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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Oct 08. 2024

어릴 적 아빠에게 받았던 선물
그리고 사랑

달려라 부메랑

서울특별시 노원구 중계동에 살던 어린 시절,

어느덧 저녁시간이 다가오면 엄마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퇴근하시는 아빠를 마중하러 가곤 했다.



그 시절 나는 즐겨 보던 만화영화가 있었는데, 제목은 「달려라 부메랑」이었다. 만화영화의 열풍을 제대로 실감할 수 있는 곳은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상가에서였다. 엄마 심부름으로 구판장에 갔다가도 바로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꼭 코너에 있는 문구사 앞을 서성이다 돌아왔던 이유는 거기에 미니카 트랙이 있었기 때문이다.



트랙 주변에는 언제나 아이들이 북적였다. 나도 미니카가 가지고 싶다고 몇 번이고 엄마 아빠에게 말씀드려봤지만 사주지 않으셨던 것이 섭섭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니카를 가지고 놀지 않더라도 동네 아이들과 팽이를 치거나 주차선에 돌멩이로 금을 긋고 1부터 8까지 숫자를 써놓고 땅따먹기를 하는 등 하고 놀만한 것들이 있었기에 갖지 못해 슬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느날 아빠를 마중하러 나갔을 때, 나는 조그만한 장난감 자동차(핫휠 크기)를 들고 갔다. 아빠를 만나러 가는 길과 돌아오는 길에서 나는 입으로 슝슝 소리를 내며 바닥에 차를 굴렸다.

                    


가랏! 부메랑!!!! 달려!!!!



자동차를 굴리는데 방바닥도 아닌 울퉁불퉁한 바닥이었기에 1m도 굴러가지 못하는 자동차를 향해 입으로는 연신 '부아아앙!' 부스터를 쓰고 있었던 모습이 안쓰러웠던 것일까 엄마와 동생을 집으로 올려보내고 아빠는 나를 데리고 문방구로 가셨다.

정말 왜 갑자기 아빠는 집이 아닌 문방구를 가는지 의아했던 기억이 아직 난다. 아빠는 문방구 주인 아저씨에게 말하셨다.



저기...아이들 가지고 노는
미니카 하나 보여주세요!



띠용?!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거지?!

눈 앞에 거울이 있었다면 평소 별로 크지도 않던 내 눈이 왕방울 만하게 커진 것을 봤으리라.



달려라 부메랑 미니카 - [출처-나무위키]



당시 가장 인기가 많았던 것은 주인공이 쓰는 미니카 '부메랑'이었다.

"오..! 아저씨 부메랑이요! 부메랑!"

"그건 다 나가서 없는데… 이건 어때?!"



달려라 부메랑 미니카 - [출처-나무위키]



아… 저건 부메랑이 아닌데…

주인공 미니카가 아니라 옆에 있는 동료(우리들은 뚱땡이라고 불렀다)의 미니카 '불타는 태양'이었다. 





머뭇거리다가는 이런 다시없을 기회를 놓칠 것만 같았다. 그런 내 마음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내 입은 나도 모르는 새에 대답했다.



"오..! 그것도 멋있어요! 좋아요!"



아빠는 미니카를 사주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날아갈 것 같았다. 저녁을 먹고 조립해주신다는 아빠의 말씀에 가장 바른 자세로 저녁을 먹었다.

조립이 완성되었다. 어린 왕자를 알지도 못하는 나이었지만 나는 그때 이미 수많은 '다른'장미들과 '내' 장미를 바라보는 어린 왕자의 시선을 알았던 것 같다. 이제는 부메랑이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이 미니카가 내게 제일 소중했다. 



미니카에 이불을 덮어주며 같이 잠을 잤다.

다음날 미니카를 들고 문방구로 나갔다.

처음 굴려보는 것이라 복잡할 때 굴려보고 싶지 않았기에 최대한 사람이 없는 때를 기다렸다. 이를 위해 몇 번이나 집에 들어왔다가 트랙을 보러 다녀왔는지 모른다.

드디어 때가 왔고, 나는 미니카를 트랙에 올렸다.



만족스럽게 트랙을 두바퀴 도는 것을 확인하고 미니카를 잡기위해 손을 뻗었다. 

달리던 미니카가 손에 부딪히는 것은 예상외로 아팠고 나는 미니카를 놓쳤다.

그대로 미니카는 트랙을 벗어나 차도를 향해 비탈을 내달렸다.



빠각!




내 미니카는 그대로 차도로 굴러 갔다. 미니카를 밟은 차는 아무것도 느끼지도 못했는지 유유히 지나가고 나는 부서진 미니카를 손에 들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달려라 부메랑 미니카 - [출처-나무위키]



부서진 미니카를 안고, 너무 상심하여 엉엉 운 탓일까 아빠가 나가서 새로운 미니카를 사 오셨다.

불타는 태양에게 미안한 마음과 부메랑의 업그레이드 모델인 '슈퍼 부메랑'의 신기한 마음에 눈물이 쏙 들어갔다.



다음날 나는 미니카를 들고 트랙에 가지 않았다.

미니카가 생겨서 좋았지만, 아빠가 더 좋았다.



어릴적에는 으레 선물을 받을 수 있는 날이 정해져있었다.

생일 선물,  어린이 날 선물, 크리스마스 선물.



하지만, 아빠는 그 어떤 날에도 해당되지 않았는데 내게 선물을 주셨다. 심지어 받았던 선물을 내 잘못으로 망가뜨렸는데 다시 받았다는 것. 그 날은 내 삶에서 미니카보다 아빠의 사랑을 알게 된 날이었다.



나도 종종 무슨 날이 아니어도 아이에게 줄 선물을 산다. (비싼 선물은 아니다) 받고 웃음 짓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행복하다.



어린 시절 내게 선물을 사주시던 아빠의 마음이 이런 마음이었을까?

함박웃음을 지으며 선물을 받고 좋아하는 아이도 그 시절 나와 같을까?



사랑은 고이지 않는다.

사랑이 반드시 보답받는 것은 아니지만

받은 사랑은 다시 누군가에게로 흐른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사랑의 통로라는 것을 기억하며

사랑을 흘려보내는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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