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인

[짧은 이야기 : 소설 2분 남짓]

by 손글송글


주머니에 넣은 손에 만원과 동전 세 개 그리고 카드뿐이다.

비가 연일 내린 통에 인력사무실로는 나가지도 않았다.

‘ 사발면이나 사 먹고 굶어야겠다.‘


딸랑~

“어서 오세요.”

알바생의 건조한 말투 인사에 목례만 한다. 사발면을 사고 계산대 앞에 선다. 켜진 티비에서는 내일도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나오고 있다.


‘내일도 비가 온다니, 한겨울에 웬 장마야. 죽어라 죽어라 하네. 하긴 내 몸이 먼저 알긴 해. 비 오는 건...‘


“1,200원입니다.”


’ 동전도 있어요.‘


만원과 200 원을 같이 내민다.


“네.”


딸랑~

“어서 오세요.”


한 노인이 들어온다.

힐끔 봐도 잘 빼입은 멋진 노신사다.

거스름돈과 라면을 들고나가려는데 노신사가 팔을 잡는다.


” 혹시 나 천 원짜리 몇 장만 빌려줄 수 있나? 내가 이 앞에서 어느 아이를 만났는데 딱해 보여서... 아, 난 지갑을 놓고 나왔지 뭔가. 여기, 내 명함이네. 내일 여기 적힌 곳으로 연락하면 내 돌려주겠네. “


알바생을 보니 못 들은 척하며 창고로 서둘러 들어간다.


노신사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건네며 부탁을 한다.

슬쩍 문밖을 보니 10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오들오들 떨며 바라보고 있다.


’ 여기 구천 원이에요. 이게 다예요.‘


명함을 주머니에 넣고는 돈을 노신사에게 건넨다.


“더 묻지도 않고 믿어주니 고맙네. 내일 꼭 연락주게나.”


‘ 노인네, 애는 추위에 떨게 하고 자기만 따듯하게 입고... 얼른 그거라도 가지고 집에 가면 좋겠다. 하-, 애가 안쓰러워 주긴 줬는데... 내일은 뭐 먹나?‘


누우면 꽉 차는 고시텔로 돌어와 사발면은 구석에 던져 놓는다.


‘오늘은 굶고 내일 못 참겠다 싶을 때 먹어야겠다.’


눅눅한 겨울날씨에 난방은 거의 안되어 냉기만 없는 방에서 무거운 이불만 돌돌 말아 배를 움켜쥐고 초저녁부터 잠을 청한다.


“한아! 한아! 일어나, 오늘 비 안 와. 사무실 가봐. “


시끄럽게 벽을 두드리는 옆방 작가지망아저씨가 깨운다.


‘네, 고마워요.’


재빨리 일어나 이불을 반듯하게 개고 공동세면실로 향한다. 양치와 세수만 대충 하고, 발을 구멍 난 낡은 안전화에 구겨 넣는다.


벌써 인력사무소 앞까지 사람들이 있다.


’ 세수하지 말고 올걸... ‘


사무실 안에 들어가 사장이 준 번호표를 가지고 다시 나온다.

20분쯤 지나 번호가 불린 사람들은 할 줄 아는 기술과 별개로 인력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몇몇 씩 봉고차나 트럭에 실려 나간다.


“자, 오늘은 더 찾는 곳이 없어요. 다들 가시고 내일 봅시다. 에헴.”


사장은 허리춤을 올리며 사무실로 들어간다.

터벅터벅 고시텔로 향하다 편의점으로 발길을 돌린다.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찾아야 해서다.


‘방값은 내야지.’


편의점 계단을 막 오르는데 아이 소리가 들린다.


“아저씨, 아저씨! “


뒤를 본다.

작은 아이가 날 빤히 보며 부른다


“아저씨 어제 고마웠어요. 아저씨가 준 돈으로 집에 잘 갔어요. 친구네 갔다가, 아, 그 친구네는 처음 가봤어요. 놀이터에서 놀다 헤어져 이만큼 왔는데 점퍼도 시소위에 놓고 그냥 왔지 뭐예요. 근데 난 그 친구랑 같이 간 거라 길을 모르겠고... 음, 하여튼 어제 그 할아버지에게 나 사는 곳 말하니까 택시 태워 보내줬어요. 아저씨가 돈 줬다고도 말해 줬어요. 엄마한테 말했더니 아저씨 찾아야겠다고, 감사인사해야 한다고 편의점에 물어보러 들어갔어요. 전 혹시 아저씨 지나갈까 봐 여기 있었는데 딱 만났어요! 이리 와요. “


아이가 잡은 손에 이끌려 편의점으로 들어간다.


“엄마, 이 아저씨예요!”


아이 엄마로 보이는 아름다운 여자가 편의점 사장과 대화하다 돌아본다.


“아저씨,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아저씨가 제 귀인이래요!”


아이를 다시 본다.


‘넌 좋겠다. 예쁜 엄마랑 살아서.., 난 말할 줄 몰라 다행이다. 엄청 더듬거렸을 거야.’


짧게 목례를 하고 돌아선다.

아이의 엄마가 팔을 잡으며 손에 봉투를 놓아준다.


“잠깐만, 감사인사를 드려야 하는데요. 선생님. 저 여기...”


봉투 안을 본다. 만 원짜리가 없다. 그냥 봉투를 아이 어머니 손에 준다. 멋쩍어 손을 주머니에 넣으니 잡히는 게 있다. 그것도 건넨다. 방실 웃는 아이 머리를 쓰다듬고 편의점에서 나온다.


‘오랜만에 맑은 날이라 좋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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