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상기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제 Nov 13. 2022

과거와 미래 사이

냉정과 열정 사이


<좋아하는 시시콜콜> 매거진의 몽중식 이야기를 함께 보면 좋습니다.


연남동엔 몽중식이라는 공간이 있다. 영화를 테마로 이야기가 담긴 음식을 내어주는 곳. 지난 가을에 무간도 편을 경험하러 갔다가 크게 감동받은 나머지 그 자리에서 다음 테마 사전예약을 했더랬다. <냉정과 열정 사이>라잖아. 그럼 당연히 예약해야지 그럼그럼.


함께 가기로 한 친구는 아직 영화를 안 봤다기에 함께 예습용으로 보게 됐다. 대체 이게 얼마만이지. 한 15년 만에 다시 보는 영화인 건가. 단 열여섯 곡밖에 안 들어가던 MP3를 온통 냉열 OST로 채워 넣고 다니던 때가 생각난다. 첫 곡부터 끝 곡까지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던 앨범. 이렇게 통으로 OST를 듣던 영화가 몇 개 있는데 <말할 수 없는 비밀>이나 <뷰티 인사이드>가 그렇다. 그런데 이 두 영화는 중간에 스킵하던 곡이 한두 곡씩 있었던 것 같거든. 하지만 냉열엔 그런 곡이 없었다. 그래서 전곡 듣기를 설정해 두고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걷거나 공부하거나 생각했던 것 같다.


재개봉을 했었구나 몰랐네. 부끄럽지만 학생 시절... 나는 어둠의 경로를 통해 봤음을 고백한다.


사실 그래서였을 수도 있다. 이 영화에 대한 기억이 좋은 것이. 음악의 잔상이 너무 깊게 남은 나머지 영화 자체의 기억도 아름다움이라는 덩어리로 남아버린 것이다.


뭉뚱그려진 기억 속 영화를 다시 색칠한 느낌이다. 영화 속 준세이가 치골리의 작품을 복원하며 지나간 사랑을 살려낸 것처럼, 피렌체에 가보기 전에 보았던 영화의 잔상을 피렌체에서의 기억을 녹인 물감으로 다시 칠한 뭐 그런 느낌.


속은 파랑 냉정이지만 빨강으로 꾸며진 의상을 두른 아오이 & 속은 빨강 열정이지만 파랑으로 꾸며진 집에 사는 준세이


방향이 반대일 뿐, 둘은 냉정과 열정 중 어떤 한 가지도 택하지 못한 채 10년을 서로 곁에 맴돈 셈이다. 세월이 지나며 그 중간 어디쯤으로 서서히 이동한 덕에 두오모에서 마주칠 수 있었던 거겠지. 15년 전엔 몰랐던 제목의 뜻을 이제야 깨닫는다.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뜨겁기만 한 감성만 있어서도, 차가울 만큼 차분한 이성만 있어서도 안 된다는 의미였구나.


과거를 돌아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미래를 기대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려고 해


사랑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에 대한 사랑을 영화는 이야기했지만, 결국 삶에서 만나는 모든 대상에게 가져야 하는 태도 아닐까. 중간 지점 그 어딘가에서 담담히 객관화하는 힘. 영화에서 흐른 10년의 시간을 훌쩍 넘은 15년이 내 삶에서도 흐르고 난 지금에서야 자연스레 깨닫는다. 긴 시간을 넘어 다시 보는 영화의 의미가 이렇게나 깊다.


영화 속 피렌체 (1994)
현실 속 피렌체 (2014 두오모에서)
그리고 아마도 현재의 피렌체


매거진의 이전글 진짜도 가짜도 진짜가 될 수 있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