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28 토요일 - 하루 종일 받기만 한 날의 기록
학원과 독서실이 빼곡한 옆 동네로 떡볶이 맛집을 찾아갔다. 지도를 보고 골목을 더듬어 도착한 그 곳엔 무척 오래된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점심 시간을 조금 넘겼던가.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 두 명이 한 테이블, 비슷해 보이는 남자아이 두 명이 한 테이블에 앉아 떡볶이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게임 방송이라도 보는 것인지, 폰 화면에 눈을 박은 채 밥까지 볶아 야무지게 먹는 남자아이들. 주인 할머니는 계란 하나를 툭 까넣어 볶아주다가 안부를 물었다. 학생들은 익숙한 듯 밝게 웃으며 근황을 이야기했다.
재잘거리는 여학생들의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나도 저맘때 저렇게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했었나? 친구 이야기, 연애 이야기, 그리고 내신과 수능 이야기로 이어지는 흔한 십대 토크였지만, 그 속에 담긴 감정과 서사는 여느 드라마 못지않았다. 햇볕이 밝게 드는 창가 자리에서 아주 한참동안 인생 고민에 잠겨 있던 둘. 어느새 학원 시간이 되었는지 호다닥 가방을 챙겨 나갔다. 계산을 하고선 멀어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주인 할머니와 아저씨는 아이구 저 키 큰 것 봐, 꼬맹이 때부터 오더니, 하셨다.
주인 할머니와 아드님은 오래 전부터 이 곳에 계셨다고 한다. 알고보니 우리 동네 주민이었던 두 분께, 자주 오마고 인사를 하고는 배를 동동 두드리며 문을 나섰다. 떡볶이도 따뜻함도 잔뜩 주는 곳이니 이렇게 오래도록 한 자리에 머무는 거겠지.
얼굴 보자는 이야기를 30번쯤 나눈 동친을 드디어 만났다. 지난 겨울쯤 이사를 왔으니 계절이 한 번 바뀌고서야 만난 셈이다. 동친이니까 우리 동네에서 가고싶던 곳을 가볼까? 전부터 보아 둔 밀크티 집을 찾아갔다.
사장님은 밀크티로 세상을 밝히러 온 듯했다. 이 좋은 밀크티를 모두에게 권하겠다는 일종의 사명감이랄까.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으니 마음껏 시음해 보라며, 우리에게 각각 여섯 잔의 밀크티를 권해주셨다. 아니 나는 아아를 마실 요량이었는데? 단 한 번도 밀크티를 주문해 본 적 없는 나는 마치 항상 밀크티를 사랑해왔던 사람인 양 페퍼민트 밀크티를 주문했다. 진정성 있는 가게에선 새로운 세계를 만나기도 하는 법이니까.
어떻게 하면 일을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는 동친은 사장님께 꽤 깊은 인상을 받은 듯했다. 밀크티를 앞에 두고 앉자마자, 그는 기버 (Giver) 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에서 결국 상위 1 퍼센트는 기버 (Giver) 라 했다고. 주려는 사람이 결국 성공하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나도 기버가 되어야 했다. 먼저 줘야 결국 받을 수 있다는 기버의 마인드. 적어도 그건 있으니 기버가 될 수 있는 환경으로 옮겨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글쎄 그런데 그런 환경이 있을까. 적어도 내가 갈 수 있는 곳들 중에 말이야. 또 정답 없는 고민이 이어졌다. 으레 늘 그래왔듯이.
다음 날. 아침 산책 중 문득 하늘을 올려다 보니, 나뭇잎이 절반만 붉게 물들어 있었다. 벌써 가을이구나. 어느 새 이럴 때가 됐구나. 인간들이 복닥거리며 살아가든 말든, 나무는 때가 되면 색깔을 갈아입는다는 게 새삼 신기했다. 나뭇잎들이 자연의 순리대로 물들어가듯, 나도 순리대로 흘러가야 하는걸까. 머문 자리에서 아낌없이 주려 노력하다 보면, 나도 언젠가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되는걸까.
@ 한희정 - 내일
또 하루가 가고
내일은 또 오고
이 세상은 바삐 움직이고
그렇게 앞만 보며 걸어가라는 아버지 말에
또 한참을 울고
다짐을 해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