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조금 다른 이력서 - 제3탄 사회적기업

영업사원의 일상과 가족

조금 다른 이력서 - 제3탄 사회적기업조금 다른 이력서 - 제3탄 사회적기업

조금 다른 이력서 - 제3탄 사회적기업


이쯤에서 다시 한번 내 직장생활 커리어를 돌아본다. 대기업에서 벤처기업으로 다시 중견기업에서 오늘 얘기할 사회적기업까지. 그리고 날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지금은 잠시 행안부 공무원으로. 참 다양한 이력을 지닌 사람이 아닌가 스스로 생각해 본다.


첫 직장으로 대기업을 갔을 때 부서의 선배들은 대부분 나에게 이제 평생직장을 왔으니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 주셨다. 그때는 IMF 전이라 한번 입사한 곳에서 뼈를 묻는 다소 일본직장문화가 남아있을 때여서 나도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했었는데 단 한 명만이 둘만 있을 때 조용히 말해주곤 했었다.


"한상봉씨, 고생해서 잘 들어왔네. 근데 여기서 평생 있을 생각은 하지 마."

"네? 무슨?"

"항상 회사를 옮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라고. 천년만년 회사가 잘 나갈 거 같애?"


그때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해주던 정대리님은 내가 입사한 지 1년이 되기 전에 미국으로 MBA를 떠났다. 지금 생각하면 혜안이 있던 선배가 아닌가 싶다.


들은 말이 씨가 된 것일까? 위에서 말한 대로 난 참 많은 회사를 경험했다. 옮긴 회사의 숫자가 많은 건 아닌데 묘하게도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기업을 다 경험하게 되었으니 아무래도 잠재의식 속에 그 선배의 말이 어느 정도는 박혀있었던 모양이다. 이제 대기업과 벤처기업을 여행했으니 마지막으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걸 생각하게 해 줬던 사회적기업에서의 여정을 시작하려고 한다.


사무실은 목동이었다. 내가 살던 경기도 양평에서 목동까지는 차로 거의 두 시간을 가야 하는 거리였기에, 지금도 조금 아쉬운 건 같이 일했던 분들과 맘 편히 찐하게 술 한잔 자주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술얘기부터 먼저 하는 이유는 그때 동료들이 참 다정하고 인간미 넘치는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대단한 이력을 가지신 분들과 함께 했었다. 임원진 중 한 분은 KBS 노조위원장을 하셨던 분이었고 다른 이사님은 유수의 기업에서 전략을 담당하던 분이셨다. 그리고 대표님은 PD연합회에서 잔뼈가 굵으신 나보다는 연배가 어렸지만 배울게 참 많았던 든든한 분이셨다.


그분들은 그 당시 엄청나게 휘몰아치던 공무원 준비생, 소위 공시생이라고 하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계셨다. 사회적기업도 기업이다. 기업은 이익을 수익을 창출해야 했고, 다만 거기서 창출한 수익을 공시생들의 복지에, 생계에, 그 사람들의 열정에 응원을 하는 데 쓰고 싶어 했다.


난 아무래도 영업의 정글에서 살다 온 사람이다 보니 그분들의 따뜻함을 온전히 다 가질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내가 가진 능력으로 좋은 것을 하기 위한 베이스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즐거웠다. 사회적기업의 직원이 된 것이다.



사업은 크게 두 줄기였다. 첫 번째는 솔루션 매개 비즈니스.


워낙 맨파워가 강한 분들이 모여있다 보니 그분들이 핸들링, 아니 그분들이 만나서 사업얘기를 할 수 있는 다양한 회사들의 CEO, CFO, 간부 인맥이 우리의 영업대상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IT 솔루션의 정보를 그 인맥과 연결하면 그 가운데서 얻을 수 있는 중개 수수료, 즉 거마비를 수익으로 가져갈 수 있다고 판단한 솔루션 매개 비즈니스를 기획한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솔루션의 라인업은 어느 정도 갖췄지만 의외로 그쪽일을 해보지 않았던 동료 임원분들은 사업이나 영업에 미숙하셨고 생각보다 일이 진행되지 않자 조금은 지쳐가셨다. 때마침 경기도 좋지 않아(이놈의 경기는 좋은 적이 없었지만) 더더욱 힘들게 느껴질 즈음 우리는 잠시 첫 번째 비즈니스를 서랍에 넣어두고 정말 하고 싶었던 두 번째 주력비즈니스에 집중하기로 결정한다.



두 번째 비즈니스는 축제 사업이었다.


좀 생소하겠지만 축제는 이제 우리 일상에 깊이 들어와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이름도 기억하기 힘든 수많은 지역에 특성에 맞는 축제를 개발하고 개최하고 있듯이 전 세계적으로 그 나라를 표현할 수 있는 각종 축제들이 무척 많다. 만약 당신이 속한 회사가 전 세계 사람들이 모이는 유명한 축제에 참가해서 마케팅도 진행하고 홍보도 하고 무언가를 뽐내고 싶다면 어디에서부터 시작하면 될까? 우리 비즈니스는 그런 문제를 A부터 Z까지 대행해 주는 역할을 표방한 사업이었다.


영국에 에든버러 축제를 아는 가? 매년 8월부터 전 세계의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전통의 축제이다. 많은 한국의 회사들이, 공연자들이 건너가서 참가하고 싶어 하는 손꼽히는 유명한 축제다.


우리 회사는 그 축제의 한국인 참여에 대한 독점적인 중개권을 주최 측으로부터 따내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제 한국의 회사나 한국의 수많은 공연단은 우리 회사를 통해서 부스를 얻고 공연장을 대여하고 스케줄을 잡아야 하는 그야말로 엄청나게 익스클루시브한 권리를 보유하게 된 것이다.


사업은 아주 물 흐르듯 진행되었다. 국내 1, 2위를 다투는 그룹사에서도 에든버러에 제품 및 회사 이미지 홍보를 위한 부스며 전시관을 희망했고 우린 그 유수의 회사들 홍보팀과 거의 매일 미팅을 잡아 움직이고 있었다. 심지어 무한도전이나 1박 2일을 영국 에든버러에서 로케로 촬영하기 위한 사전논의도 진행했었기에 김태호 PD나 나영석 PD, 유재석 씨와도 미팅일정을 조율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이상하게도 계약이 체결되려는 순간에, 한 스텝만 더 밟으면 되는 데 일이 자꾸 어그러졌다. 기업의 사정이 안 좋으면, 경기가 안 좋아 무언가를 줄여야 할 때 가장 먼저 줄이는 비용이 홍보비용이다. 야심 차게 홍보비를 지출하려고 했던 큰 회사들이 체결직전에 보류와 취소를 하기 시작했다. 작은 규모의 문의와 계약은 진행됐지만 회사입장에서 큰 그룹사의 참여가 없이는 수익을 맞출 수가 없다는 위기감이 몰려왔고 에든버러 주최 측의 우려와 독촉이 계속되면서 결국은 사업권을 포기하게 된다.


최종적으로 에든버러 사업을 접기로 한 날, 우리 회사도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직원들 빼고 이사진들이 회의실에 모여 그 결정을 하던 날 김 대표님이 하신 말씀이 말이다.


"죄송합니다. 여러분들을 모셔놓고 결국은 성과 없이 사업을 접게 됐네요. 하지만 눈으로 보는 성과만 안 보일 뿐입니다. 언젠가 보여지는 성과를 맺기 위해 달려온 거라고 생각하십시다. 제가 더 쎄질게요. 더 힘이 쎄져서 다시 모실게요."


난 더 힘이 세져서 돌아오겠다는 김대표님의 말과 톤과 목소리를 오랫동안 잊을 수가 없었다. 사실 금전적으로나 여러 면에서 김대표님은 거의 본인이 모든 걸 짊어지고 사업을 접으셨다. 내가 잠시 경영지원본부장을 하면서 중소기업에게서 저리로 주는 기업대출을 마치 돈을 번 것처럼 좋아했던 걸 뒤돌아 보며 부끄러워진 적도 많다. 결국 그건 대표님이 고스란히 빚으로 떠안게 되는 건 줄도 모르고 말이다.


사회적기업은 그 시작부터, 창업부터 취지가 선하고 공익적이어서인지 위에서 말한 것처럼 구성원들이 왠지 모르게 착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전에 다니던 회사들은 아무래도 수익지상주의인 일반회사였고, 그중에서도 가장 자본주의적인 사고를 하는 영업에 몸담다 보니 더 그게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


회사의 모든 부채를 떠안으신 대표님과 극심한 스트레스로 병에 걸리셨던 전략사업본부장님, 그리고 늘 묵묵하게, 조금은 딱딱하지만 나에게는 츤데레셨던 조이사님 까지 꼭 다시 뵙고 짧았지만 그 시절 얘기를 하고 싶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지나고 나니까 알게 되는, 미래를 모르는 인간이 세우는 계획과 준비가 얼마나 부질없을 수 있는지에 대한 뼈저린 배움이 있다.


생각해 보라. 그때 우리가 그 축제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런칭해서 회사를 더 키우고 확장했더라면? 회사의 확장은 곧 더 큰 부채와 대출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건 더 사업이 잘 될 거라는 확신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흐름일 텐데 그때 그 흐름으로 흘러갔더라면?


몇 년 뒤 닥칠 코로나로 우리 회사는 풍비박산 났을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모일수록 매출이 늘어나는 축제 비즈니스가 주력인 회사는 아마 자기 몸이 부서지는 걸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찰나에 망해버렸을 것이다. 얼마 전 오랜만에 그 당시 대표님과 통화하면서 그 얘기를 하며 서로 크게 웃었다. 참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기업의, 조직의 미래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사회적기업이 그 취지와 선의를 살리면서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총알까지, 비즈니스까지 잘 해낼 수 있다면 더없이 이상적인 조직이 될 것이다. 오랜 기간 동안 돈과 이익과 영업에 찌들었던 나에게는 아주 신선하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몸이 많이 좋아지고 회복되셨다는 전략사업본부장님과 정치 쪽에서 일하시게 되어 여의도에 계시다는 조이사님, 그리고 최근에 같은 이름의 회사를 만들어 지역연계 비즈니스를 다시 시작하신 김대표님의 건승을 응원한다. 그리고 그때 함께 일했던 부서원들과 직원들에게도 고생했다고 인사를 전한다.


이제 조금 다른 이력서를 마무리하고 아쉬우니 번외 편으로 다단계, 소위 말하는 피라미드 회사의 실상을 타임머신을 타고 대학생 때로 돌아가 낱낱이 파헤쳐 보자. 오랜 시간이 흐른 얘기라 나도 좀 편하고 가볍게 즐겁게 얘기해 보고자 한다. 조금 다른 이력서 번외 편도 기대하셔도 좋다.



사족 : 지역을 연계하는 비즈니스를 같은 이름의 회사로 시작하신 김대표님과의 얼마전 통화는 즐거웠다. 그리고 얼마후 그 회사의 직원과 다시 통화를 하면서 뭐랄까 사회적기업을 하는 분들의 따뜻함을 비록 유선상이지만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사회적기업을 표방하면서 오로지 돈만 좇는 곳도 많겠지만 내가 잠시 몸담았던 그 곳처럼, 그 사람들처럼만 운영하는 곳이 많다면 아무리 자본주의의 정실소생이 기업이라 하더라도, 서자를 무시하지 않는 착한 양반들이 많아 질텐데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 본다.




































keyword
이전 09화조금 다른 이력서 - 제2탄 벤처기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