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PD 입봉일기 #16
링크드인의 예능 피디 입봉일기를 브런치에도 옮겨둡니다.
브런치를 읽는 팀장님들, 대표님들, 그리고 직장인 분들이 조금이나마 공감하거나 위로받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은 AI 로 작업합니다.
팀장은 이렇게 하는 거란다, 하고 알려주는 과외 선생님은 없는 것처럼, 마스터는 이렇게 하는 거란다, 하고 알려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새 메인이 생기는 수만큼 새로운 마스터 방법이 생기는 것이 현실 같아요. 그래도 펼쳐진 소스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가편보다는 수월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렇게 생각했던 과거의 저를 찾아가 코를 때려주고 싶습니다.
특히 2회는 참 길고도 긴 마스터였어요. 난생 처음 해보는 일은 오히려 부딪치기 쉬운 법인지, 1회 마스터 때는 별 사건 없이 한 땀 한 땀 고치기만 하면 됐거든요. 가편에 참여를 해서 그런지, 아니면 시사 직후 후배들 옆에 붙어 앉아 수정사항을 하나하나 논의했어서 그런지, 내용 자체를 뒤집을 부분은 많지 않았습니다. 꼬박 일주일 정도 투자하니 제법 정리 잘 됐다는 피드백이 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2회는 암담하더라고요. 이렇게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 부끄럽지만, 생각보다 촬영이 잘 안 된 탓에(네… 촬영이 잘 안 된 것의 최종 책임자는 누가 뭐래도 메인 피디입니다…) 가편하는 피디 후배들도 감을 잡기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시사 직후 아무 말이 없던 몇 초의 시간, 이어서 나온 어떡하지, 라는 작가팀 반응을 잊을 수가 없네요. 촬영본 다시 뜯어보고 수정할 내용 흐름 잡고, 편집본 재배치한 다음 오디오 정리 후 자막 톤을 다듬는 하염없는 과정들. 무려 90분 가까이 되는 분량을 끌어안고 매만지기에, 초보자의 마스터 속도는 한없이 느렸습니다. 암담했던 반응을 볼만하다, 따뜻해졌다, 재밌네, 라는 피드백으로 마무리하기까지 2주가 넘는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어떻게든 더 고쳐서 주겠다며 마스터룸 문이 닳도록 왔다 갔다 하던 후배들과, 그 후배들이 겨우겨우 쌓아 올린 탑이 무너지지 않도록 풀칠한 마스터의 합작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돌이켜보면 모든 건, 결국 정성으로 귀결됩니다. 편집은 더더욱 그래요. 얼핏 대단히 창의적인 아티스트의 영역 같지만, (특히 예능은) 가장 보편적 정서의 대중이 소비하는 콘텐츠이기 때문에, 이해하기 쉬운 스토리 라인을 잡고 공감하고픈 캐릭터를 다듬는, 정리의 과정에 가깝습니다. 어느 분야나 그렇듯 날아다니는 천재도 있지만 극소수거든요. 그러니 가편이든 마스터든, 결국 애정을 갖고 정성을 쏟는 것이 정도라고 봅니다.
아 물론… 1회와 2회 모두 결과물이 백 프로 마음에 들진 않아요. (본인이 만든 결과물이 백 프로 마음에 드는 피디가 있을지 의문이네요!) 그렇지만 주어진 시간 안에 쏟을 수 있는 정성은 모두 담았으니 보내줘야겠죠? 점점 촉박해지는 시간 속에서 다듬어야 할 마지막 회가 남아 있으니, 이제 다시 숨 참고 마지막 레이스를 달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