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합리적 선택은 통제할 수 있으며, 모든 행동은 자신의 도덕적 의지에 달려 있다네. 이와 달리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우리의 육신이지. 그리고 부모, 형제, 자매, 아이들, 고향 등 나와 관계 맺는 모든 것은 통제할 수 없다네.
-에픽테토스, 대화록, 1.22.10 -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던 순간이 떠올랐다. 극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잃지 않던 사람들. 읽는 내내 떠올렸던 질문, 나는 그 상황에서 과연 뭘 택했을까?
책을 읽는 내내 너무 부끄러웠다. “상황이 그랬어, 어쩔 수가 없었어.” 그 말을 참 많이 했고 들었는데, 실상은 그게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아직도 선명하다, 처음 이 생각을 제대로 마주하던 순간이.
어쩌면 상황을 방패 삼아 편하게 있고 싶던 건 아니었을까. 나를 둘러싼 환경이 맘에 들진 않지만 바꾸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아니까. 변화를 위해 한 번은 견뎌야 하는데. 그걸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가장 쉬운 핑계를 댔고 환경을 탓하기만 했던 건 아닐까. 그러다 보니 결국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 제자리 맴돌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환경은 절대적인 값이 아니라 상대적인 값이 아니었을까.
지금 나를 둘러싼 환경이 뭐냐가 아니라 내가 그 환경을 어떻게 바라보냐가 ‘핵심’이라고.
그래, 부끄러움을 느꼈던 그때를 잊지 말자.
적어도 내가 어떻게 바라보고 행동할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