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쉬지 않고도 쉬고 싶어

예능 PD 입봉일기 #13

by 희제


링크드인에 업로드 중인 예능 피디 입봉일기를 브런치에도 옮겨볼까 합니다.

대단한 성과가 나서 올리는 입봉일기면 좋겠지만 아직 과정 중에 있어요.

뿌듯한 감정 49, 두려운 감정 51 로 분투하는 햇병아리 리더의 생각 흐름을 보고

공감하거나 위로받을 팀장님들, 대표님들, 그리고 직장인 분들이 브런치에도 많을 것 같아서요.

*** 사진은 AI 로 작업합니다.




오늘이 휴일이라는 글을 보고서야 오늘이 휴일인 줄을 알았습니다. 아니 시월 초에 이렇게 휴일이 많았던가요? 크리스마스 전 마지막 빨간 날이라던데. 황금 같은 휴일이 끝나가는 마당에 이런 반응을 하는 것은 수많은 직장인들께 실례겠지만, 솔직히 놀랐습니다.


사실 딱히 억울하진 않아요. 몸이 쉬어도 어차피 머릿속은 온통 일일 것이 분명하거든요. 프로그램을 책임지는 입장이 되니 지하철에서도, 꿈에서도, 샤워할 때에도 일 생각을 합니다. 머릿속으로 그림을 붙이고 촬영을 준비하고, 디자인을 체크하고 비용을 확인하는 하루하루. 누군가에게 해야 할 연락과 결정해야 할 체크리스트를 클리어하고, 몇 시까지 어느 구다리를 만질지 계획한 다음 회의와 보고를 쳐 내다보면, 머릿속이 거미줄처럼 엉키더라도 계속 생각해야만 다음 일로 넘어갈 수가 있게 됩니다.


그러던 지난 개천절. 휴일을 지키는 안깥양반이 출근하는 저를 차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멍하니 창 밖을 보며 머리편집을 하고 있자니, 또 일 생각을 하냐며 라디오 볼륨을 높여 주더라고요.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는 일 생각하지 않기를 목표하고 출발했는데, 결국 라디오 내용은 단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일에 매몰되는 사람은 메인 하기가 어려운가 봐, 했더니 한 후배가 그러더라고요. 생각 좀 그만하라고. 가끔 과감히 끊고 딴짓도 해야 더 재밌는 생각도 난다고. 그래서 오늘은 시사 끝나자마자 집에 가서 저녁을 먹겠다고 선언했는데, 시계를 보니 벌써 열 시길래 약이 올라서 링크드인을 열었습니다. 글이라도 올려야 만족할 것 같아서요. 매번 이렇게 일에 잠겨있는 것이 괴롭지는 않아 다행이지만, 균형이 좀 잘못됐다는 느낌은 분명합니다.


링크드인의 어떤 분이 그러더라고요. 호떡집에 가서 8천 원어치를 먹었는데 사장님이 만 원짜리 두 장을 꺼내어 아이들에게 용돈으로 주셨다며, “성공은 꾸준히 자기 일을 밀고 나가서 남들과 나눌 수 있는 마음의 경지에 다다르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연차가 쌓이는 속도보다 균형을 잡게 되는 속도는 현저히 느린 것 같지만(오히려 거꾸로 가는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조금이나마 노력을 하다 보면 저도 어떠한 마음의 경지에 이르지 않을까요? 머릿속을 거미줄로 만들지 않고도, 라디오를 듣고 글을 쓰고 가족과 친구들을 야무지게 챙기면서 일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진 않을까요? 궁금해지는 한글날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고기 먹는 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