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호주로 간다
20년 넘도록 해외에 한 번도 못 갔던 내가, 3개월 사이에 3번째 나라를 간다. 필리핀 생활을 마무리하고 호주로.
호주로 떠나는 발걸음은 가벼우면서도 무거웠다. 어릴 적부터 꼭 한 번 가고 싶던 곳을 간다는 설렘, 이제야 정들기 시작한 필리핀을 떠난다는 아쉬움이 뒤섞여서.
2019.10.19 토 6:25 pm
20대 후반, 다소 늦은 나이에 방문했던 첫 해외, 필리핀. 아직 마닐라로 향해서 필리핀에서 마지막이라고 하긴 뭐 하지만 그래도 세부를 떠나는 기분은 참 남다르다. 2달 동안 특별히 한 게 없다고 해도 익숙해진 일상을 또 떠난다는 게, 그리고 여기서 맺은 인연들과 헤어짐을 맞이한다는 게. 어떤 의미로든 엄청나게 시원섭섭한 기분이다. 아프고, 지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막상 세부를 떠나려고 하니 좋았던 기억들이 더 가득한 느낌이랄까. 그저 지금처럼 첫 해외에 첫 장기였던 만큼 좋은 곳으로 계속 기억하고 싶을 뿐. 좋은 시간, 좋은 인연, 좋은 추억이 생각보다 더 많았던 세부, 안녕!
그럼에도 세부를 웃으면 떠날 수 있던 건 경험이 주는 안도감, 코스를 같이 듣는 사람들과 함께 간다는 편안함 덕분에. 그 마음으로 이번에도 잘 지낼 수 있겠다는, 낯선 땅에서 외롭진 않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실제로 어학원을 떠나고, 공항으로 가던 버스 안에서, 마닐라 공항에서 대기하는 순간에도 그랬다. 같이 가는 사람들이 있어 재밌고, 든든했다. 문제가 있으면 도와주고, 기다리는 동안 이것도 추억이라며 사진을 남기고, 별 거 아닌 거에 같이 껄껄 웃다가, 서로 간식을 나눠 먹고, 돌아가며 상황을 알아보고.
혼자가 아니라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것 같은 호주, 그 생활을 기대하며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제 남은 건 약 8시간의 비행뿐.
곧 만나, 호주.
2019.10.20 필리핀기준 5:16 am
6시간째 비행기에 있는 중. 잤다 깼다를 무한 반복 중. 그래도 호주 가는 길이 예상했던 것보다 힘들지 않아서 다행일 뿐. 호주 간다는 설렘보다 또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이 커서 즐길 수 있을까 싶긴 하지만 이렇게 잘 보내는 것 보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버지 말씀대로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가 아닐까. 아직 호주 가는 길 꽤 남았는데 이제 지금부터는 걱정보다는 새로운 것을 더 많이 보고, 느끼고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만 가득 담고 가야겠다. 금방 호주에 도착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