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09 금요일 - 좋은 팀을 떠나보낸 날의 기록
봄만 되면 사람들은 꽃을 그렇게도 찍는다. 일 년 전에도 십 년 전에도 이맘때의 SNS 피드는 온통 벚꽃이었건만. 올 해도 여전히 사람들은 꽃을 찍는다. 마치 오늘이 지나면 더는 이 꽃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아니 잠깐. 볼 수 없는 것처럼? 그러고 보니 당분간은 볼 수 없는 것이 맞잖아? 하긴 일 년 365일 봄이라면 이렇게 환호하고 반기고 예찬하지는 않겠지. 봄이란 잠시 스쳐 지나가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고, 다시 돌아올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즐길 수도 있는 거니까.
이런 봄날은 나에게도 잠시 다녀갔다.
겨울 프로그램을 끝내고 휴가를 다녀온 다음, 모든 것의 시작을 알리는 3월과 함께 새로운 프로그램의 기획을 시작했더랬다. 조금 생소한 방법으로 기술을 접목시키는 대형 프로젝트였고, 덕분에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는 희망으로 매일 즐겁게 출근했다. 이것저것 탐구하고, 조사하고, 고민하고, 회의를 통해 아이디어를 모으는 시간들. 스스로를 채우는 느낌이 너무나 반가웠던 거다. 아웃풋을 만들기 위한 인풋의 시간은 내게 무척이나 중요하니까.
심지어 정말 이상적인 팀이었다. 안건을 정해두고 컴팩트하게 진행하는 회의. 메인 선배는 누구에게나 의견을 묻되 강제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편안히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었다. 업무의 분배도 부드럽지만 깔끔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팀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제 몫을 다하면 될 뿐이었다. 놀랍게도 출근하는 것이 싫지 않았고, 자발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사고할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을 반드시 성공시켜야겠다는 마음가짐이야 과거에도 있었지만, 주인의식에 더해 좋은 팀의 일원이라는 안정감을 준 것은 여기가 처음인 듯 싶다. 내가 굳이 나서서 무거운 짐을 지고 끌고 나갈 필요도 없었고, 의욕이나 케파에 비해 훨씬 적은 양의 업무가 맡겨진다는 박탈감도 없었다. 딱 필요한 부품들로 블록이 정확히 맞춰진 느낌. 너무나 이상적인 팀이어서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자랑할 만큼 좋았는데. 사정상 프로그램이 미뤄지다가 결국 잠정 해산을 하게 되어버렸다.
좋은 순간은 왜 잠시뿐일까. 일에 대한 열정이 없는 것도 아닌데. 괜찮은 환경은 가뭄에 콩 나듯 찾아오고, 잠시 다가왔다가도 마치 봄처럼 후다닥 모습을 감춘다. 허탈한 마음을 안은 채 선후배들과 함께 저녁을 먹은 날. 커피를 마시려고 앉았는데, 쿠키가 웃고 있었다.
무척이나 답답한 마음으로 밤을 보냈던 것 같다. 그러고 나선 산책 길에서는, 꽃이 이미 떨어져버린 나무에게 빛이 깃드는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그래 뭐 인생에 행운이 한 번뿐인가. 언젠가 이런 팀이 다시 찾아오겠지. 행운이라는 건 원래 밑도 끝도 없이 찾아오는 존재니까, 밑도 끝도 없이 희망을 가져보기로 한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만 않으면, 버티며 끊임없이 구하면, 결국 내게 새로운 꽃잎은 찾아올 테니까. 잎도 피워보고 단풍도 물들여 보고 눈도 맞다보면, 언젠가 다시 길 가던 행인들이 카메라를 꺼내들게 만드는, 그런 꽃이 되어 있을 수도 있잖아.
@ 라라랜드 OST - Another Day of S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