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피디 방학일기 #13
싫어하는 여행 요소가 몇 가지 있습니다. 쇼핑, 사진 찍히기, 디저트 집 가기. 이번엔 이 세 가지를 전부 했어요. 그것도 아주 많이. 아울렛에서 반나절의 시간을 썼고,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모이는 스팟에 끼어 사진을 찍고, 크레페 집에 찾아갔습니다. 모두 동행 때문이에요.
오랜 여행 메이트인 동행은 성향이 저와 아주 다릅니다. 제가 할 일 목록을 하나하나 보며 움직일 때, 갑자기 오! 탄성을 질러요. 그럼 그걸 해야 합니다. 그 오! 는 절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아서, 오! 들을 따라 얼결에 움직이다 보면 하루가 끝나 있어요.
크레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점심은 가볍게 숙소 근처에서 해결하고, 저녁땐 미리 찾아둔 돼지고기 요리를 먹으러 가기로 했거든요. 그런데 그날 아침, 동행의 오! 소리에 깨어났습니다. 지도에서 발견했는데 여긴 가야 한대요. 달달한 디저트뿐 아니라 식사 대용 크레페도 있다면서 저를 꼬드겼습니다.
계획형 인간이지만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는 흥미형 인간인 저는 결국 따라갔어요. 언덕을 오르고 계단을 올라 20분을 걸어 찾아간 그곳에서, 저는 크레페와 인생 어니언 수프를 먹었습니다. 아일랜드 출신 주인아저씨의 유쾌하면서 세심한 환대 덕에 기분은 두 배로 좋아졌고, 저는 네 말 듣길 잘했다는 찬사를 동행에게 늘어놓으며 와인까지 한 잔 마셨습니다.
어쩌면,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익숙하지 않은 것뿐인지도 몰라요. 새로운 경험을 좋아한다고 하면서 익숙하지 않은 것에 선을 긋는 건 모순일 거고요. 익숙함에서 벗어나려 여행을 가놓고 개중 가장 익숙한 것을 찾아다니려 하다니. 크레페 집에서 나와 다음 목적지를 향해 가다가, 어떤 도서관에 들어가 퍼즐을 한 시간 맞추고 나와서는, 결국 저녁을 스킵하고 숙소에 들어갔지만 참 좋았습니다. 훌륭한 여행 메이트는 나와 똑같은 사람이 아니라 계속 새로운 시선을 주는 사람 아닐까요? 어쩌면 훌륭한 동료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잠든 밤이었습니다.
익숙함에서 벗어나기에 관한 글을 읽고 갈무리
40살에 직업 바꿨다고 불안해? 나도 42살인가 새로운 직업을 가졌거든. 정말 불안하고 아직 갈길이 먼 거 같아. 솔직히 불안하지. 내가 지금 이 나이에 맞나? 싶고. 늦었다는 생각, 귀신같이 찾아오잖아. 근데 말이야. 그 불안이 비정상인 게 아냐. 지극히 정상이야.
생각해 봐. 뇌과학자들이 말하길, 익숙한 것에서 벗어날 때 우리 뇌는 생존 위협으로 인식한대. 그러니까 불안감은 "너 지금 새로운 거 하고 있구나!" 하는 신호인 거지. 새로운 길에 들어섰다는 증거. 2024년 갤럽 조사 결과 보니까 40대 경력 전환자가 20대보다 “새 일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결과도 있어. 속도의 문제가 아니야. 방향의 문제지.
불안하면, 불안한 대로 해. 불안을 연료로 쓰는 거야. 늦은 게 아니라,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용기를 낸 당신이 멋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