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eon May 29. 2020

의욕의 사이클

좋은 타자의 마음가짐

    흔히들 야구선수의 타격에는 사이클이 있다고 한다. 잘 맞을 때는 공이 수박처럼 보인다고 하고, 안 맞을 때는 무슨 짓을 해도 안 맞는다고. 그래서 시즌 초반에는 늘 4할에 도전한다는 타자들이나 평소와 다른 극심한 부진에 빠진 타자들이 스포츠면의 기사를 타지만, 결국 대부분은 평균 타율로 수렴하곤 한다. 슬럼프를 극복한 타자들은 늘 뭔가를 깨달은 것처럼 말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타자도 언젠가는 또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때로는 팀 전체가 매 경기 한 점밖에 못 내는 슬럼프에 빠지기도 한다...


    나의 의욕과 활력에도 이런 사이클이 존재하는 듯 하다. 어떤 날들은 의욕이 넘쳐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어떤 날에는 뭔갈 하긴 해야겠는데 아무 것도 시작하기조차 싫다. 우리는 현재의 일시적인 상태를 그대로 외삽(extrapolation)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오류를 자주 범하는데, 그래서 의욕의 변덕은 내 삶에 대한 시각을 계속 흔들어놓는다. 때로는 세계적인 학자가 되어 해외의 유수 학회들에서 훌륭한 발표를 해내는 스스로의 모습을 그리다가도, 때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미래를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변수를 움직이는 함수를 전혀 모른다면 외삽을 통한 예측은 무의미하다.


    이런 변덕은 내 삶에 계속해서 존재했고, 여기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해답 같은 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이런 변덕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일이 잘 되는 날에는 에너지를 쏟아붓고, 되지 않는 날에는 최소한의 일만 하면서 스스로를 정신적으로 너무 학대하지 않는 것이다. 곧 다시 의욕 넘치는 날이 찾아올 테니,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로.


    이건 단순한 자기위로가 아니라, 스스로를 계속 관찰해 내린 귀납적 결론이다. 물론 바로 바닥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 그런 건 발견하지 못했다. 내 마음의 해결책은 내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 내에서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마음의 문제라도, 자기 자신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극복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슬럼프에서 벗어나는 구체적 방법은 다들 다르겠지만, 타자들이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대답이 있다. ‘생각이 너무 많았다’, ‘마음을 비우고 쳤다’. 단순한 대답 같지만, 생각과 마음을 비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 풀리는 날은 누구에게나 있다. 좋은 타자는 슬럼프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빠르게 벗어나는 법을 안다. 거의 모든 경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내 눈앞에 놓인 일을 해나가는 것 뿐이다. 왜 우리의 마음은 늘 같은 사실을 반복하여 새로 깨달아야 하는 건지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불가피하게 과거와 현재를 사랑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