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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은 운동 같아서 - 3회 종편 이야기

예능 PD 입봉일기 #18

by 희제

링크드인의 예능 피디 입봉일기를 브런치에도 옮겨둡니다.

브런치를 읽는 팀장님들, 대표님들, 그리고 직장인 분들이 조금이나마 공감하거나 위로받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은 AI 로 작업합니다.




요즘 사주에서는 작품도 자식으로 해석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조금 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아이 낳는 힘든 일과 동일시할 수 있을까? 마지막 회를 마무리한 지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3회 마스터 기간을 포함한 마지막 순간들, 정말 힘들었거든요.


모든 문제는 일정이 꼬이면서 벌어졌습니다. 저렴하다는 이유로 선택한 종편실이 색을 전혀 잡지 못했고, 수정을 걸다 보니 이미 끝났어야 할 1회를 3회 마스터 기간까지 쥐고 있게 됐습니다. 매주 방송이 있으면 어떻게든 한 회 두 회 끝내면서 갈 텐데. 사전 입고 형식이라 조금 방심했던 탓도 있을 겁니다. 가편까지 잘 마무리했으니 종편만 잘하면 되지, 하고 종편을 가볍게 생각한 탓도 있을 거예요.


흔히 종편이라 말하는 후반 작업은 그림의 색을 잡고 CG와 자막을 올린 후, 음악 & 효과와 함께 믹싱까지 하는 마무리의 총체입니다. 종편실에서 비디오를, 믹싱실에서 오디오를 마무리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저희는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CG도 최소화하고 자막도 피디들이 직접 폼을 만들어 넣었으니 종편실의 능력치에 크게 좌우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후반 작업은 정말이지… 대작업이었습니다. 일단 첫째로, 자막팀이 쳐 주던 자막을 피디가 직접 만들다 보니 작업량이 어마어마했어요. 편집한 피디들끼리 최대한 맞출 수 있도록 규칙을 공지했는데도, 각자의 스타일이 묻어나는 바람에 7~80분 정도 되는 분량의 자막 폼과 색깔, 크기, 위치 등을 막내 둘과 함께 한 땀 한 땀 맞춰야 했습니다. 둘째로, 색 작업이 이렇게 어려운지 몰랐어요. 어쩌면 처음 컨택한 종편실의 능력치가 심하게 떨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한 공간에서의 색깔도 컷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자니 참 답답했습니다. 결국 종편실을 한번 바꾸고 나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음악 감독이 없으니 피디들이 음악을 다 깔아야 했던 것처럼, 효과 감독도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기본 효과라도 열심히 입혀야 했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촘촘히 깔 수가 없어서 겨우 기본만 만들어 갔는데. 다행히 자애로운 (ㅜㅜ) 믹싱 감독님이 효과를 찰떡같이 서비스 삼아 깔아 주셔서 겨우 시간을 벌었다는 비하인드도 있습니다. 결국 좋은 종편실 한 곳, 좋은 믹싱실 한 곳을 알았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요.


촬영 현장에서의 감독님들만큼이나 후반 작업의 감독님들 능력치도 중요하다는 걸, 한 명의 가편 피디로 제 편집 구다리만 책임질 때는 미처 몰랐다는 사실이 꽤나 부끄러운 마지막 한 달이었습니다. 덕분에 까먹은 시간이 너무 많아서 3회 마스터는 잠을 깎아 가며 마무리했고, CP 선배가 3회 가장 재밌다며 기특하다는 카톡을 보내왔을 때는 조금 울 뻔했던 것 같아요. 선배 지금 효과 보셔야 해요, 선배 OAP 확인해 주셔야 해요, 선배 이제 QC 하셔야 해요, 라며 일정 착착 잡아주고, 알아서 블러치고 확인하고 뽑아서 입고하던 똘똘한 막내 둘이 없었다면 이 프로그램은 아마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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