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여행] 포트 윌리엄 → 네스호, 2015년 8월 30일
스코틀랜드에서의 마지막 날.
어제 하루 종일 굶은 탓에 호텔 조식을 배 터지게 먹어치우고, 상태가 악화된 뒤꿈치의 염증을 치료하기 위해 호텔 근처에 있는 병원을 다녀왔다. 공휴일이라 병원에는 당직으로 보이는 할머니 간호사 한 분만 계셨다. 제대로 걷기 힘들어하는 나를 걱정하시던 간호사 분께서 비상 출근이 가능한 의사를 호출하기 위해 서둘러 전화를 돌리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래 정도로 보이는 여자 의사 한 분께서 출근하셨다.
의사 분께서 증세와 기저질환 여부 등을 자세히 물으시고는 양 뒤꿈치의 염증 부위를 치료하고 붕대를 감아주셨다. 생각보다 치료한 부위가 넓어서 한동안 붕대를 칭칭 감고 다녀야겠지만, 꼼꼼하게 치료해주신 덕분에 더 이상 덧나지는 않을 것 같다.
진료실에서 치료를 마치고 처방전을 받아 나오니 간호사 분께서 보이지 않으셨다. 마음 써주신 게 너무 감사해 인사라도 꼭 드리고 작별하고 싶어서, 다시 오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간호사 분께서 약국 위치를 알려주시려고 접수 데스크 테이블을 뛰어넘어 나오셨는데, 해맑은 표정이 마치 장난꾸러기 소녀 같아 보였다. 친절한 두 분 덕분에 오전부터 마음이 참 푸근했었다.
병원비랑 처방받은 페니실린은 무료였고, 액체형 반창고랑 잡다한 비상 약품 정도만 약국에서 구입했다. 적당한 시간에 떠나는 기차표를 구할 수 없어 포트 윌리엄에 하루 더 묵기로 한 후, 오후 일정이 애매해진 참에 버스를 타고 네스호에 다녀왔다. 어린 시절 누구라도 한 번쯤 들어봤을 '네스호의 괴물'이 나온다는 그 호수다.
당연히 괴물은 보이지 않았지만, 어제까지의 매정한 비바람이 마치 없던 일이었던 것처럼 네스호는 맑고 평화로웠다. 호숫가에 걸터앉아 조용히 경치를 감상하고 있다 보니, 드디어 일주일 간의 여정이 끝난 게 실감 나기 시작했다.
웨스트 하이랜드 웨이가 끝났다.
해가 지기 시작할 때쯤 포트 윌리엄에 돌아왔다. 저녁을 먹기 위해 들린 피자 가게 앞에서, 킹스 하우스 호텔 식당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던 커플과 재회했다. 서로 이름도 모르지만 반갑게 인사하고 잠시 수다를 나눈 후 헤어졌다. 그들은 며칠 더 걸어서 스코틀랜드 최북단에 있는 스카이 섬(Isle of Skye)까지 갈 거라고 한다.
만남과 헤어짐이 계속되는 게 여행인가 보다. 이제 그게 그렇게 섭섭하지는 않다.
내일은 런던으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