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담 공방

도쿄 최강 돈코츠 라멘의 주문 공식

나나시 라멘(七志ら ー めん)을 소개한다

by 정원

1년에 한 번은 도쿄에 간다.


도쿄로 떠날 때만은, 여행의 가장 큰 묘미라 할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을 애써 찾지 않는다. 항상 가던 곳에 가고, 먹던 것만 먹고 온다. 잠시나마 삶의 터전이었던 도쿄는, 이제 하루가 유난히 고단할 때면 슬쩍 들르는 단골 선술집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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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다가온다. 연말은 작년처럼 도쿄에서 맞이할 생각이다. 늘 그렇듯, 첫날 점심 즈음엔 나나시 라멘(七志ら ー めん)을 먹으러 시부야(渋谷)에 들를 것 같다.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한다. 하지만 도쿄에서 가장 맛있는 돈코츠 라멘을 먹을 수 있는데, 인파의 소란스러움 정도는 견뎌봐야지.


돈코츠 라멘을 엄청나게 좋아한다. 일본에 놀러 가는 이유의 절반 정도는 돈코츠 라멘 맛집 탐방이다. 아르바이트를 했던 영향이 큰 것 같다. 나나시 라멘은, 1년 가까운 추억이 쌓여 있는 일터이기도 했다.

13350022.JPG 2008년 어느 날의 시부야 거리. 10년 전에도 한결같이 정신 없던 곳이었다.

흔히 돈코츠 라멘의 정수를 맛보고 싶으면 후쿠오카현(福岡県)에 들려야 한다고 말한다. 부정할 수 없다. 후쿠오카는 분명 최고의 돈코츠 라멘을 만날 수 있는, 돈코츠 라멘 덕후들의 성지다. 하지만, 도쿄에도 후쿠오카만큼 짙고 묵직한 돈코츠 수프 맛을 즐길 수 있는 라멘집은 분명히 있다. 요리를 업으로 삼는 분들 만큼 치열하게 공부해 본 건 아니다. 하지만 한 명의 돈코츠 라멘 덕후로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나시 라멘은 후쿠오카의 돈코츠 라멘에 필적한다.
곧 소개할, No. 1 인기 메뉴 ‘나나시 아지타마 라멘(七志味玉らーめん)’.




도쿄에서는 나름 인지도가 있는 곳이지만,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인가 보다. 일본 돈코츠 라멘 맛집을 검색해봐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잠시 이유를 생각해봤다. 아마도, ‘언어의 장벽’이 범인인 것 같았다.


나나시 라멘은 아직도 아날로그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일단, 키오스크 발권기부터 없다. 한국어 메뉴판도 없다. 심지어 카드 결제도 안 되고 현금만 받는다. 일단 영어 메뉴판이 있기는 하지만, 직원도 손님도 대부분 영어랑 별로 친하지 않은 일본인들이다.


일본인 직원을 상대로, 일본어로, 직접 주문해야 한다.


현지어를 구사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여행의 질은 현격하게 달라진다. 해외 여행자라면 누구나 느껴봤을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달달한 과즙이 숨어 있는 여행지의 겉껍질만 핥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주문 공식을 만들게 된 동기는 바로 '아까움'이었다. 언어의 장벽이 가로막고 있는 탓에 놓치기에는, 나나시 라멘은 너무 아까운 곳이다. 마침 운이 따라 브런치에 글을 올릴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이 참에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돈코츠 라멘을, 일본어를 잘 모르는 수많은 돈코츠 라멘 덕후 동지들과도 공유하고 싶었다.


나나시 라멘의 메뉴판에는 뭔가 적혀있는 것이 많다. 취향에 따라 메인 메뉴, 사이드 메뉴, 토핑, 향신료 등등을 다양하게 조합해, 언젠가는 자신만의 복잡한 주문 공식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입문자를 위해 준비한 기초 주문 공식 3 가지만 소개하도록 하겠다.


공식은 다음과 같다.


A. 기본 주문 공식 나나시 아지타마 라멘(七志味玉ら ー めん)
나나시 라멘 + 반숙 조림 계란
七志ら ー めん + 半熟味付玉子


B. 강화 주문 공식 나나시 아지타마라멘 카쿠니 노세(七志味玉ら ー めん角煮乗せ)
나나시 라멘 + 반숙 조림 계란 + 통삼겹살 조림
七志ら ー めん + 半熟味付玉子 + 角煮


C. 완전체 주문 공식 나나시 라멘 네기부타고항 세토 아지타마 카쿠니 노세(七志ら ー めんねぎ豚ごはん セット味玉角煮乗せ)
나나시 라멘 + 반숙 조림 계란 + 통삼겹살 조림 + 특제 파 소스를 곁들인 돼지고기 미니 덮밥
七志ら ー めん + 半熟味付玉子 + 角煮 + ねぎ豚ごはん


우선, 사심 가득한 주관적 공식임을 미리 밝혀둔다. 하지만 1 년 가까이 아르바이트 급식으로 온갖 실험적인 조합을 검증해본 자로서 추천하는, 기초인 동시에 최강 주문 공식이라는 걸 확신한다.




나나시 라멘은 도쿄도(東京都)랑 가나가와현(神奈川県) 일대에 체인점포 10곳 정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번에 소개할 점포는, 도쿄에 놀러 가는 관광객 입장에서 가장 접근성이 좋을 것이라 생각하는 ‘시부야 도오리 토겐자카(渋谷道玄坂)’ 지점이다. 일하던 곳은 시부야에 있는 다른 지점이었는데, 구석진 위치가 너무 안 좋은 게 항상 발목을 잡더니 결국 망해버렸다. 젠장.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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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의 생김새를 잘 기억해 두자.

시부야의 대표 랜드마크인 ‘시부야 109(SHIBUYA 109)’ 건물의 왼쪽 길로, 70m 정도만 걸어 들어가면 도로 왼쪽 1 층에 노란 간판이 하나 보일 것이다. 바로 그곳이다.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점원이 비어 있는 자리를 안내해준다. 외투를 벽에 있는 옷걸이에 걸고, 가방을 의자 뒤 바구니에 넣고, 일단 앉자. 그러면 물 한잔과 함께, 유광 코팅된 메뉴판 한 장을 건네받게 될 것이다.


잠시, 메뉴판을 감상해보자.

www.nanashi-food.com.jpg (이미지 출처: http://www.nanashi-food.com)

괜찮다. 쫄 거 없다. 이제부터 메뉴판 감상은 그만둬도 된다. 저걸 노려보면서 주문하지 않아도 되도록, 기초 주문 공식을 준비한 거니까. 그럼 차례대로, 가장 첫 번째 공식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A. 기본 주문 공식 나나시 아지타마 라멘(七志味玉ら ー めん)

나나시 라멘 + 반숙 조림 계란

七志ら ー めん + 半熟味付玉子


메뉴판 왼쪽 위에, 가장 커다랗게 보이는 라멘이 바로 나나시 아지타마 라멘이다. 공식 기본 단품 메뉴 ‘나나시 라멘’에 반숙 조림 계란, 즉 ‘아지타마’를 토핑 한 것이다. 메뉴판에도 나와 있지만, 손님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메뉴다. 나나시 라멘의 실질적인 기본 메뉴라고 할 수 있다.


공식 기본 메뉴와 가격 차는 세금 포함 108엔. 혹시 계란 알레르기 같은 피치 못할 이유 때문이 아니라 고작 108엔 때문에 반숙 조림 계란을 뺄 생각이라면, 제발 그러지 마시라. 한 입 깨무는 순간 톡 터진 반숙 노른자의 풍미가 진하게 퍼져 나오는 아지타마는 나나시 라멘을 완전하게 만든다. 조커의 배트맨이자,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 같은 존재다. 제발, 이 글을 읽는 입문자들이 아지타마와 함께 나나시 라멘의 완전한 첫맛을 즐겼으면 한다.


주문할 때는 이렇게 한번 말해보자.

나나시 아지타마 라멘데 오네가이시마스(七志味玉ら ー めんでお願いします).

‘나나시 아지타마 라멘으로 부탁합니다.’라는 뜻이다. 어렵거나 혹은 수줍어서 말 못 하겠다면, 아무 문제 없다. 지금 보고 있는 스마트폰의 화면을 반대 방향으로 뒤집어, 위의 문장을 점원에게 그대로 보여주자. 돈코츠 라멘 먹으러 온 거지, 일본어 그럴듯하게 말하기 위해 여행 온 게 아니니까.


개인적으로는 나나시 아지타마 라멘에, 마늘 한쪽을 으깨어 넣고 라유(ラー油), 그러니까 고추기름을 살짝, 아주 살짝 두르는 것을 좋아한다. 마늘과 라유의 매운맛이 묵직한 돈코츠 수프와 잘 어울린다. 라유는 카운터에 준비되어 있다. 마늘도 넣고 싶다면, 점원에게 ‘닌니쿠모 오네가이시마스(ニンニクもお願いします).’라고 부탁해보자. 통마늘과 마늘 으깨기를 준비해 줄 것이다.


B. 강화 주문 공식 나나시 아지타마라멘 카쿠니 노세(七志味玉ら ー めん角煮乗せ)

나나시 라멘 + 반숙 조림 계란 + 통삼겹살 조림

七志ら ー めん + 半熟味付玉子 + 角煮


일본어 ‘카쿠니(角煮)’의 사전적 의미는 가다랑어나 돼지고기 등의 재료를 네모로 잘라 익힌 요리다. 나나시 라멘의 경우, 특제 소스에 졸인 두께 1cm가량의 단짠 맛 통삼겹살 한 조각을 의미한다. 마지막의 노세(乗せ)라는 말은 토핑 같은 걸 얹어놓았다는 뜻이다. 카쿠니 토핑구(角煮トッピング)라고 말해도 된다.


기본 토핑인 차슈와는 또 다른 카쿠니의 깊고 부드러운 고기 맛을 보는 순간, 이성의 마지노선이 무너져 내리며 희미한 탄성을 내뱉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진짜 맛있는 고기는, 정말 입에서 ‘녹아내린다’. 예산에 문제만 없다면 반드시 카쿠니까지 얹어서 먹어보도록 하자.


C. 완전체 주문 공식 나나시 라멘 네기부타고항 세토 아지타마 카쿠니 노세(七志ら ー めんねぎ豚ごはん セット味玉角煮乗せ)

나나시 라멘 + 반숙 조림 계란 + 통삼겹살 조림 + 특제 파 소스를 곁들인 돼지고기 미니 덮밥

七志ら ー めん + 半熟味付玉子 + 角煮 + ねぎ豚ごはん

pop_common.jpg (이미지 출처: http://www.nanashi-food.com)

위장이 허락하는 날, 나는 항상 완전체 메뉴를 맞이한다. 위의 세트 메뉴판에서 C 항목을 변형한 메뉴다. 주문 공식 중간의 ‘세토(セット)’는 세트를 뜻한다. 단품으로 따로 시키는 것보다 세트 메뉴가 조금 더 싸다. 완전체로 주문하면 알아서 세트 메뉴 가격으로 깎아주니까, 안심하도록 하자.


잠시, 완전체의 자태를 감상해보도록 하자.

Aㅏ......

돈코츠(豚骨)의 사전적 의미는 한자 그대로 ‘돼지 뼈’다. 돈코츠 수프는 돼지 뼈를 하루 종일 우려내서 만든다. 하얀 쌀밥이 너무나 어울린다. 하지만 나나시 라멘에서는, 그냥 밥 한 공기 대신 네기부타고항(ねぎ豚ごはん)을 곁들이는 것을 추천한다.


네기부타고항을 직역하면 ‘파 돼지 밥’이라는 무식한 이름이 되어버린다. 좀 더 그럴듯하게 의역하면, 위의 공식에 나온 것처럼 ‘특제 파 소스를 곁들인 돼지고기 미니 덮밥’쯤 될 것이다. 하얀 쌀밥 위에 허브(솔직히 무슨 풀인지 잘 모르겠다)를 조각내어 두르고, 얇게 썬 돼지고기를 데쳐 올린다. 마지막으로 나나시 라멘만의 특제 파 소스를 돼지고기 위에 듬뿍 올려주면 완성이다.


10년쯤 전, 내가 아르바이트를 할 때만 해도 네기부타고항과 함께 지금과는 다른 미니 덮밥 두 종류가 있었다. 하지만 셋 중에서 여태껏 살아남은 메뉴는 네기부타고항 뿐이다. 그만큼, 네기부타고항은 나나시 라멘과 어울린다. 담백한 돼지고기와 산뜻한 특제 파 소스의 궁합이, 마치 돈코츠 라멘과 만나기 위해 태어난 듯하다.


나나시 라멘의 끝을 보고 싶다면, 위장을 충분히 비우고 가 완전체 메뉴를 주문해 보자. 그리고 기본 나나시 라멘을 무대로 아지타마, 카쿠니, 네기부타고항이 어우러져 벌이는 맛의 융단폭격을 즐겨보도록 하자.




이외에도 소개하고 싶은 메뉴가 많아 글을 끝맺기가 아쉽다. 매콤한 맛을 원한다면, 같은 돈코츠 수프를 베이스로 만드는 탄탄멘(担々麺)도 훌륭한 선택이 될 것이다. 일본식 중화 볶음밥 챠항(チャーハン)이나, 한쪽 면은 바삭하고 한쪽 면은 촉촉한 일본식 군만두 교자(ギョーザ)처럼 면요리가 아닌 메뉴도 기본에 충실한 맛을 자랑한다. 아 그리고, 개인적으로 자주 먹지는 않지만 츠케멘(つけ麺)도 맛있다.


10년 사이에 새로운 메뉴도 꽤 나왔던데, 그건 아직 안 먹어봐서 잘 모르겠다. 도쿄에 가면, 가던 곳에 가고 먹던 것만 먹고 오다 보니. 코쿠마로 라멘(こくまろら ー めん)이라고 기본 베이스에서 마늘을 빼서 수프가 더 짙어진 라멘도 나온 것 같던데, 이번에 가면 그걸로 먹어봐야겠다.


오랜만에 도쿄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 같아, 조금 설렌다.


가게 이름

七志ら ー めん道玄坂店


주소

〒150-0043 東京都渋谷区道玄坂2丁目9−10


전화번호

+81 3-3464-7740


필요 예산

1,500엔 내외.


특기 사항

키오스크 발권기 없음. 현금 결제만 됨.


구글 지도정보

https://www.google.co.kr/maps/place/Nanashi+Ramen/@35.6590401,139.6973501,17z/data=!4m8!1m2!2m1!1z7J2867O4652866m0IOyghOusuOyLneuLuQ!3m4!1s0x0:0x35786ce804bf31d7!8m2!3d35.6588801!4d139.6980903

공식 홈페이지

http://www.nanashi-foo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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