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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 Oct 20. 2024

첫인상 점수 100점 만점에 1000점

그저 설레고 행복했던 호주 첫날

비행기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도착한 호주. 어딘가 끈적끈적한 공기가 아니라 낯선 공기가 나를 반겼다.


‘아, 나 진짜 호주에 도착했구나!‘


사실 호주는 나한테 꿈의 나라였다. 우리와 반대인 계절, 어릴 적 외국인에게 선물 받았던 코알라 인형, 첫 펜팔이 호주인이었던 사실, 내 영어 이름을 지어줬던 외국인의 고향, 책에서 봤던 오페라하우스까지. 어릴 적부터 쭉 가보고 싶었고, 호주 정보를 찾다 알게 된 정보까지 더해지니 호주에서 직접 느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많은 기대를 안고 마주한 호주.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지만, 오히려 내 기대감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화창한 날씨, 자연적인 풍경, 역사가 담긴 듯한 건물. 새로운 게 눈에 담길 때마다 호주에 왔다는 걸 실감했고, 내가 여기 있다는 자체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첫날 머물렀던 숙소.


세부를 떠나기 전 호주에서 살 집을 구했지만 그 집으로 바로 가지 않았다. ‘호주 첫날은 무조건 시드니 하버 YHA에서 머물기‘로 정한 ‘호주 버킷리스트’ 때문에. 지금껏 여행을 가면서 한 번도 숙소에 의미를 둔 적이 없었지만 이 숙소는 그런 마음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호주 정보를 찾다 우연히 보게 된 루프탑 사진을 보게 됐는데, 보자마자 눈앞에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를 동시에 담을 수 있는 풍경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엔 그저 풍경이 멋있어 보여 끌렸고, 나중엔 그 풍경을 보며 ‘지금 나 호주에 있어’를 맘껏 느끼고 싶었다. 솔직히 ‘낭만 있게 ‘로 호주 생활을 시작하고픈 마음도 있었고.


숙소 루프탑


이 숙소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가 루프탑이었던 만큼 숙소에 도착한 뒤 캐리어만 던져놓고 바로 루프탑으로 올라갔다. 루프탑을 채우고 있던 하버브리지와 오페라 하우스. 그 풍경과 함께 호주 국기가 우리를 환영하듯 휘날리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다리, 공연장일 뿐인데 실제로 그걸 본 감상은 그러지 않았다. 마치 호주를 제대로 마주한 기분이었달까.


그 풍경을 눈에 담는 그 순간 압도됐다. 룸메이트가 언니 말 듣고 여기 오길 잘했다고, 이 풍경 보게 해 줘서 고맙다고 할 만큼. 추위에 안으로 도망쳤다가도 다시 밖으로 나갈 만큼. 낮, 저녁, 밤, 아침 할 것 없이 계속 이곳을 들락날락했을 만큼. 이 풍경을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오들오들 떨면서 Circular Quay(써큘러 키)를 직접 찾아갈 만큼.


약 5달을 여름으로 지내서 겨울 날씨 같던 호주지만(실제로 호주는 여름에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우린 도착하자마자 겨울 옷을 꺼내 입었다.) 그 추위도 우리를 막을 순 없었다. 써큘러 키에 도착하자마자 계속 사진을 찍고, 또 몇 걸음 못 가서 또 찍고. 결과물에 차이는 없었지만 이 벅찬 느낌을 표현할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다. 그저 오래도록 이 공간에 머무르고 싶던 마음뿐이었다.


서큘러 키(Circular Quay)


같은 마음이던 우린 하버브리지가 보이는 벤치를 찾아 앉았다. 헝그리잭 햄버거 세트와 함께. (헝그리잭은 호주 버거킹으로 어플을 설치하면 하루 한 번 흔들기[뽑기]를 할 수 있다. 뽑기 결과에 따라 음식을 할인받거나 무료로 먹을 수 있다.) 그날 그 벤치에서 하버브리지를 바라본 채로 햄버거를 먹으며 다짐했다. 지금처럼 재미나게 보내자고, 잘 살아보자고.


우리의 호주살이는 그렇게 ‘설렘’과 함께 시작됐다.




서큘러 키 역 근처에서 헝그리잭을 발견하고 우리도 호주에 온 기념으로, 앞으로 우리 호주 생활을 재미로 점쳐보자며 흔들기를 했다. 사실 그날 무엇이 나왔든 우린 잘 살 징조라 말했을 거다. 그만큼 첫날 행복했으니까. 단편적으로는 인상적인 풍경 하나지만 그 풍경으로 인해 첫날의 기억이 너무 좋았으니까. 하루 종일 놀이공원에 막 도착한 어린아이처럼 신이 났고. 음식을 망쳐도 웃어넘겼고. 같은 지점에 웃고 감탄했고. 마치 그날 하루가 우리 호주살이의 예고편 같았달까.


실제로 첫날 우리는 벤치에서 다짐했던 대로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잘 지냈다. 타국생활에 힘이 들 때면 그때를 떠올리며 ‘그래, 마음만 먹으면 그 풍경을 직접 눈에 담을 수 있는 곳에 있으니까.’ 하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음식, 노래 하나에도 깔깔 웃으며. 장보기도 투어 하듯 즐기며. 버스킹도 즐기면 가끔은 여행자 느낌을 만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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