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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이력서 - 제1탄 대기업

영업사원의 일상과 가족

by 영업본부장 한상봉

조금 다른 이력서 - 제1탄 대기업


살면서 이력서를 몇 번 정도 써봤나? 요즘처럼 취업이 어렵다는 시절엔 몇백 번을 썼다는 취준생 얘기도 들은 적이 있고 자기소개서까지 겹쳐지면 정말 쓰기 싫겠다는 생각이 든다. 첫 직장을 가기 위해 많이 쓰겠지만 이직하기 위해서나 헤드헌팅 회사에 제출하기 위해 기성 직장인도 이력서를 쓴다. 내가 어떤 일을 해왔고 어떤 일에 자신이 있고 커리어가 있는 지를 가감 없이(아니다 조금은 있겠다.) 적는 것이 이력서다.


그런데 오늘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이력서 말고 좀 색다른 이력서를 써보고 싶다. 어딘가에 입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종의 자서전 요약본이랄까? 자서전은 주제가 다양하겠지만 이번 이력서는 내가 거쳤던 회사들을 추억하는 차원에서 써보는 조금 다른 이력서 제1탄이다.


나의 첫 회사는 현대그룹이었다. 1997년 당시 70개도 넘던 현대그룹 계열사 중 건설부문에 속해있던 현대엔지니어링이 내 사회생활 첫 번째 몸담았던 조직이었다. 참고로 난 IMF사태 발생 전 그룹공채가 시행되었던 마지막 기수로 듣기로는 경쟁률이 50대 1 정도였다고 했다.(하.. 정말 대단 대단)


엔지니어링 회사는 건설회사인데 아파트나 건축물이 아니라 주로 큰 규모의 공장이나 SOC를 짓는 특화된 회사이다. 중동개발의 붐을 타고 큰 그룹은 모두 엔지니어링회사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각 그룹의 엔지니어링회사 기획실 실무자들은 달에 한번 모여 정보를 나누곤 했었다. 그때 모인 회사들이 현대엔지니어링, 삼성엔지니어링, 대림엔지니어링, 엘지엔지니어링 이렇게 4 회사였고 정보공유를 핑계로 참 술을 많이 마셨던 기억이 난다.


내가 현대엔지니어링 기획실에 발령받고 제일 먼저 느꼈던 감정은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였다.


아무리, 느낌상 왠지 좀생이들이 모여있을 거 같은 부서지만 아무도 당구를 칠 줄 몰랐고(치는 사람이 있다 해도 다 나보다 하수였다. 대학 때 당구안치고 도대체 뭐 한 거야?) 모두가 졸업학점이 4.0 이상이었으며, 키도 하나같이 쪼끄맣고 못생겼더라. 나도 그런 것처럼 연기를 하긴 했지만 내가 그동안 어울리지 않았던 부류의 사람들과의 4년은 뭔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한 참 묘했던 시간이었다.


두 번째 감정은 '역시 조직은 라인이구나'라는 거였다.


인맥라인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라 부서가 수행하는 업무의 큰 물줄기들 중 더 핵심적인 업무를 맡느냐 즉 어떤 업무라인을 맡게 되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기획실의 제일 큰 업무 물줄기 세 개는 기획관리, 수주관리, 매출관리이다.


기획관리는 부서장의 주 업무라고 볼 수 있고 결국 부하직원은 수주와 매출로 나뉘는데 보이지 않는 업무중요도와 업무 주도권은 매출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갖는다. 두 파트의 중간관리자들이 있고 신규자들은 티오에 맞춰 배치되는 데 난 1년 선배가 매출관리에 투입되었기에 순서대로 수주관리라인에 속하게 되었다.


일단 중간관리자들부터 다르다. 매출관리 차장은 스마트하고 일단은 계속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데 내 위에 차장은 하루종일 웹서핑이 일이었고 내가 일을 해서 결재를 요청하면 그때만 잠깐 사인하는, 그야말로 요즘말로 월급루팡이 따로 없었다. 그 차장은 결국 부장승진에 실패하고 인사발표날부터 3일간을 휴가를 내더라. 재밌는 건 그렇게 엄격한 사내분위기를 가진 회사였음에도 승진실패하고 휴가 내는 건 모두가 무슨 당연한 절차처럼 생각하는 분위기였다는 거. 아무튼 지금생각하면 매출관리라인이었다면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싶다. 저 차장의 모습이 미래의 내가 될 수도 있겠다는 공포가 적지 않았다.



세 번째는 '군대보다 더한 상명하복'이었다


그 당시 그룹사는 그냥 군대나 다름없었다. 창업주들이 워낙 밀어붙이는 경영스타일을 선호했고 특히 현대는 다른 그룹들도 인정할 만큼 무대뽀의 전형이었다. 상급자 특히 부서장의 말은 당연히 신의 계시였고 승진, 진급 등 모든 것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부는 가장 낮은 단계의 꼬리흔들기라고 봐야 할 정도로 절대적인 위력이 있다.

우리가 가끔 코미디프로나 드라마에서 보는 말도 안 되는 상사 모시기의 실사판으로 봐도 무방하다.




난 처음부터 부서와 맞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부서장이 학교 선배였고 모범생만 모여있는 곳에서 흔치 않은 날라리행동을 하는 신입사원이라 귀염을 많이 받았다. 앞서 얘기한 대로 업무라인이 좋았거나 IMF로 현대건설과의 합병으로 인한 어수선함과 불안감만 없었으면 계속 현대맨으로 사회생활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대기업에서의 4년은 그 자체로도 좋은 경험이었고, 대한민국 최고의 사기업에 다녔었다는 나름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군대 이후 잊고 있던, 말도 안 되게 경직된 조직문화를 다시 경험한 것과 그런 분위기에서도 나의 유머와 똘끼가 통한다는 걸 스스로 증명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름 정을 가지고 순간순간 재밌게 보냈던 좋은 동료들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나의 대기업에서의 첫 4년, 사회인으로서의 첫 여정은 마무리되었다.



사족 : 현대아산으로 자원해서 옮겼던 동기의 슬픈 사연과 정몽헌 회장의 자살, 결혼한 뒤에 어쩔 수 없이 폭탄제거역할로 나갔던 현대드림투어 아가씨들과의 단체팅 등 할 얘기가 많은데 못했다. 늘 너무 길면 안 된다는 부담에 아쉬울 뿐이다. 언젠가 기회가 있을 거라고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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