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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천 Jul 29. 2021

4. 작은 해프닝, 그리고 출발

[9288km] 블라디보스토크, 2018년 7월29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마지막 날은 해변공원에서 뜨거운 햇살을 피해 그늘을 찾아다니며 보냈다.


이틀 전부터 극동함대 함선들이 근해에 도열하더라니, 무슨 페스티벌을 하려고 어제부터 축포를 쏘고 난리도 아니었다. 러시아 수륙양용 장갑차의 상륙 및 퇴출 훈련을 지켜봤다. 해변에는 러시아 해군 깃발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꽤 많았다. 깃발은 수화를 하시는 분들이 팔고 계셨다. 해변 공원은 여러 사람들로 북적였다.

야외에 설치된 간이식당에서 고기로 배를 채운 후, 숙소에 맡겨둔 배낭을 찾아 기차역에 도착해 미리 예약해둔 티켓을 수령했다. 가는 도중에 길게 정차하는 역에서는 마트도 갈 수 있다고 해서 전투식량 몇 일치랑 과자 조금 말고 먹을거리는 많이 사두지 않았다.


1시간 후면 출발한다. 어떤 느낌일까? 어떤 곳이든 어떻게든 적응하게 되어 있지만. 대합실에는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발권에 문제가 있었는지, 출발 20여분을 남겨두고 급하게 발권실까지 다시 뛰어갔다가 달려왔다. 표에 문제가 없었다던 직원 분이 내가 다시 달려간 후 문제점을 뒤늦게 찾아내고 다시 발권한 티켓을 들고 뛰어와 겨우 탑승할 수 있었다. 발권소 근처에 있던 어떤 러시아 청년은 손등에 그림까지 그려주며 날 도와주려 했고.


식겁한 해프닝이었지만, 무뚝뚝해 보이는 러시아 사람들의 다정한 모습을 볼 수 있어 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될 것 같다.

열차는 한밤 중(MCK 15:50)에 출발했다. 건너편에는 러시아 할머니와 손자가, 맞은편에는 별 말없이 휴대폰만 보는 러시아 여자분이 탔다. 아직 아무것도 모른 채 출발한 지 20분밖에 지나지 않아, 옷도 갈아입지 않고 앉아 일기를 쓰고 있다. 열차 안은 아마도 내일 자고 일어나 슬슬 보게 되지 싶다. 긴장되지만, 솔직히 오랜만에 여행에 대한 기대도 돼서 들뜬다.


아까 전 헐레벌떡 뛴 덕분에 땀범벅만은 되지 않고 열차에 탄다는 계획은 실패했지만. 열차가 생각보다 제법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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