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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Dec 25. 2020

다른 맛, 다른 모양의 소고기 무우국

소고기무우국에 고추가루를 넣어? 말어?

엊그제가 동지였다.

한국에 있을때보다 더 한국적으로 살고있는 나지만 동지팥죽까지 챙겨먹기엔 좀 번거로웠다.

그럴땐 누군가의 선의가 꼭 나타나는법!

함께 일하시는 선생님의 부인이 동지팥죽을 한솥 끓여 보내주었다.

친절하게도 소금, 설탕간 하지않은 팥죽에 새알도 따로 조금 보내주었는데  내가 알아서 개인별 특성 감안해 간맛추어 드리라는 소리였을터였다.

그런데 정작 솥단지를 들고오신 선생님은 불퉁거리신다.

"무슨 팥죽이 이러냐고요, 이맛도 저맛도 아닌게 옛날 부산 영도시장에서 팔던 그 팥죽맛이 아니"라고하신다.

부산 영도시장에서 팔던 팥죽??

맞다. 시장에서 팔던 팥죽은 팥껍질을 걸러내지않고 더 걸죽하고, 더 달고, 더 짭짤했다.

그리고 그것은 부산하고도, 영도시장 한켠에서 군용담요 덮은 항아리에서 퍼주던 단팥죽이었다. 

다른 곳의 동지팥죽과 다른 모습의 단팥죽.

열심히 팥죽을 쑤었을 부인에게 "이 맛도 저 맛도 아니다"고 핀잔을 주었을 그분에게 팥죽이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것같다는 이야기를 해드렸다. 

광안리 우리집 팥죽도 영도시장의 팥죽하고는 많이 달랐다는 이야기를 포함해서.




결혼하고 첫 겨울이었던것같다.

명절도 누구 생일도 아닌데 어머니는 이것저것 음식을 만들고계셨고 새댁인 나는 그 옆에서 도와드리고있었다.

말이 도와드린다는거지 그저 어머니옆에서 눈치껏 잔심부름 정도나 하고있었겠지.

그도그럴것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객지생활을 하느라 제대로된 음식만들기는 해본적이 없고 게다가 나는 경상남도, 남편은 전라북도 출신이라 음식문화가 많이 달랐다. 그런 내가 나서서 음식을 만들겠다고 하는것은 오버일터, 얌전히 있는게 도와드리는거 같았다.


가스레인지에서는 거의 다된 국이 끓고있었다. 이름하여 소고기 무우국.

소고기 무우국은 나도 익히 알고있는 음식이었다. 우리집에서도 자주 끓여먹었으니까, 특히 겨울철이면.


겨울이 깊어가면 엄마는 소고기 덩어리를 (아마도 사태였겠지?) 사오셔서는 큰솥에 넣고 한참을 끓이셨다. 

온집에 구수한 소고기 익는 냄새가 퍼지면 엄마는 큰 솥뚜껑을 뒤집어놓고 그위에다 무우를 저미기 시작했다. 사투리로는 '삐진다'고하는데 무우를 써는게 아니라 한손에 큰 무우를 들고 또 한손에는 칼을 들고 무우를 돌려잡으면서 칼로 저며서 잘린 무우가 한쪽은 두껍고 또 한쪽은 얇게 잘라지게 만드셨다.

이유? 물어보지않았으니 나도 모르고 아마도 우리 엄마도 모를거였다. 그냥 엄마의 엄마, 또 그 엄마의 엄마가 그랬을테니까.

어쨌든 그렇게 '삐진' 무우가 수북이 솥뚜껑에 쌓이면 푹 고아진 소고기 덩어리를 꺼내 잘게 찢고 그것과 함께 솥에 집어넣었다. 거기에 실한 겨울 파와 콩나물을 원없이 집어넣고 또다시 한참을 끓여냈다.

그렇게 끓여낸 뒤 소금간을 하고 고추가루를 풀면 그것은 우리집 겨울 음식중 최고 음식이었고 그 겨울도 푸근하게 보낼수있는 보양식이되었다.

이 경상도식 소고기 무우국은 육개장하고는 다르다. 육개장처럼 기름지지도 않고 진하지도않다. 

기름기 적은 소고기국물에 무우와 대파, 콩나물로 시원하게 끓인 맛이 육개장하고는 달리 무척 담백하다.


엄마가 끓여주던 얼큰한 소고기 무우국을 잠시 추억하다가 국뚜껑을 열어보았다.

납짝하게 썰은 무우과 소고기가 용솟음을 치며 끓고있어 이젠 양념을 해야할때지싶었다.


"어머니, 국이 다 끓은것같은데 고추가루 가져올까요?"

"????, 뭐라고??? 고추가루???, 아니 얘가 지금 무슨 소릴하냐? 소고기 무우국에 무슨 고추가루를 넣는대?"


제사많은 집안에서 탕국(소고기 무우국)만이 소고기 무우국으로 알고있었던 어머니는 어이없어 하셨다.

아니, 경상도는 나를 통해 처음 경험하는 분이시라 고추가루 넣은 소고기 무우국을 잘 모르셨을것이다.

하지만 음식에 한 자부심 하는 어머니에게는 탕국에 고추가루를 넣자는 며느리가 어처구니가 없으셨다.

너무 무안해 쥐구멍에라도 숨고싶었던 나는 굳이 설명하려들지않았다.

나 혼자 무안하면되지 내가 먹고자란 얼큰한 소울푸드가 '무식한'음식으로 매도당하는것은 더 참을수없을것같았다.

그뒤에도 시댁에서는 여전히 탕국식 소고기무우국을, 내집에서는 고추가루 팍팍 푼 얼큰한 소고기 무우국을 만들어 먹었다.


그렇게 십여년이 지난 어느날.

시부모님과 우리는 부산의 시누이집에서 밥을 먹고있었다.

밥상에는 부산식 음식이 차려져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열무김치를 보는순간, 아, 이 맛이라니!!!

옛날 우리집에서 먹던 바로 그 열무김치였다. 

자작한 국물과 열무 건더기, 찹쌀풀을 풀어 뿌연 국물과 잘 익어 새콤한 맛.

고춧가루로 색을 낸  빨간색 국물의 열무김치를 담그시던 어머니는 "열무김치가 왜 이러냐"고 혼잣말을 한뒤 나와 시누이를 번갈아 쳐다봤다.

시누이는 "집에서 먹던것 하고 많이 달라, 시어머니는 미역국에 가자미도 넣으셔.."라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순간의  야릇한 쾌감이라니. 

내가 시어머니에게서 음식에 관한한 '뭘 잘 모르는'며느리였던것처럼, 시누이도 부산 시댁에서는 그런 며느리취급을 받고 있었던것이다.


"그것 보세요, 어머니, 내가 잘못된게 아니고 우리는 그냥 다른거예요. 다른 음식문화를 가진것일뿐이라구요."




미국에 사는 지금은 탕국식의 소고기 무우국도, 고춧가루 넣은 얼큰한 국밥식 소고기 무우국도 나에겐 그냥 다 그리움이 뿌려진 소울푸드일뿐이다.

스산하고, 왠지 속이 쓸쓸하고 뜨거운 국물이 마시고싶으면 끓이는 국들이다.

그런 국을 끓인 날이면 건강을 위해 챙겨먹는 잡곡밥은 저만치 밀어두고 흰쌀밥 한공기를 국 한그릇에 말아 후후 불며 입천장 데어가면서 맛있게 먹는다.

그렇게 국밥으로 먹을땐  탕국식 소고기 무우국보다는 경상도식 소고기 무우국이 안성마춤이다.


국밥 한그릇을 먹으며 나는 이해받지못하던 젊은 날의 나도, '그냥 다를뿐'이라고 이야기하는 지금의 나도 모두 국그릇에 같이 말아 맛나게 한그릇을 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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