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기록

마법같은 그리고 기적같은

210313 일요일 - 작은 여행의 기록

by 희제


여행이라는 단어는 마법 같다. 시기와 목적지가 명시되지 않으면 추상적이기만 한 개념적 낱말인데. 구체적이고 공통적인 이미지가 없음에도 모든 사람을 설레게 하니 말이다. 아마도 그건 여행이 가진 여러 요소들 - 여행지를 상상하며 품는 기대감, 뜻하지 않게 마주하는 풍경과 사람들, 모든 일상을 내려놓은 상태의 자유로움 - 중 어느 것 하나 설레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이겠지.


나의 20대 시절 여행도 이랬다. 국내외 할 것 없이 그저 새롭기만 했던 나이. 기차역이나 공항, 배낭과 캐리어라는 이미지로 대표되는 여행은 언제나 두근거리는 역동적 이미지였다.


하지만 30대의 여행은 조금 다른 것 같다. 동적이기보다 정적인 존재가 되었다고나 할까. 지금 내게 여행은 훨씬 잔잔한 이미지다. 어떤 시간에 어떤 공간에 있든, 순간의 경험이 일상적이지 않다면 그것이 곧 여행이라 생각하게 되었으니까. 오늘은 아주 좋은 친구와의 만남이 언제나 여행같음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회사를 다니다가 학교로 돌아가서 만난 사람들은 좀 더 각별하다. 모든 것에 대해 사방팔방으로 튀는 생각들을 함께 공유하고, 그것으로 건강한 재미를 일구어갔던 시절.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가장 좋은 모습으로 발전시키는 데에만 집중해도 충분히 괜찮은 시간이었다.


그 시절을 함께한 친구를 다시 만난 날. 점심 먹을 곳을 정할 때부터 즐거웠다. 열한 팀의 대기자를 앞에 두고도 웃을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내부가 만석이 되는 바람에 야외의 간이 테이블을 이용하게 되었지만, 외국 현지 같은 맛과 분위기라며 함께 좋아했다. 작은 화로의 온기를 느끼며 천천히 음식을 나누어 먹는 시간이라니. 이게 여행이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이야.


20210313_133142.jpg 용산 효뜨. 베트남인 줄 알았다. 베트남에 가 본 적은 없지만.


바로 옆 카페에서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로 몸을 녹였다. 언제나 우리의 삶은 복잡하고 혼란스럽지만, 지금은 꽤나 안정을 되찾았다는 이야기. 살다보면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다는 건 20대도 안다. 하지만 그 곡선의 기울기와 순간의 방향성이 비슷해야만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는 건 30대가 되어서야 깨달은 것 같다.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는 어느 정도 같은 흐름을 타고 있다고, 그래서 다행이라고, 속으로 수도 없이 생각했다.


점심 약속이 저녁까지 이어지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여행 메이트가 아니면 하기 힘든 경험이니까. 헤어지기가 아쉬워서 오뎅탕에 사케를 한 잔 하고는, 그러고도 아쉬워서 공원을 서성이다, 새벽공기가 차갑게 느껴질 무렵 택시에 올랐다.


20210313_200503.jpg 이촌 후우링. 마감 손님으로 계산을 하고 나왔다. 새벽 두 시까지 영업을 했어도 그랬을 것이다.
20210313_232514.jpg 새벽 공원. 우리의 네 번째 여행지.


낮과 밤의 텐션이 조금 다르면 어때. 내 속의 두세 가지 모습을 전부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여러가지 얼굴을 가진 도시일수록 사랑받는 것처럼, 그래서 여행자들이 더 머물도록 만드는 것처럼, 살아가다 보면 다양한 모습을 나누게 되는 친구와 더 가까워지기도 하는 법이다.




새로운 현재의 시간이지만 낯설지 않은 시간. 흔한 공간의 새로운 발견을 극대화할 수 있는 사람.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는 있고, 새로운 여행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과거의 좋은 사람 한 명이 줄 수 있는 특별한 시공간의 경험은 무수한 시간이 축적되어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수십 수백의 인연들 속에서 걸러진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 그건 마법을 넘어 기적같은 여행이다.




@ DEPAPEPE - いい日だったね ( 좋은 날이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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