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기록

중간적인 하루

잔잔히 부지런한 날의 기록

by 희제


습관 만들기 어플인 챌린저스를 시작한 주. 아침 일곱 시 기상과 매일 글 쓰기, 이렇게 두 가지를 신청하여 무사히 첫 주를 넘겼다. 언제나 아침 일찍 시작하는 하루를 찬양하고, 담백한 글을 꾸준히 써내는 이 세상 수많은 작가들을 동경하지만, 너무 좋아하는 모습은 유난히 되기 힘든 법이다. 돈을 주고 의지를 사라는 챌린저스의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이번 한 주도 언제나처럼 조금 게으르게 보냈을 것이다.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고작 일주일의 패턴마저 몸은 기억했다. 주말은 아주 길게 잘 예정이었는데. 토요일 하루 푹 자고 나니 일요일 아침엔 몸이 다시 쌩쌩해졌다.


그렇지만 너무 평일처럼 에너지를 쓰고 싶지는 않았다. 일찍 일어나는 것과 하루를 에너제틱하게 보내는 것이 동의어는 아니니까. 지금까지는 일 하는 날이면 일찍 일어나 온 힘을 다해 일했고, 쉬는 날이면 최대한 늦게 일어나 게으르게 보냈다. 두 가지를 섞어 중간 지점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오늘, 쉬기로 마음먹었지만 일찍 일어나진 김에, 긴 시간을 부지런히 쓰되 잔잔하게 하루를 보내 보기로 했다.




우선 창문을 모두 열고 환기를 시켰다. 그리고는 가벼운 부엌 정리. 어제 이케아에서 구입해 온 병들을 한 번씩 닦아 주었다. 병에 맺힌 물방울들이 아침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참 보기 좋았다.


20221106_102726.jpg 반짝반짝 유리병


외출 모드도 중간 정도로 맞춰봤다. 원래부터 엄청난 메이크업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카페로 가더라도 일을 하러 나가는 날엔 단단히 준비를 하곤 했다. 옷도 일하는 모드로 입고, 노트북에 필기구, 그리고 마실 물까지 아주 제대로 한 짐 챙겨 다니는 스타일이랄까. 반대로 운동을 하거나 집 앞 편의점을 갈 때에는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 트레이닝복으로 맞추고 모자를 눌러쓴 채 폰만 쥐고 다녔다. 도무지 중간이라고는 없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히, 적당히 편한 옷에 적당히 가벼운 가방을 준비해 봤다. 한 번 카페에 나가면 최소 여섯 시간은 앉아 있어야 제맛인데. 이번엔 에코백에 달랑 책 한 권만 넣고는 운동화를 꿰어 신었다.


20221106_123013.jpg 운동하듯 20분 정도 걸어간 옆 동네 카페
20221106_143620.jpg 이 단출한 스탠드 자리는 썩 마음에 들었다.


아메리카노와 르뱅 쿠키를 먹으며 두 시간쯤 책을 읽었다. 오롯이 책에만 집중하는 카페 놀이라니. 항상 동경하던 여유를 내가 부리고 있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온갖 할 일을 마음에 지고 사는 편이라 책 읽기도 자주 미루곤 했는데. 이런 게 주말이고 일요일이지, 싶어 괜히 웃음이 났다.


20221106_144033.jpg 돌아오는 길에 만난 늦가을. 낙엽에겐 단풍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20221106_145134.jpg 해바라기를 만났으니 이번 주는 운이 좋겠군


집에 돌아와서는 남은 이삿짐 정리를 했다. 과감하게 작업실 정리는 뒤로 미루고 주방과 거실 정리만 완벽히 끝내기로. 확실히 할 일을 줄여 놓으니 마음도 편해지는 느낌이다. 실현 가능한 목표만 가볍게 세우는 것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저녁 여덟 시. 주말을 마무리하는 시간도 평소보다 조금 빨라진 것 같다. 하루를 잔잔한 마음으로 보냈지만 부지런함을 놓치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겠지. 언제나 중도를 지키는 일은 어렵다. 삶의 균형을 맞추며 천천히, 그러나 잰걸음으로 걷는 스님들의 모습처럼 살고 싶은데. 지금부터 연습하면 내년쯤엔 그렇게 살고 있으려나. 생각을 마무리하며 아침에 말려 둔 병에 쌀과 파스타 면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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