기도 한단다.


살찐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초콜릿 아이스크림의 유혹에 넘어가 한통을 다 먹어버린다거나, 시험을 앞두고도 게임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는 우리들의 나약한 모습들 말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지금 당장 만족하고 싶은 유혹'에 맞딱뜨릴때, '합리적인 현재의 나'를 동원해서 '오디세우스 계약'을 선택함으로써 의사결정의 오류를 줄여나간다.


요즈음 나를 갖은 유혹으로부터 붙잡아주는 '오디세우스 계약'은 '브런치에 글쓰기'와 '북클럽 참여'이다. 나는 브런치에 규칙적으로 글을 쓰며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 하나를 만들어 나가고 있고, 나태해지려고 하는 책 읽기는 북클럽으로 독려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줌으로 하는 요가 클래스는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라고 좀 쉴 생각이다. 


 



<The Brain>에서 소개하는 오디세우스 계약이란 이렇다.

"전설의 영웅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귀향하는 중이었다. 긴 여로의 어느 지점에서 그는 자신의 배가 아름다운 세이렌들이 사는 섬을 곧 지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이렌들은 너무나 감미로운 노래를 불러 뱃사람들의 넋을 빼놓고 황홀경에 빠지게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문제는 뱃사람들이 세이렌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다가가다가 바위에 부딪혀 난파를 당하곤 한다는 점이었다

오디세우스는 그 전설적인 노래를 간절히 듣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과 선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계획을 꾸몄다. 자신이 그 노래를 들으면 섬의 바위들 쪽으로 배를 몰 수밖에 없을 것임을 그는 알았다. 문제는 현재의 합리적인 오디세우스가 아니라 미래의 비합리적인 오디세우스였다. 세이렌들의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하면, 그는 비합리적인 오디세우스가 될 터였다. 그는 부하들에게 자신을 돛대에 단단히 묶으라고 명령했다. 또한 부하들은 세이렌들의 노래가 들리지 않게 귀를 막은 채, 오디세우스의 애원과 울부짖음과 몸부림을 깡그리 무시하고 노를 저어야 한다고 엄히 명령했다. 오디세우스는 미래의 자신이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닐 것임을 알았다. 

따라서 정신이 멀쩡한 오디세우스가 미리 계획을 짜서 미래의 자신이 그릇된 행동을 할 수없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현재의 자아와 미래의 자아가 일종의 합의를 하는 것을 일컬어 '오디세우스 계약'이라고 한다." 

(pp. 172-173)


요약하자면, 현재의 합리적 내가, 나중에 비합리적 결정을 할 가능성이 있는 나를 '돛대와 밧줄'이라고 하는 '사회적 계약'으로 묶음으로써 지금 당장 만족하려고 하는 유혹으로부터 나를 지키려 한다는 것이다.




다이어리에 그날의 메모를 적는 일로는 글쓰기가 충분하지가 않았다. 

가끔 페북에 짧은 글을 올리는 정도로도 만족스럽기가 않았다. 

그렇다고 내 블로그를 운영하기엔 너무 부담스러웠다. 아니 십몇년전에 네이버에 블로그를 개설했다가 유야무야 되어버린 적이 있어서 다시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다 브런치를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작가 신청 없이 글을 쓰고 저장하는 기능만 빌리려고 했다가 내친김에 작가 신청을 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브런치 작가 신청은 내 남은 시간 동안 끊이지 않고 글을 쓰겠다는 나의 '오디세우스 계약'인 셈이다.

처음 한두 달은 그 '계약'에 충실하려는 의욕이 넘쳐 한주에 두 꼭지씩은 쓸 수 있었지만 몇 달이 지난 지금은 좀 느슨해졌다. 

하지만 계약은 계약!! 

더군다나 내 글을 읽어주고 피드백해주는 벗들이 지켜보고 있으므로 나는 계속 글을 써나갈 것이다. 


아무리 "조금 쉬어도 괜찮아, 이번 주에 안 쓴다고 뭐라 할 사람 없어, 그렇게 강박적일 필요는 없잖아."라고 세이렌들이 내 귀에 대고 달콤한 목소리로 유혹을 하더라도 나는 나를 묶은 밧줄을 붙들고 귀 막고 가볼 참이다.




특별한 재능이 없는 나의 취미는 그저 책 읽기가 취미이다.

시간이 남아도 읽고, 할 일이 없어도 읽고, 화나거나 슬픈 일이 있어도 읽고, 좋은 책을 발견해도 읽는다. 

한마디로 대중없이, 계획 없이 읽는다는 소리다. 그러다 보니 어떤 해는 무지하게 많이 읽는 해도 있고 또 어떤 해는 서너 권도 못 읽는 해도 있다. 

더구나 여기는 미국, 책을 구입하려면 배송료까지 해서 두배의 책값을 치러야 하고 배송기간도 너무 길다.

( 이 시점에 영어책을 읽으면 되지 않느냐는 가슴 아픈 소리는 하지 마시길 바란다. 처음 몇 년은 영어 공부해야지 한글책 읽을 시간이 어디 있냐는 내 안의 목소리 때문에 영어 책도, 한글 책도 모두 읽지 못했던 가슴 아픈 과거가 있다.)


이런 무계획적인 독서습관과 독서환경을 한 타에 정리할 대안이 바로 북클럽이었다.

마침 코비드 블루로 뭔가가 필요했던 두 사람과 의기투합해서 북클럽을 시작했다.

나에게 북클럽은 지속적이고 계획적인 책 읽기를 위해 내가 선택한 사회적 계약이다.

처음 몇 달은 매주 만나서, 지금은 격주로 만나서 내가 읽은 책들을 소개하고 나누기 위해 나는 짬짬이 책을 읽고, 생각하고, 되새김질을 한다. 

나는 북클럽이라는 '오디세우스 계약'으로 코비드로 세상이 멈추었던 올해에도 꽤 생산적인 시간을 보냈다.




코비드전 나는 수영과 요가 클래스 참여로 나름 건강을 유지하고 있었다.

수영은 동네 짐에서 일 년짜리 회원권을 끊어 다니고 있었는데 카우니에서 운영하는 시설인 데다가 55세 이상 시니어 디스카운트를 받아 꽤 저렴한 가격으로 다니고 있었다. 게다가 수영은 혼자 하는 운동 아닌가.

혼자 가서 혼자 하다 보니 박수 쳐줄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고, 비용은 이미 일 년 치를 지불한 상태니 나의 게으름 충동을 붙잡아줄 아무런 장치가 없는 셈이었다.

그러다 보니 최소한 일주일에 세 번은 가기로 작정한 마음이 수시로 바뀌었다.

"오늘은 비가 오네, 못 가겠군."

"오늘 아침은 늦잠을 자서 시간을 놓쳤네."

"오늘은 왠지 몸이 무거워. 몸이 무거우면 수영이 영 안되더란 말이야, 내일 가야겠다."

무슨 놈의 핑계가 어쩌면 그렇게 다양한지 일주일에 두 번 가면 잘 간 거였다.


반면 요가 클래스는 상대적으로 비쌌다. 나는 6개월치 또는 일 년 치를 한꺼번에 지불하면 많은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옵션을 포기하고 매달 지불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래야 돈이 아까워서라도 열심히 다닐 것 같았다.

그리고 일단 집을 나서서 차를 타고 짐에 가면 죽으나 사나 1시간 30분 동안은 열심히 운동해야 했다.

수영에 비하면 나름 '오디세우스 계약'이 잘 먹히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던 것이 코비드로 요가도 몇 달간 중단되었었다.

하지만 열성적인 요가 선생님은 얼마 전 다른 방식으로 다시 클래스를 오픈하였다. 바로 줌 클래스이다. 처음의 우려와는 달리 이전 클래스의 수강생 대부분이 등록해서 줌으로 운동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포기했다. 이유는 한 가지. 

바로, 줌 클래스로는 '오디세우스 계약'이 지켜지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내 집'에서, '나만의 공간'을 찾아서, '방해받지 않을 시간'을 갖고 운동을 해낼 자신이 없었다.

수영처럼 갖은 핑계를 대며 빼먹을게 뻔했다. 줌이야 내가 컨택해서 들어가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

이를테면 나를 돛대에 묶을 밧줄이 동아줄이라기보다는 새끼줄이라 내가 얼마든지 빠져나갈 거로 보였다.

게다가 집안에서는 얼마나 다양하고 달콤한 세이렌들의 유혹이 넘쳐나는가?!!


그 결과?, 두말할 것도 없이 나는 살이 쪘다. 무려 4파운드씩이나!

진지하게 체중감량과 당뇨 전 단계로부터의 탈피를 위해 나는 새로운 오디세우스 계약이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너무 강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좀 쉬어가도 좋고, 살이 좀 쪄도 괜찮다. 좀 흐트러져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야 빈틈 많은 인생살이로, 나와 세상에 더 너그러워질 것 같다.


앗, 내 안의 세이렌들이 너무 유혹적으로 나를 쥐고 흔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상식'에 한 표를 던지고 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