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88km] 모스크바, 2018년 8월 15일
블라디보스토크 → 모스크바.
여섯 번의 밤.
일곱 번의 시차 변경.
9288km.
8월 12일 새벽,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이 끝났다.
모스크바 기차역에 내린 뒤로는 긴 여행의 마무리가 으레 그랬던 것처럼. 편안하지만 다리는 힘든, 간혹 지루한 관광이 며칠간 이어졌다. 모스크바는 지난 2주간 겪어왔던 러시아와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구 소련, 그리고 제정 러시아의 잔재가 관광객을 위한 상품으로써만 남아 있는 곳. 이미 여느 국제도시처럼 철저히 현대화되고 자본 주의화되어 있는 도시.
이즈마일로브 시장의 가판대에서 구 소련 시절의, 누군가의 명예였고 추억이었던 수많은 배지와 사진, 군복 등이 그리 많지도 않은 값에 관광객들의 돈뭉치와 교환되는 모습은 뭐랄까. 한 때 세계의 한 축이었던 거대 세력의 쓸쓸한 노후를 목격하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이즈마일로브 시장에 올라오기 전에 지하철 역에서 M을 다시 만났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을 시작하기 전 블라디보스토크의 호스텔에서 만났던 또래 정도의 일본인 여행자다. 뜻하지 않은 우연에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시장으로 올라오는 동안 서로의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나와는 조금 다른 일정이었지만, 그녀도 횡단 열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모스크바에 도착했었다.
서로 다른 9288km의 여정 끝에 다시 마주친 걸 기념해 같이 사진을 찍고, 서로의 행운을 빌어주며 작별했다. 또 다른 여행지에서도 항상 즐거운 추억을 만들기를.
이곳에서 만난 또 다른 여행자는 모스크바를 시작으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횡단 열차를 타고 갈 거라 하고, 다른 사람은 우크라이나로 떠난다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한다고 한다.
나는 당분간 집에 돌아가 오랜만에 고요히 잠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