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PD 입봉일기 #12
링크드인에 업로드 중인 예능 피디 입봉일기를 브런치에도 옮겨볼까 합니다.
대단한 성과가 나서 올리는 입봉일기면 좋겠지만 아직 과정 중에 있어요.
뿌듯한 감정 49, 두려운 감정 51 로 분투하는 햇병아리 리더의 생각 흐름을 보고
공감하거나 위로받을 팀장님들, 대표님들, 그리고 직장인 분들이 브런치에도 많을 것 같아서요.
*** 사진은 AI 로 작업합니다.
비용을 지키는 것은 어느 팀에게든 중요한 과제이지만, 저희 팀은 흑자 내는 것이 특히 더 중요한 목표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성도 낮은 콘텐츠가 나와도 되는 건 아니에요. 자전거 부품으로 벤츠를 만들라는 정도는 아니지만, 이 팀의 탄생 때부터 회사가 설정한 목표의 방점이 조금 다른 곳에 찍혀 있다는 건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결정을 할 때 비용을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비용 관리는 제법 자신 있는 쪽이에요. 특히 채널 피디면 막내 때부터 제작비 운용을 맡기 때문에, 프로젝트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비용 관리하는 것이 큰 역할이었습니다. 카메라 줄여야 한다, 출연료 넘칠 것 같다, 소품은 더 써도 된다, 라는 말을 선배에게 하는 입장이었고, 단 한 번도 제가 관리한 비용이 넘친 적은 없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단히 큰 스트레스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엔 “돈 벌어야 하는 팀”으로 세팅이 되어서 그런지, 비용 운용에 대한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습니다. 적어도 콘텐츠 퀄리티를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비용을 아껴 왔는데, 제작 외 부서로부터 가장 중요한 장비마저 줄이라는 권고를 받으니 영 적응이 되질 않네요. 선배들은 다들 이런 틈바구니에서 그래도 너네는 하고 싶은 거 하라고 말해줬던 걸까요? 역시 역지사지만한 게 없습니다. 메인 선배들 대단해요.
가끔은 비용 못 맞추면 프로젝트 엎어진다는 쓴소리에 힘이 빠지지만, 회의실로 돌아와서는 어떻게든 되게 해 보겠다 말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낯설 때가 있습니다. 메인 선배에게 이거 안 돼요, 이거 하셔야 해요, 하던 사람이 바로 나였는데 이거 참 어려운 거였구나. 선배들은 잔소리를 위아래로 듣고 있었던 거였어. 추가 인력 어떻게든 요청해 보겠다고 큰소리치다가 결국 비용 문제로 포기하게 된 며칠 전, 편집실로 돌아와 열심히 모니터 쳐다보는 후배들을 바라보며 쌩뚱맞게 아빠를 생각했습니다.
마치 온 세상이 적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어쩌면 사실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우리 팀에 정 붙이고 힘내주는 멋진 친구들이 있으니 그냥 가면 되겠죠. 우리끼리라도 재밌게 프로그램 하면 되는 거라며, 힘들어도 묵묵히 일하고 열심히 의견 내주는 팀원들이 있으니 이런 스트레스도 극복할 수 있나 봅니다.
지금은 봉지라면과 한솥을 먹지만 마지막 회 입고하고 나면 다 같이 고기라도 먹고 싶네요. 또 아빠가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