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25 일요일 - 할아버지를 사랑한 날의 기록
주인공인 할아버지만큼 유쾌했던 장례식이 두 달쯤 지났을 무렵. 우린 약속했던 여행을 떠났다. 이 가족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떠나는 여자들만의 여행 말이다. 드라이버로 동참하게 된 작은 삼촌까지 합하면 일곱 명이나 되었으므로 (다행히 직계 가족이라 일곱 명도 가능했다) 의견 모으기가 어려울 줄 알았는데. 일사천리도 이런 일사천리가 없었다. 모난 사람이 없는데다 다들 조금씩 양보했기 때문이겠지.
결과적으로 결정된 장소는 산 좋고 물 좋은 제천이었다. 충청도로 접어들어 호수를 따라 굽이굽이 올라가다 보니 바로 그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산장이 나타났고, 우린 운 좋게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방을 배정받았다.
여자들끼리 여행가는 것의 최대 장점은 다름아닌 밥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해야겠다. 주부 경력 30년이 넘는 어머니들과 함께한 여행의 장점인거니까. 밥과 고기, 각종 반찬들과 야채, 심지어 양념장에 빵과 과일들까지. 사전에 할당량을 배분한 것도 아닌데 어쩜 이렇게 찰떡같이 알뜰살뜰 챙겨오실 수 있던건지 모르겠다. 심지어 도착하자마자 번개처럼 한 상 가득 차려내는 마법. 오랜 세월 어머니였던 분들은 정말 존경스럽다.
저녁 식사만큼이나 산책 타이밍도 완벽했다. 노을 지기 직전에 나가서 어둑해진 직후 돌아왔으니까. 제법 다채롭게 구성된 산장 타운을 구경하고, 거길 둘러싼 산길을 걷고, 때로는 멈춰 서서 나무와 호수를 바라보며,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할아버지를 추억했다.
돌이켜 보니 참으로 영화 같은 시간이었다. 여행이라 쓰고 장례식이라 읽는 이틀이었거든. 실제로 어느 영화에서인가 이런 장례식을 본 적이 있다. 고인을 사랑했던 사람들이 풍경 좋은 곳으로 떠나 그를 추억하던 장면. 진정한 장례식이란 저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바로 그걸 우리 가족이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거실 테라스에 모기향을 피우고 과일을 먹다보니 할아버지가 농작물을 가꾸시던 시골집이 생각났고, 함께 둘러앉아 점심 내기 윷놀이를 하고 있으려니 할아버지 젊은 날의 명절이 생각났다. 무엇을 하든 고인을 생각하고 추억했던 이틀. 이만큼 좋은 장례식이 어디 있을까.
시골의 밤이라서인지 어른들의 밤이라서인지, 열한 시쯤이 되자 불이 하나 둘 꺼졌다. 각자의 자리에서 잠을 청한 제천의 봄 밤. 분명 모두에게 행복했던 두 번째 장례식으로 기억될 것이다.
@ 김광석 -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