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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Apr 03. 2021

할아버지를 배웅해드렸다.

슬펐지만 평안했던, 그분의 마지막 이야기.

할아버지가 더 이상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신다.

더 이상 눈을 뜨지도 못하신다.

Thickener를 탄 걸쭉한 Ensure도 삼키지 못하신다.

호스피스 간호사는 더 이상 약도, 음식도, 물도 드리지 말라고 한다.

이제는 정말 가실 준비를 하시는가 보다.

 




호스피스를 받고 계신 할아버지는 많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안락의자에 앉아 퓨레식 식사를 받아먹고 코모도에 앉아 대변을 보셨다. 

인지장애로 제대로 된 의사소통은 불가능했지만 좋고 나쁨에 대한 간단한 반응은 여전히 가능했고 드시자고 하면 드시고, 일어나자고 하면 일어나셨다.

그런 할아버지를 보면서 우리도, 호스피스 간호사도 "Amazing"하다고 생각했고 기왕에 잡혀있던 우리의 여행도 다녀올 수 있었다.


4박 5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침부터 할아버지는 더 이상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신다고 했다.

밤 12시가 다 되어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할아버지 방부터 들렀다.

전화로 전해 들은 대로다. 침대에 누워 약한 숨을 쉬고 계신다. 할아버지의 얼굴이 며칠 새 달라져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우리는 호스피스 간호사에게 연락을 한다.

며칠 전 "amazing"하다고 놀라워했던 간호사의 목소리가 차분하다.

"no more food, no more medication, no more liquid"를 요구한다.

지금부터는 식도와 기도를 조절해주었던 입구의 밸브가 작동하지 못할 거란다. 

이제부터 우리가 할아버지에게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스펀지로 입안을 적셔드리는 것뿐이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아들과 프랑스에 있는 딸에게 연락을 한다.

그리고 화상으로 연결된 전화기를 할아버지의 귀에 가까이 대어드린다.

" 아빠, 나야, 00야, 아빠... 아빠... 흑흑흑... 아빠 미안해, 아빠 옆에 못 가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멀리서 아빠 곁으로 올 수가 없는 딸은 흐느끼느라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아빠, 00야, 아빠, 아빠, I love you.  I love you so much....."

한국말이 서툰 아들은 사랑한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자신이 남겨놓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한다.


자식들과 작별인사를 나눈 할아버지는 하룻밤 사이 더 힘겨워보인다.

이제 곧 거추장스러웠던 몸을 떠나고 싶으신가 보다.

우리는 문득 할아버지가 하느님을 만날 준비를 해드려야 함을 깨닫는다.

서둘러 지인인 성공회 신부님에게 연락을 취한다.

할아버지는 한때 개신교인이었지만 더 이상 교회와의 유대는 없다고 들었다.

아니, 할아버지가 개신교인이었든, 천주교인이었든, 성공회교인이었든 그런 것이 무슨 상관이랴.

이승을 떠나려고 하는 할아버지에게 괜찮다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곧 하늘나라에 닿을 것이라고 위로하고 격려하는데 형식이 무엇이면 어떠랴.


전화를 받자 달려와준 신부님은 할아버지의 이마를 가만히 짚고서 임종기도를 올린다.

신부님 곁에는 나와 남편이 서있다.

신부님과 내가 서서 부르는 성가와 기도를 남편은 비디오로 담아 자녀들에게 보내준다.

할아버지는 평온해 보인다.

더 이상 눈을 뜨지 않는 할아버지가 우리의 찬송과 기도소리를 들으셨을까?


남편과 나는 하루 종일 할아버지의 곁을 지킨다.

어느 순간 숨소리에 가래소리가 섞이기 시작한다. 

심해지는 가래소리와 함께 한 번씩 답답한 듯 짧은 비명을 토해낸다.

임종이 가까워졌다는 소리다.

호스피스 간호사의 지침에 따라 모르핀과 로라제펨, 아트로핀을 두 시간마다, 필요할 때마다 입안에 떨어뜨려드린다. 약물이 들어가면 얼마 뒤부터 조금씩 편안해지신다.

호스피스 간호사는 이번 주말까지 이어질 것 같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그렇게 길게 남지 않았다.


밤이다.

남편은 졸려워하는 나에게 들어가 쉬라고 한다.

할아버지의 고른 숨을 지켜보다가 나는 내방으로 들어간다.

얼마나 지났을까?

시계가 새벽 세시반을 가리키고 있다. 

할아버지의 호흡이 조금 달라져있다. 몇 번의 호흡 사이에 잠시 무호흡의 인터벌이 생겼다.

심장도 폐도 힘에 부치나 보다.

할아버지의 손과 발을 가만히 만져본다. 아직 따뜻하다.

두발을 가만히 붙잡고 성요셉 성인의 기도를 잠시 읊조린다. 

"성요셉 성인이시여, 임종하는 이의 수호자여, 하느님께 나아가려는 할아버지의 영혼을 지켜주소서."


점점 호흡이 잦아들고 무호흡의 시간이 길어지다가 어느 순간 할아버지의 위업이 마무리되었다.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기 전 이른 아침이었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떠나가셨다.

우리나라 최고 대학의 상대를 나와 한때 이 지역 부동산 에이전트로 성공적 이민자로 사셨던 분.

두 자녀를 특출하게 키워 각자의 분야에서 인정받는 전문가로 키워내신 훌륭한 아버지이셨던 분.

배우자를 잃고 서서히 침몰하여 나중에는 어린아이가 되어버리셨던 분.

Suprapubic catheter를 달고 입소하실 때 6개월에서 길어야 2년이라고 선고를 받았던 분.

거의 3년을 우리 곁에 계시며 그 지난한 병고를 감당해야 했던 분.

가슴 아프게도 그렇게 사랑하는 자녀들조차 곁을 지키지 못한 채 조용히 떠나가셨다.


"할아버지, 고마워요. 우리가 여행에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주어서 고마워요. 00과 00 대신 우리가 가시는 길을 배웅하게 해 주어서 미안하고 고마워요. 하느님 곁에서는 카테타 같은 것 다 떼어버리고 환하게 웃으며 잘 지내세요.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날 거예요. 봄바람이 저 높은 나뭇가지 끝을 흔드네요. 그 바람을 타고 가세요.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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