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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제 Aug 28. 2021

당신은 정말 똑똑한가요

두도막 컨텍스트 #6 포노 사피엔스로 멸종하지 않으려면



아 Analog 문자답 : 땡스 투 카카오맵

디지털 도구 큐레이션



시국이 이런데도 여름휴가를 다녀온 이유는 딱 하나다. 미리 예약한 숙소의 취소 수수료가 70 퍼센트나 되었기 때문. 4인 제한이 곧 풀릴 거라는 기대감에 서핑을 배워보자며 예약한 양양 숙소였다. 강원도마저 4단계로 격상되면서 서핑은커녕 해수욕장 근처에도 못 가 봤지만, 대신 무척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름하여 거북이 서프바. 서핑을 가르쳐주기도 한다는 서퍼들의 둥지에 앉아, 우리는 보드 대신 리듬을 타며 맥주를 마셨다.


거북이 서프바의 테라스. 바다에 못 들어가는 아쉬움을 이 뷰가 날려 주었다.
해물이 잔뜩 들어간 로제 떡볶이는 무조건 먹어야 한다.


성공적이었던 건 거북이 서프바뿐이 아니었다. 찾아간 모든 곳의 음식이 훌륭하고 가성비도 좋아서, 이렇게 실패가 없어도 되는 것인지 괜한 걱정을 할 정도였으니까. (맛집 소개 글처럼 될까 걱정이지만... 괜찮은 경험은 공유해야 제맛이므로 아래에 사진을 몇 장 실어보기로 한다.)


양양 봉화당. 이렇게 쫄깃한 치아바타는 처음이었다. 플레인 러버라면 방문 필수.
양양 가는 길. 여주쯤 가서 들렀던 인도카레. 인도 전통 의학을 공부하다 오신 사장님이 좋은 재료로만 운영하신다.




무엇이 이번 여행의 훌륭한 선택을 만들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성공의 영광은 카카오맵에게 돌려야 할 것 같았다. 모든 밥집을 카카오맵 별점에 의지해 선택했고, 결과적으로 네이버나 인스타그램으로 검색했을 때보다 훨씬 성공률이 높았으니까.


도구에도 성격이 있다.


검색 플랫폼들의 성격은 각각 다르다. 모이는 사람들의 성향에 따라 플랫폼의 성격이 달라지는 것인지, 애초에 특정 기능이 세팅되어 있어서 유사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플랫폼이라는 도구의 성격이 제각각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예를 들어 보자. 인스타그램은 예쁘고 팬시한 비주얼을 중시하지만 카카오맵은 보편적 경험의 질에 집중한다. 트위터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의 정보를 빠르게 실어 나르는 반면, 네이버 블로그는 이미 검증된 맛의 안정성을 높이 평가한다.


나의 경우 음식 자체의 맛보다는 기분 좋은 경험을 선호하기 때문에, 성실하지 못한 응대라든지 대기가 길다는 평을 잘 걸러내기 위해 카카오맵을 즐겨 사용한다. 나의 성격에 딱 들어맞는 검색 플랫폼을 사용했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았던 것이다.


이들에게도 MBTI 가 있을 수 있다.


이런 '성격'은 검색 플랫폼이나 소셜 미디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용 방식에 있어 비교적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어플리케이션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수백수천 개의 어플리케이션 중 어떤 것을 선택하여 사용하느냐가 그 사람의 디지털 성향을 나타내고, 그것은 자연스레 실제 생활 습관으로도 이어져서 한 사람의 자아 형성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스마트폰을 사용한다고 해서 전부 스마트 해지는 것이 아니듯, 스마트하다고 해서 다 같은 종류의 스마트함인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디지털 도구 연동하기


스마트 인류에 가까워지려면 디지털 도구를 실제 삶에 정교히 연동시켜야 한다. 사용할 어플을 선택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성향이나 생활 습관부터 파악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것은 내게 맞는 직업이나 연인을 찾는 과정과도 같아서, 오랜 기간 공을 들여야 하는 중요한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무분별한 디지털 도구 이용은 스스로를 길 잃은 디지털 좀비로 만들기 십상이니까.


나는 주로 자가학습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디지털 도구를 사용한다. 여가 시간을 온통 휴식으로 채울 때보다 (1) 무언가를 꾸준히 배울 때 훨씬 에너지가 충전되는 편인데다가 (2) 기본적으로 내향인이기 때문에 사람들과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같은 목적을 향해 갈 수 있는 도구가 적합한 것이다. 어쩌면 요즘 흔히 말하는 '좋은 기업'의 개념과 유사할 수도 있다. 내 삶의 방향성과 맥을 같이 하는 버스의 느낌이니까. 목표에 대한 열정과 계획은 있으나 의지가 부족한 사람들을 살짜쿵 끌어당겨주는 장치 말이다.


첫 번째 추천 : 리더스


이런 도구들 중 가장 애정 하며 사용 중인 건 리더스다. 책을 함께 읽는 온라인 북클럽. 내가 가장 좋아하는 포인트는 특정 주제에 관한 책을 서너 권 함께 읽는다는 점이다. 책이라는 미디어가 갖는 최고의 장점은 입체감 아닌가. 동일한 주제의 책을 연이어 읽게 되니 입체감은 더욱 확장되고, 한 권의 책을 완독 할 때마다 에세이를 써야 하므로 새로 얻은 시각을 갈무리할 수도 있다.


사실 나에겐 책을 한 권 읽고 나면 반드시 정리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읽는 시간보다 정리하는 기간이 더 오래 걸리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부채감에 지쳐 좀처럼 완독을 하지 못한다. 그런 내게 리더스의 형광펜 기능이 반가웠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책을 촬영하여 형광펜으로 줄을 긋고, 거기에 짤막한 생각을 더하여 피드에 올리는 심플한 방식 덕분에 시원하게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나는 리더스를 또 하나의 소소한 SNS라고 생각한다. 북클럽 멤버들의 존재 덕분에 스스로 강제성을 부여함으로써 탄력을 받을 수 있는 반면, 오직 책으로 모인 사람들이라 의견 개진에 눈치 볼 필요 없는 것이 좋다.


리더스 홈페이지 메인. 사실 방식 자체가 완전히 새롭진 않다. 하지만 나의 변화는 완전히 새롭다. 


두 번째 추천 : 링글


리더스가 SNS에 가까운 북클럽이라면, 링글은 따로 또 같이의 균형이 아주 조화로운 영어 말하기 플랫폼이다. 스피킹 실력 향상에 대한 니즈는 항상 있어왔지만 카페에서 언어교환 수업을 하던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만 하던 나.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의 유행 덕에 온라인 수업에 대한 내 마음속 장벽도 많이 낮아졌고, 선뜻 링글 수업을 결제할 수 있었다.


사실 나와 성격이 맞고, 적절한 교정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관심사(대화 주제에 대한 전문성)가 잘 맞는 튜터를 찾는 건 하늘의 별 따기와도 같다. 링글은 상당한 튜터 풀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수많은 사용자들이 남긴 리뷰를 참고할 수 있기 때문에, 맞춤형 수업을 스스로 설계하는 것이 가능하다.


예습 - 수업 - 복습 구조의 체계가 잘 잡혀있는 것도 한 가지 추천 이유다. 수업 전엔 관심 있는 교재를 선택하여 문장과 단어를 학습할 수 있는데, 이 교재가 시사 교양 전반을 아우를뿐더러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기 때문에 새로운 지식이나 관점을 습득하기에도 좋다. 수업 중엔 구글 닥스를 이용함으로써 튜터와 면밀히 교류할 수 있고, 종료 후엔 피드백 문서는 물론 복습용 녹음본도 제공해주기 때문에 나의 음성을 들으며 자가진단을 할 수 있다. 나의 경우 에버노트에 수업별 문서를 만들어 예습을 하고, 복습은 출퇴근길 버스 안에서 하는 편이다. 특히 녹음본 속 나의 대답을 들은 후 (한숨을 한 번 쉬고는) 그 대답을 다시 만들어 보는 연습이 꽤나 도움이 되고 있다.


링글을 하다 보면 한국어로도 생각 정리를 더 잘할 수 있게 된다. 그동안 얼마나 생각 없이 말을 내뱉었는지 알 수 있게 됨...


세 번째 추천 : 런데이


마지막으로 추천할 런데이는 사람과 기기의 커뮤니케이션이 최적화된 케이스라고 소개하고 싶다. 오늘의 달리기를 선택하면 이어폰을 통해 음악과 힘찬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사용자는 그 목소리가 주는 달콤한 당근을 받아먹으며 달리기만 하면 되니까. 솔직히 러닝머신과 달리 야외 달리기는 마음먹기부터 어렵지 않나. 나도 러닝 메이트가 있던 5년 전 이후로는 엄두를 내지 못했었는데, 런데이 덕분에 다시 달리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유명한 프로그램은 30분 달리기 트레이닝으로, 7주에 걸쳐 조금씩 달리는 시간을 늘려나갈 수 있다. 사진에 달린 거리 등 나의 기록을 입힐 수 있는 기능도 있기 때문에 SNS에 갈무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나는 나만 볼 수 있는 인스타그램 계정에 이 사진을 올리고, 당일 달리기 중 느낀 점을 적어두고 있다. 그러면 달리기와 달리기 사이에 공백이 생기더라도 다시 예전 기억들을 복기한 뒤 재개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런데이 홍보 영상 중에서. 가을엔 달려야 한다.




시간의 밀도


좋은 습관이 나를 만든다는 말은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하다. 하지만 혼자서 계획을 세우고 또 세워봐야 금방 무너지기 마련이라는 것도 대부분의 사람은 안다. 여느 때보다 훨씬 길어진 글을 통해 하고 싶었더 말은, 도구의 도움받기를 주저하지 말자는 것이다.


위에서 소개한 도구들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난 시간의 밀도가 무척 높아졌다고 느낀다. 언제나 계획만 으리으리하게 짜 두고는 따라가지 못해 허덕이던 나였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노력 그 자체에 쏟을 시간도 부족했던 거였다. 의지를 다지는 데에만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가 들어간다는 말도 있지 않나. 스스로와 싸우고 버티는 데에 쓸 에너지를 아낄 수 있도록, 목표를 향해 나갈 수 있는 길을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만들 수 있도록 도구를 똑똑하게 사용하면 좋겠다.




디 Digital 문자답 : <소셜 딜레마>

도구지만 도구가 아닌



연결이 늘어날수록 더욱 스마트해진다. 


역사적으로 보면 맞는 말이다. 100년 전이나 1000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들이 전 세계가 연결되면서 일어나기 시작했으니까. 촘촘한 커넥션으로부터 비롯된 빅데이터는 이 연결을 더욱 미세하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나라는 인간이 거대한 세계의 작은 실험체가 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개인정보가 공용정보로 탈바꿈한 지는 오래이고, 알고리즘이 나의 취향을 정확히 꿰뚫는 것은 물론, 큐알 인증으로 동선마저 추적되는 요즘이니까. 왓챠가 추천해 주는 영화가 반가웠던 것도 잠시, 얼마 전 크롬에서 검색했던 백팩 브랜드의 광고가 내 인스타그램 피드를 도배하는 순간, 다시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소셜 딜레마>는 바로 이 점에 대해 말한다. 다큐멘터리와 드라마가 결합된 혼합 장르로, 구글, 트위터, 페이스북, 핀터레스트를 이끌던 사람들의 인터뷰가 메인 스트림을 이루는 한편, 거대 컴퓨터에 의해 아바타처럼 조종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드라마 형식으로 중간중간 보인다.


드라마 속에는 세 명의 인간으로 의인화된 거대 컴퓨터 시스템이 등장한다. 이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사용자가 SNS 상에 머물도록 하고 적절한 광고와 알림을 띄움으로써 목표를 달성하는데, 이 일련의 과정 속에 사용자의 삶을 위하는 고민은 단 1그램도 없다.


거대 컴퓨터 시스템이 한 인간을 아바타처럼 조종한다. 다름 아닌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상품의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네가 상품이다.


한 인터뷰어는 "왜 그들이 돈을 벌까요?" 라고 질문한다. 아무런 이득 없이 서비스를 제공할 봉사자는 없다는 말을 하고픈 것이다. 사용료를 지불하지도 않는 사용자를 모으는 이유는 그들을 이용해 광고료를 벌겠다는 뜻인데, 우린 이걸 머리로는 짐작하면서 스스로가 재산이자 상품이라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한다.




사실 나는 알고리즘에 의해 뜨는 것들을 즐겨 보는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유튜브의 자동 추천을 보다 보면 시간을 버린 느낌이라 의식적으로 피하곤 했으니까. 그러나 돌이켜 보면 에너지가 소진된 밤 시간대라든지, 업무가 힘든 기간이라든지, 의지가 고갈된 시점엔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설사 즐거움을 느끼며 보는 것이 아닐지라도, 아무것도 하기 싫을 정도로 지친 순간이 되면 눈을 반쯤 뜬 채 알고리즘에 나를 맡기곤 했다.


어른도 이럴진대 아이들은 오죽할까. 중학생 때 스마트폰을 접한 제트 세대는 정체성 확립 시기에 규제 없는 소셜 미디어를 만난다고 한다. 이것은 10대 자살률과 무관하지 않으며,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으려는 경향성 때문에 운전면허 취득률마저 하락 중이다.


비단 아이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영리 기업에 의한 소셜 미디어 시스템은 무분별한 광고와 정보를 강력한 규제 없이 제공한다. 때문에 가짜 뉴스를 막을 길도, 그것을 아무 의심 없이 취하는 사람들을 막을 방법도 없다. 이런 가짜 뉴스들은 역사상 가장 분열된 시대를 만들었고 (특히 미국을 대표하는 두 정당 지지자들의 간극은 유례없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는 오프라인에서도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문제는 SNS 그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해 발현된 사회의 어두운 면이다. 디자인 윤리학자 트리스탄 해리스.


78 억 개의 트루먼 쇼


개인의 특성에 따라 보이는 피드가 달라진다는 사실은 이제 모두가 안다. 그러나 이로 인해 한 개인이 접하는 사실이나 개념마저 달라진다는 건 적잖은 충격이었다. 소셜 미디어가 이끌어가는 방향대로 세상을 해석하다 보면 결국 그 의도대로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소셜 미디어>는 SNS를 결코 도구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도구에겐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자전거나 인쇄기 같은 '도구'는 사람이 사용하지 않을 땐 아무런 작용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지만, 소셜 미디어는 사용자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겠다는 목적을 갖고 계속해서 움직인다.


사용자에 따라 연관 검색어까지 달라진다는 설명. 각자에겐 각각의 현실과 사실이 있다.




내겐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꿈이 하나 있다. 시간을 잘 사용할 수 있는 건강한 플랫폼을 만드는 것. 그곳에서 퀄리티 좋은 영상을 접하며 사용자들이 즐겁고 건강한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 그런데 이렇게까지 소셜 미디어가 무서운 존재였다니, 전부 헛된 꿈이고 이상이었던 것만 같다.


위에선 디지털 도구로서의 SNS를 소개했기 때문에 조금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 인간은 거대 시스템과 공존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는 말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SNS는 결코 평범한 도구가 아님을 인지하고, 그것을 나만의 훌륭한 도구로 이용하는 방법. 우리를 통제하는 시스템 큐레이팅에 몸을 맡기지 않고 좋은 걸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훈련. 무슨 수를 써도 인간은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갈 수 없으므로, 이건 우리 포노 사피엔스가 스스로 감내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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