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호의 슬픔은 어디로 갔을까?

새벽에 문득

by 여섯

지금은 생소한 작은 성냥갑이 카페나 술집의 홍보용 기념품이었던 시절이 있다. 보통은 상호와 전화번호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기 마련이었지만, 카페 Gogh의 성냥갑에는 화가의 초창기 작품 만이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그림은 고흐가 화가로서 첫걸음을 떼던 1882년의 작품 '슬픔(sorrow)'이었다. 스케치도 있고 석판화 작품도 있는 것 같던데 어떤 버전이었는지는 정확하지가 않다.


​카페는 동기들과 시간을 보내기에 아주 좋은 공간이었다. 지금처럼 커피 한 잔에 무한정 시간을 보낼 수 없던 때였는데도, 국어시험 준비한답시고 우르르 몰려가서는 파르페며 아이리시 커피를 한 잔 씩만 시켜 먹으면서 왕왕거려도 긴 머리에 늘 조용히 앉아만 있던 주인장은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군대를 가기 전 자주 드나들으며 음악도 듣고, 커피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던 나만의 조용한 곳이었는데 지하 카페임에도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도록 공간을 덜어 밖으로 작은 정원을 꾸며 놓았었다.


​리움이나 박수근미술관 같은 멋진 건축의 중정이나 뒷마당에 소리 없이 자리 잡고 있는 자작나무를 보면서 오랜 친구를 기다리는 마음을 보는 것 같다 생각을 했는데, 과거 그 창 밖에도 공중을 ‘날고싶은 자작나무’가 서있었나 기억에 다가서려 하지만 이젠 확인할 길이 없다.


지도앱에서 찾아본 그 자리에는 이미 거대한 오피스텔 건물이 서 있다. 건너편엔 간판도 없다가 나중에는 '막'이라는 한 글자로 존재를 표시하던 막집도 이제 동해회집으로 간판이 바뀐 지 오래다. 동해회집 주인아저씨는 오늘도 옛 추억을 찾아 발걸음을 한 동문들의 술잔을 마다하지 않으며 발그레한 얼굴로 회를 썰고 계실 것 같다.


​며칠 전 다가오는 미래를 전망하는 강의를 들었다.

젊은 세대와 그들의 생각을 논하다가 과거의 신세대론을 거론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세기의 경계에 서 있던 우리가 바로 세대론의 첫 주자 X세대였다고 한다.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하나의 특징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첫 세대였다고...


​선배들은 우릴 모래알 학번이라고 놀렸고, 우리는 지하의 호젓한 카페에서 따로 놀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동기들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지금 여기 21세기 지구 어디에선가 모두들 잘들 살고 있을 것이다. 뒤늦게 낳은 아이가 벌써 중학생이 된 것처럼, 그들의 아이들도 키가 쑥쑥 자랐을 것이다. 몇 년 후에도 새벽마다 소심하게 스탠드를 켜고 앉아 이야기꾼을 꿈꾸고 있을 나처럼, 그들도 가슴속에 숨겨둔 꿈을 잊지 않으려 불면의 밤을 보내며 풋풋했던 시절의 인연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그때 카페에서 집어온 성냥갑을 뜯어서 오랫동안 책갈피로 사용했다. 2년 전 이사를 하면서 오래된 책들을 많이 정리했는데 그때 분명히 고흐 화집 중 하나에 잘 끼워 두었다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없다. 남아 있는 책들을 다 펼쳐보며 찾아봤는데, 없어졌다. 대학 신입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았다면 고흐의 슬픔 책갈피 사라진 것도 모르고, 안타까워하지도 않았을 텐데....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접으며 책꽂이 속 곳곳에 숨어있는 스무 살, 나와 그들의 청춘을 되짚어보는 새벽이다.


* 빈센트 반 고흐, Sorr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