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천 Aug 02. 2021

11. 죽음을 목격한 날

[9288km] 바이칼 호수, 2018년 8월 5일

올혼 섬 북부 투어 중 할아버지 한 분이 심장마비로 쓰러지셨다. 부슬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투어 보트를 타고 가다가 섬 북부의 어느 물가에서 하선해, 언덕 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투어 차량으로 갈아타러 가는 길이었다. 뒤따라 오던 그룹에서 작은 소동이 일어난 것 같았다. 앞서가던 나는 멀리서 보이는 소란스러운 모습이 무슨 의미인지 처음엔 알지도 못했다. 누군가 넘어지는 모습이 보였지만, 싸우는 분위기는 아니었던지라 서로 짓궂은 장난이라도 치는 줄 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심각한 상황이라는 걸 알아채고 달려간 자리에는, 5분 전까지만 해도 건강하고 유쾌하셨던 러시안 할아버지께서 힘 없이 늘어져 계셨다. 같이 오셨던 할아버지의 동행 분이 주치의라서 바로 심폐소생술을 하고는 있었지만,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계셨다. 바이칼 호수를 거슬러 올라가는 투어 보트 위에서 추위에 떨던 나에게 자상하게 모포를 덮어주시고, 즐겁게 노래를 부르시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눈에 초점을 잃은 채 혀를 빼물고 있는 모습이 낯설어 실감이 나지 않았다.


동행했던 어떤 여자분이 심장 마사지하는 사람 교대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중얼거리는 말을 듣고, 그제야 얼이 빠져 멍청하게 서있던 스스로를 욕하며 나도 심폐소생술을 거들었다. 기억나는 한 배운 대로 최대한 열심히 했지만, 결국 별 차도 없이 다음 사람에게 차례를 넘겼다. 2시간 거리에서 달려오고 있다는 앰뷸런스와 조금이라도 빨리 만나러 투어 차량에 실려 출발하기까지 할아버지는 의식을 찾지 못하셨다.


다른 투어 차량을 타고 진흙 길을 몇 시간 달려 후지르 마을에 귀가했을 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죽음의 실제 모습은 그렇게 허망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10. 호숫가에서의 하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