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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제 Sep 05. 2021

중문을 닫아봅니다

두도막 컨텍스트 #7 에필로그


28일간의 휴가가 끝났다. 이미 3주쯤 된 일이다. 장마 같은 비에 잦아드는 여름처럼 아쉬워하며, 회사로 복귀해 새 프로그램을 한창 만드는 중이다. 솔직히 말하면 무척 정신이 없다. 첫 촬영이 코앞인 시기에 합류했기 때문에. 이틀인 주말이 하루가 되고 점차 그 주말마저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마무리만큼은 꼭 해야겠다고 몇 번을 생각했다. 퇴근을 못 할 정도로 바빠지기 전에 말이다.




결국 나의 이야기


28일간의 휴가 브런치를 시작할 무렵, 적어나갈 글의 주제를 엑셀로 정리해 두었더랬다. 목록을 만들고 보니 대부분 나에 대한 이야기여서 어찌나 걱정되던지. 하지만 나는 숙련된 작가도 아닐뿐더러 대한민국의 작은 직장인 1로써 가장 잘 쓸 수 있는 건 바로 "내 얘기" 였다. 결국 세상은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니 진정성만큼은 놓치지 않을 수 있겠지. 게다가 최근 읽거나 본 콘텐츠의 시각을 덧붙이니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기에도 좋았다.


그렇게 쓴 글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까지 포함하면) 일곱 개다. 하루는 초고 쓰고 하루는 업로드하는 식으로 15개 정도 쓸 계획이었는데. 사실상 나흘에 한 개 정도 쓴 셈이니 이쯤에서 만족하기로 한다.


고백하자면, 글 한 편을 쓰는 데엔 예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휘리릭 써 내려가는 일기와는 느낌 자체가 달랐다. 나만 보는 글은 맞춤법이 틀리거나 비문이 섞이는 듯해도 그냥 마침표를 찍으면 그만 아닌가. 순간의 감정이 잘 녹아있기만 하다면 언제 읽든 그날을 회상하는 데에 무리가 없다. 그래서 ㅋㅋ 같은 메신저용 자음들은 물론, 간단한 이모티콘들을 기분에 따라 마음대로 배치했고, 한 문단 안에서 흐름이 마구 바뀌어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달랐다. 내 브런치가 수많은 분들이 찾아주시는 곳은 아니지만, 존재할 지도 모르는 독자를 위해 "읽을 만한" 글을 만들어야 했다. 적어도 내 글을 읽고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면 안 될 것 아닌가.


장담하건대, 글 한 편을 만들어내는 데에 정말 많은 공을 들였다. 먼저 "두 도막"이라는 형식에 맞게 주제를 정하고, 그에 어울리는 아문자답 & 디문자답의 제재를 찾았다. 글 전체를 관통하는 흐름을 설정한 뒤 뼈대를 완성하고는, 글을 다듬으면서 중간중간 배치할 사진도 신경 써서 골랐다. 가장 집중이 잘 되는 시간을 선택해 쓰고 또 쓰고. 막히면 잠시 접어둔 채 다음날 또 고치고. 잘못된 개념이나 틀린 맞춤법이 있을까 봐 마지막 순간까지 수정도 참 열심히 했다.


새벽 시간에 한참을 앉아 모니터만 쳐다보기도 했고 생각보다 글이 술술 나와 즐거운 순간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글을 한 편 쓴다는 건 오랜 인고의 시간을 수반했다. 그 과정은 방송을 편집할 때 겪는 수많은 고뇌와 무척 닮아 있어서, 왜 휴가 기간에까지 사서 고생을 하나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글을 발행하는 그 순간이 좋아서, 한 가지 매듭을 지었다는 그 성취감이 좋아서, 두서없던 생각들이 하나로 정리되었다는 뿌듯함이 좋아서, 노력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글의 초안을 만든 앤트러사이트. 안 그래도 친했던 커피와 더 친해졌다.


더구나 너무 감사하게도 여기까지 찾아와 글을 읽고 댓글이나 라이킷으로 흔적을 남겨 주시는 분들이 계셨다. 사실 어떻게 찾아오시는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나는 내 피드에 있는 글만 읽게 되던데. 새 글이 어딘가에 뜨고, 그걸 기꺼이 읽어주시는 거라 추측한다면, 그것은 또 그 나름대로 감사할 일이다. 보장되지 않은 사람의 글에 기꺼이 시간을 투자해 주시는 여유란. 그 소중한 한 분 한 분께 감사의 말씀을 일일이 전하고 싶은 심정이다.


작고 소중한 방문 기록. 작고 소중하다는 표현의 의미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진짜다


사실 브런치 작가로서의 계획은 아주 예전부터 세워 왔었다. 작가 신청 시도도 두 번째이고, 되고 나서도 몇 달이 지났으니까. 십 년 넘게 적어온 방대한 양의 일기와 사진을 앞에 둔 채, 이걸 어떻게 갈무리할지 생각만 하염없이 했었더랬다.


돌이켜 보면 과거를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현재를 기록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되는 건데. 모든 일의 시작은 "시작" 그 자체인 건데. 덜컥 뛰어들고 보니 그다음 스텝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무척 고무적이다. 앞으로 만들어 나갈 매거진 카테고리를 만든 것만 해도 엄청난 성공 아닌가. 조금 느리더라도 꾸준히 글을 쓰다 보면 이 브런치도 차츰 다채로워질 거라고 생각한다.




28일의 휴가는 끝이 났지만, 두도막 컨텍스트라는 이름으로 계속 이 형식은 지켜갈 생각이다. 처음 만들었던 목록의 반 정도를 썼지만 주제의 목록은 오히려 늘어났거든. 방송이 코앞이기 때문에 오래도록 고민하는 시간을 자주 가지긴 힘들겠지만, 짤막한 예능제작일기(새로 시작한 매거진입니다)를 적는 틈틈이 작가의 서랍을 채워보려 한다. 그러다 보면 다음 휴가가 찾아올 거고, 또다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적어나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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