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

[짧은 이야기 : 소설 2분 남짓]

by 손글송글
제 기준으로는 충격적 장면이 있습니다.
감상에 주의 부탁드리겠습니다.


M은 검은 코트 깃을 한 껏 올리고 고개를 약간 숙여 본다.

제임스 딘의 수줍은 미소를 가진 듯 살포시 웃고 눈길만 위로 향한 얼굴은 조각 같다.

전신 거울 위의 피사체... 다시 한번 거울을 보고는 문을 힘껏 열고 씁쓸히 웃으며 나간다.




겨울의 끝자락이라지만 한 겨울인 듯 매서운 날씨에 코트 깃을 한 번 더 치켜세우고 걸음을 빨리 걸어 카페 문을 열러 간다. 2년째 이 일을 하고 있는데 약간의 재미를 느낀 건 겨우 얼마 전부터다.

주문이 거의 없는 작은 목공 공방을 하다가 가지고 있던 목자재를 이용해 공방을 카페로 만들었다. 꽤 섬세한 톱질과 대패질을 하는 M은 마지막 기회인 듯 최선을 다해 테이블과 의자를 규격품처럼 차근차근 만들었다. 각 잡힌 주방가구들은 예술 작품처럼 흰 벽을 배경으로 자리 잡게 했다. 큰 화분 2개를 문 양 옆으로 놓았고, 늘 조용한 클래식을 틀어 놓은 앰프는 가장 고가다. 카페일은 대학시절 일했던 경험이 있어 익숙했다. 하지만 다양한 요즘 음료는 만들 줄 모르고 그러고 싶지도 않아 몇 안 되는 커피와 에이드만 메뉴에 올렸다. 아이러니하게 오히려 단순해서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편에 수북이 쌓이는 톱밥과 귀마개를 뚫고 들어오던 전기톱질과 드릴 소리에서 해방되면서 자유도 느껴졌지만, 늘 다시 목재를 만지며 생활하고 싶기도 했다.


2달 전 B를 처음 만났다. 엊그제까지 B는 거의 매일 아이스커피를 찾고 누군가에 쫓긴 바쁜 일정에 진이 다 빠져 있었다. 늘 문을 닫는 늦은 시간에 찾아오던 그는 엊그제 모든 것을 잃은 표정이었다. 자기는 더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이해 안 되는 말을 또 시작했다. 말 끝에 M을 보며 애원하는 눈빛을 보냈다. M은 뭘 할 수 있다고 그러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멋쩍게 지었다.


설거지와 청소를 마치고 한 번 더 둘러본 카페는 오픈 첫날과 같은 모습이고 전등 스위치를 쓰다듬고 불을 끄는 M만의 루틴으로 문을 닫고 집을 향했다.

발걸음 소리가 뒤쫓아 오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건 집까지 가는 길의 절반쯤 왔을 때였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B였다. 지쳐 보이던 그는 어디로 가고 눈빛이 섬뜩한 B가 아까와는 다른 옷을 입고 모자를 눌러쓴 모습으로 웃으며 다가왔다. 그는 솔직히 말을 했다. M이 카페 문을 닫고 집으로 향하는 걸 지켜봐 왔다고. M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행인도 없었다. 제길. 작은 소리를 내뱉고는 원하는 걸 말하라고 했다. B는 집으로 데려가 달라고, 가서 말하겠다고 어깨를 두르며 날 선 칼을 보였다.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 B가 압박을 주며 더 세게 어깨를 움켜쥐고 M의 집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현관문이 열리자 B는 M을 안으로 밀쳤다. M은 자기 집 문을 열고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둘러보고 신발을 뒤로 해 벗던 그만의 루틴을 어기고 들어왔다는 것이 언짢았다. B는 생글거리며 냉장고를 열어 캔맥주를 꺼내 식탁의자에 앉았다. M도 앉으라며 턱을 한 번 치켜세웠다가 내렸다. 제길. 또 M이 중얼거렸다. 왼손에는 작은 칼을 움켜쥐고 맥주를 마시는 B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M의 손을 바라보며 B가 말을 했다. 자기는 죽을 거라고 했다. 일에 파묻히나 흙에 파묻히나 똑같다며 자기가 죽거든 M의 집 뒷마당에 묻으면 좋을 거라 했다. 하필 M에게 황당한 일을 시키는 이유는 두 달 동안 지켜본 M이 깔끔하게 자기를 흔적 없이 지워줄 것 같다고만 했다.

M은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왜 이런 작자를 만나 조용히 간단한 식사로 하루를 마감하는 행복한 자기만의 시간을 뺏겨야 하는지 슬슬 화가 났다. B는 캔을 찌그러트리고는 욕실로 향했다. M이 경찰을 불러야겠다고 전화기를 드는 순간 욕실에서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났다. 욕실문을 여니 B가 쓰러져 있고 붉은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제길. M도 머리로 피가 거꾸로 쏠리고 짜증이 났다.




카페 바닥을 닦고 오픈 준비를 마쳤을 때 건장한 경찰 두 명이 들어왔다. B의 사진을 보이며 행적을 물었다.

B의 가족이 B와 연락이 닿지 않아 실종신고를 했고, 거리의 방범 cctv로 추적하다가 M의 카페에 들른 B를 확인하고 그에 대해 묻기 위해 온 것이었다. M은 요즘 자주 들르는 손님으로 안면이 있음을 얘기했다. 경찰은 카페 안을 비추는 cctv가 없는 걸 확인하고 협조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나갔다.


M은 다시 한번 집에서 나올 때 둘러본 집을 생각했다. M만의 조용한 루틴을 깨져버리게 만든 B에 대한 분이 다 풀리지 않은 마음으로 전신거울 앞에 세워 놓은 피범벅의 B를 이제는 묻어야겠다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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