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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천 Aug 01. 2021

10. 호숫가에서의 하루

[9288km] 바이칼 호수, 2018년 8월 4일

아침 일찍 일어나 부르한 바위 근처에서 경치를 감상하고, 숙소에 돌아와 소박한 메뉴로 꾸며진 아침을 야외 테이블에 앉아 느긋하게 먹었다. 어제 식당에서 저녁을 뺏어먹던 고양이는 조식 메뉴에는 별로 얻어먹을 게 없다는 걸 아는지 식당 문지방에 뚱한 표정으로 걸터앉아 있었다.

서두르기가 싫어 차 두 잔까지 느릿느릿 홀짝거린 후, 숙소 안의 자전거가 모두 예약된 탓에 대로변에 있는 렌털 샵에서 자전거 한 대를 하루 종일 빌려 동네를 탐험했다. 평소에 한 번 타보고 싶었던 팻 바이크다. 자전거를 타다가 힘들면 언덕에 앉아 쉬며 바이칼 호수 건너편의 시베리아를 바라보고, 충분히 쉬었다 싶으면 다시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 언덕을 달리며 시원한 바람을 즐겼다.

호수 건너편에 있는 시베리아가 꼭 무슨 다른 세상처럼 보였다. 직선거리로 15km나 떨어져 있는데도, 아마도 자동차인 듯한 뭔가가 움직이는 게 가끔 보이는 것도 신기했고.


그 기묘한 느낌을 내 사진 실력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게 안타까웠다.

점심쯤엔 잠시 숙소에 돌아와 찬물로 샤워를 하고, 카페에서 느지막이 나오는 점심을 즐겁게 기다리며 그늘을 즐겼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걸어서는 가기 힘든 동네 곳곳을 탐험하다가 기념품 가게를 구경하고, 이곳을 떠날 때 사들고 가고 싶은 기념품이 있나 머릿속에 점찍어놨다.

저녁 8시, 해가 질 때쯤 계약한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자전거를 반납하고 주인 분과 서로 통하지 않는 말로 잠깐 즐거운 소감을 나누고 헤어졌다. 그리고 다시 두 발로 느릿느릿 걸어 부르한 바위로 가 석양에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언덕을 감상했다. 석양이 지는 고개의 사진을 찍고, 배부른 저녁을 먹은 탓에 조금 볼록해진 배를 쓰다듬으며 천천히, 쌀쌀한 저녁 바람조차 기분 좋게 즐기며 숙소로 돌아왔다.


기분 좋게 여행한 날. 걱정 없이 쉬었던 날.


내일 올혼 섬 북부 투어를 가기 위해 카메라와 옷가지를 준비해 두었다. 오늘은 구름도 거의 없이 하늘이 맑다. 부슬비가 내리던 어젯밤과는 달리 별이 보일지도 모른다. 자기 전에, 혹시나 사하라 사막에서 봤던 별로 가득 찬 그런 하늘을 또 볼 수 있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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