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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쩌면 광고쟁이가 됐을지도...(그 시절 면접백태)

영업사원의 일상과 가족

by 영업본부장 한상봉

난 어쩌면 광고쟁이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 면접백태)



조금 다른 이력서 제1탄 대기업 편이 주위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글은 그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20대 후반 첫 회사를 가기 전에 겪었던 여러 가지 면접 백태가 생각이 나 스핀오프로 읽으면 재밌을 듯하여 적어본다.


그 시절엔 그래도 나름 괜찮은 대학교의 경영학과 4학년이면 정말 많은 입사응시기회와 면접의 기회가 있었다. 그중에 내가 경험했던 몇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1. 커피숍 면접(금융계열)


일단 2학기가 시작되면 무슨 밭떼기 하듯이 각 그룹의 금융계열사들이 학교로 찾아와 학교 앞 커피숍에 자리를 잡고 졸업예정자 입도선매를 시작한다.


주로 삼성생명, 현대해상화재 같은 보험사들이고 현대증권, 삼성증권 같은 증권사들도 동참한다. 애시당초 그쪽으로 취업할 생각이 없던 나는 이제 시작이구나 라는 생각에 면접경험을 쌓기 위해 커피숍을 찾아갔는데 면접관이 딱 두 가지를 묻더라. 첫째는 주식투자를 해본 적이 있느냐와 둘째는 포커 좋아하느냐였다.


난 주식투자는 신문한면에 주식정보(그때는 신문에 상장사의 주가를 게재했었다.)를 펼치고 볼펜던져서 뚫린 회사 주식을 산적이 있다고 대답했고 포커는 단 1초도 졸지 않고 밤을 새울 수 있다고 대답했다. 면접관이 난 증권회사 가면 안 된다고 하길래 미련 없이 접었다.



2. 음식점 면접

엘지유통이었던 걸로 기억난다. 면접을 보기 전에 엘지유통 계열사를 먼저 답사하고 시찰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엘지 슈퍼마켓(지금은 없어졌을 것이다)을 방문했을 때였을 것이다. 난 긴 고무 앞치마를 두르고 고등어를 자르고 있는 과선배를 보게 된다. 아마 무슨 OJT 차원에서 대졸 신입사원들 순환체험 같은 거였던 모양인데 그 선배가 조용히 나한테 그러더라. '1년 동안 생선대가리 자를 각오 아니면 여기 오지 마.'


난 이후에 있었던 밥을 함께 먹으며 토론하는 걸 평가하는 면접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음식만 계속 먹어댔다. 진짜 맛있었다. 중간에 면접관이 아마도 나를 지칭하는 거였을 텐데, 자기네 회사는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뽑을 거라고 하길래 더 적극적으로 음식을 열심히 먹고 깔끔하게 포기했다.




3. 사장단 면접

혹시 대기업 그룹공채 최종면접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마지막으로 그 경험을 얘기하려고 한다. 현대그룹 최종면접때이다. 일반적이지 않게 면접자보다 면접관들이 더 높은 곳에 앉아있다. 그리고 줄잡아 20명 정도의 면접관이 면접자들을 위에서 내려보는 가운데 다섯 명 정도가 면접장에 들어가 앉는다.


각자의 소개를 하고 20명의 사장들은 개별적인 질문을 시작한다. 블라인드 뭐 이런 건 없을 때니까 사장들은 이미 면접자들의 학벌, 학점, 자기소개서를 다 파악하고 있다.


그때 한 사장이 나한테 한 질문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미스터리 사장님 : 자네 혹시 길을 걷다가 백화점 광고 현수막 같은 거 유심히 본 적 있나?


성급한 한상봉 : 아뇨 그런 적 없습니다.


미스터리 사장님 : 왜 나 같으면 저기 가서 물건을 사고 싶다 싶은 플랭카드 같은 거 있지 않았나?


바보 같은 한상봉 : 네. 그런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난 그 사장님이 현대백화점 사장이라고 지레 판단했고 현대백화점은 가고 싶지 않았기에 성의 없어 보이는 대답을 한 셈이다. 눈치챘겠지만 그 사장님은 금강기획 사장님이셨다. 아마도 내가 쓴 자기소개서가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만약 내가 성급한 면접자가 아니었다면, 아니 그런 큰 면접자리에서 말도 안 되는 그런 미친 여유가 있지 않았더라면 난 지금쯤 금강기획에서 세계를 움직이는 광고 카피를 만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에휴.....



현대에 합격을 하고 소위 말하는 면접비를 챙기기 위해 많은 면접을 다녔지만 위에 3가지 에피소드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코오롱에서의 영어면접은 정말 코미디였는데 그 미국인 면접관이 진짜 친절하게 웃어주던 기억이 난다. 20대 후반 취업을 위해 동분서주할 때 내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다 그렇겠지만 객기와 불안이 뒤섞인 대환장의 시기였던 거 같기도 하다.



사족 : 그 시절에 열심히 뛰어 다닌 덕에 난 현대와 코오롱 두군데 합격증을 거머쥐었다. 젊은 친구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어디를 갈까를 잠시 고민하던 중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계기로 난 현대로 방향을 틀었다. 아직 인사도 못드린 여자친구의 어머니, 즉 지금의 장모님이 이미 친구들에게 사윗감이 현대를 들어갔다고 자랑을 마치신 상태였다. 당시 코오롱 그룹의 모토였던 'One & Only' 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었는데 그 곳을 선택했다면 어떤 인생의 바둑이 펼쳐졌을까? 이휘재의 인생극장처럼 다른 결말이 과정이 문득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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